송명근 자존심·김사니 열정…‘봄배구’ 열쇠는 멘탈

입력 2015-03-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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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송명근-기업은행 김사니(오른쪽). 스포츠동아DB

■ V리그 포스트시즌 키워드

“전광인보다 못해” 신영철감독의 말
OK저축은행 송명근의 투지 불태워
데스티니 공백, IBK 열정 북돋는 계기
현대건설 양철호감독 칭찬은 되레 독

‘NH농협 2014∼2015 V리그’ 포스트시즌의 키워드는 멘탈이 될 것 같다. 남녀 플레이오프(PO)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귀에 따갑도록 들어온 정신력, 바로 멘탈이었다. 정규리그 남자부 2위 OK저축은행은 선수의 자존심과 머리로 하는 수비로 3위 한국전력의 추격을 힘겹게 뿌리쳤다. 여자부 2위 IBK기업은행과 3위 현대건설의 운명을 가른 것도 목표를 향한 열정과 불안감 극복 능력의 차이였다.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화재와 도로공사도 강한 멘탈이 돋보인다. 삼성화재의 7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우승 관록은 상대에게 큰 부담이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경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요구하며 항상 선수들을 강하게 단련해왔다. “상대를 제압하지는 못해도 버틸 수는 있다”는 자신감이 삼성화재를 떠받치는 멘탈의 실체다.

도로공사는 나이 합계 110세인 베테랑들의 경험이 눈에 띈다. 장소연(41), 이효희(35), 정대영(34)이 챔프전에서 따낸 우승 반지가 무려 7개다. 이번 시즌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았던 도로공사의 장점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언니’들의 강한 멘탈이었다. 배구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머리의 배구, 도로공사의 플러스알파 전력은 수치로 드러나진 않지만 승패의 중요 변수다.


● 송명근의 자존심과 강영준의 머리로 하는 수비

OK저축은행은 한국전력과의 PO 2경기에서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연승을 거뒀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은 PO를 앞두고 속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주공격수 시몬의 무릎상태가 좋지 못해 사실상 포기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1차전에서 송명근이 기대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미디어데이에서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 했던 발언이 선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포지션 비교를 했을 때 송명근보다는 전광인(한국전력)이 낫다”는 말에 송명근은 숨겨뒀던 투지를 불살랐다. 1차전 26득점의 맹위를 떨쳤다. 자신의 시즌 최고기록에 1점 모자랐지만, 김 감독은 “송명근 덕분에 이겼다”고 말했다. 1차전 후 송명근은 “비교 받고 기분 좋은 선수는 없다”고 밝혔다. 미디어데이에서의 그 한마디가 이런 영향을 미칠 줄은 누구도 몰랐다.

2차전에선 3세트 도중 나온 강영준이 승패를 결정했다. 3세트 12-17 뒤진 상황에서 다음 세트에 대비한 주전들의 체력비축을 위한 선수교체였지만, 강영준은 들어가자마자 경기의 흐름을 뒤집어버렸다. 젊은 선수들이 흔들리는 가운데 수비로 팀을 안정시켰다. 강영준이 서브권을 잡은 상황에서 연속득점이 터졌고, 25-23으로 역전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최고의 선택은 오늘 강영준의 투입이었다. 느낌이 왔다. 운도 따른 것 같다”며 기뻐했다. 송희채는 “(강)영준이 형이 머리로 수비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주장 강영준은 젊은 후배들의 사기를 결정하는 상징적 존재다. 24일 3.3kg의 둘째 딸도 얻었다. 구단은 “큰 경기(챔피언 결정전)를 앞두고 좋은 조짐”이라며 흐뭇해했다.

공교롭게도 남자부 PO는 성균관대 출신 선수들이 주력인 한국전력과 경기대 출신이 주축인 OK저축은행의 맞대결이었다. 강영준, 송명근은 경기대 출신이다. 경기대는 대학배구 최강을 오랫동안 지켰다. 그 자신감이 PO에서도 드러났다. 예전 자유계약제도 때 우승팀 출신 선수는 다른 선수들보다 계약금을 더 받았다. 우승을 해본 팀의 선수는 그렇지 않은 팀의 선수보다 멘탈에서 강하다고 믿어서였다.


● 김사니의 열정과 현대건설 선수들의 불안감

데스티니가 4라운드 도중 부상을 당해 정규리그 우승 목표를 수정했던 IBK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데스티니가 없는 상황에서 김희진과 박정아가 많은 공격가담을 통해 성장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각이었고, 자신감이었다.

여기에 대한민국 최고 세터라는 자부심은 있지만 우승 반지가 하나뿐인 김사니의 열정이 더해졌다. IBK 이정철 감독은 “최근 (김)사니가 가장 열심히 했다. 기특하다”고 밝혔다. 김사니에게는 큰 경기에 필요한 집중력과 냉정함이 있었다. 평소 이 감독의 혹독한 조련에 단련된 IBK 선수들은 큰 경기의 부담 속에서 더욱 집중했다. 타임아웃 때 감독이 작전지시를 내리는 중에도 선수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며 플레이를 조율했다. 능동적으로 경기에 몰입했다. 덕분에 PO 내내 벤치가 시끌벅적했다.

혹시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질까봐 달래가며 칭찬하던 현대건설과는 벤치의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현대건설은 감독의 어르고 달래는 지시는 있었지만, 선수들이 수동적인 위치에서 받아들이기만 했다.

현대건설은 PO를 앞두고 선수들의 감성을 어루만지려고 노력했다. 부모들을 숙소로 불렀고, 큰 경기의 부담으로 PO를 앞두고 배구를 포기하려던 어느 선수는 양철호 감독이 따로 만나 화장품도 선물하며 마음을 돌렸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양 감독은 PO 내내 선수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언급했고, 타임아웃 때도 호통 대신 격려를 택했다. 패색이 짙던 2차전 3세트 초반 단 한 번의 질책을 제외하고는 계속 등을 두드려줬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아무리 주위에서 선수들의 기를 살리려고 해도 결국 경기의 부담을 이겨내는 것은 선수 자신이었다. 역시 배구는 사람이 하고, 사람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머리, 바로 멘탈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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