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년 전 ‘소품’ 박성웅, 믿고 보는 배우가 되기까지

입력 2015-04-06 2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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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배우 박성웅(42)에게 영화 ‘신세계’의 이중구는 달콤한 꼬리표였다. 그는 이중구를 통해 무명시절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준구는 그에게 인기뿐 아니라 “살려는 드릴게”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등의 유행어를 안기기도 했다. 박성웅의 20여년 연기 인생에서 단연 으뜸가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중구는 박성웅이 넘어야 할 벽이기도 했다. 박성웅은 ‘신세계’ 이후에도 ‘찌라시: 위험한 소문’과 ‘황제를 위하여’ 등 남자 냄새가 물씬 나는 작품에 출연했다. 이중구와 다른 스타일의 악역이었지만 어딘가 그 틀을 깨지 못한 느낌이었다.

박성웅은 센 놈을 이기기 위해 더 센 놈을 택하는 강수를 뒀다. ‘원히트원더(한 개의 곡만 큰 흥행을 거둔 아티스트)’로 남을 수는 없었다. 살려는 드린다던 박성웅은 그렇게 연쇄 살인마 ‘조강천’으로 돌아왔다.


Q. 왜 ‘살인의뢰’의 조강천이었나.

A. 솔직히 이중구를 떨치기 위해서였다. ‘신세계’는 나를 출세시킨 작품이기도 하지만 벗어나야 하는 작품이지 않느냐. 지난해에 ‘살인의뢰’의 연쇄 살인마 역할을 제안 받았는데 대본이 괜찮더라. 어설프게 이중구 같은 캐릭터를 하느니 이걸 제대로 표현하고 악역을 은퇴하자고 생각했다. 이제 조강천도 벗어나야지. 당분간 악역은 안 할 계획이다.


Q. 조강천은 극악무도한 살인마 캐릭터. 연기할 때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A.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다 힘들었다. 그나마 육체적인 문제는 참으면 되는데 정신적인 건 참기 힘들더라. 특히 병원에서 경찰을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할 때 특수분장을 했는데도 진짜 죽이는 것 같더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찝찝하고 불쾌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날 잠도 못 자고 멍하니 밤을 샜다.


Q. 많이 힘들었는지 언론시사회 중 응급실에 가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는데.

A. 완성본을 보면서 처음부터 피해자 쪽으로 감정이입을 했다. 김성균이 극 중 조강천에 의해 아내를 잃고 오열하는 장면을 보면서 같이 막 울었다. 내가 죽여 놓고도 그렇게 슬프더라. 샤워장 액션은 보고 가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다 못 보고 나왔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샤워장 액션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특히 나체 연기가 인상적이더라.

A. 한국 영화에서 올누드 액션이 처음이다. 그 장면을 위해 하체 운동을 많이 했다. 아마 다들 시선이 한곳으로 가겠지(웃음). 촬영 당시 18시간 동안 찍었다. 액션 연기를 하면 갈증이 많이 난다. 그러나 전날부터 42시간 동안 물도 못 마셨다. 카메라 앵글을 바꿀 때도 못 쉬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바닥을 봤다. 그때는 감독이 어찌나 밉던지….


Q. 여성 팬들이 환호하지 않을까. 박성웅만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A. 기럭지? 농담이다. 무대 인사를 하면 동료 배우들도 ‘형 유부남이고 아들도 있잖아’라며 놀라워한다. 나도 ‘왜 나를?’ 싶을 정도로 이유를 잘 모르겠다. 팬들은 내가 무서울 것 같은데 순진하게 웃는다고 반전 매력이 있다더라. 나에게 팬들은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 팬들을 재지 않고 솔직하게 다가가는 편이다. 팬들이 촬영장에 서포트하러 오면 요구사항도 성실히 다 해주곤 한다. 그 덕분일까.


Q. 여성 팬들의 인기에 대한 아내 신은정의 반응은.

A. 신경도 안 쓰더라. 하하.


Q. 박성웅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

A. 원동력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아들 장난감 하나 더 사주고 맛난 거 더 먹여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리고 아들이 성인이 돼서 내 영화를 봤을 때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이자 배우가 되고 싶다. 이제 13년 정도 남았다. 그때 아들이 ‘우리 아빠 배우시네’라고 하게끔 해야지. 지금부터 진행형이다.


Q. 아들이 배우를 하겠다고 하면 허락할 것인가.

A. 나는 누가 시켜서 했나. 지가 알아서 하는 거지 뭐.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겠지만 돈을 못 벌어도 본인이 하면서 행복하다면 괜찮다. 나 또한 ‘초창기에는 돈을 못 벌 수 있다. 잘 되면 내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때 1년 동안 연기 활동으로 50만원을 번 적도 있다. 그러나 각오한 거니까 힘들지 않았다. 일하면서 행복한데 거기에 돈도 많이 주는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었지. 아들이 연기하겠다고 하면 절대 도움은 안 줄 것이다. 힘들어야 오래 가니까. 쉽게 오면 그만큼 쉽게 간다. 부모로서 가슴이 찢어지겠지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Q. 만약 박성웅이 배우를 안 했으면 무엇이 됐을까.

A. 생각해본 적 없다. 마흔이 됐어도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는 놈’이겠지. 나 같은 경우 학연 혈연 지연이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시작했다. 연이 없으니 방송국에는 들어갈 수 없어서 영화부터 시작했다. 벌써 20년 전이다. 잡지에 ‘0월 0일 엑스트라 50명 선착순’ 모집 공고가 실리면 무작정 남들보다 2시간 전에 가 있었다.


Q. 엑스트라 연기자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나겠다.

A. 힘들었던 생각 많이 나지. 그때는 소품 취급을 많이 당했다. 소품을 싣는 버스가 있는데 겨울에 추우니까 그 버스에 들어가 있던 적이 있다. 스스로 그 모습이 애처롭더라. 인천 앞바다 앞에서 담배를 5시간동안 피우면서 ‘오늘을 절대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게 원동력이 되더라.


Q. 앞으로의 필모그래피가 더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A. 내 전공을 살려서 멜로!(웃음). 홍상수 감독님 작품 같은 생활 연기를 많이 하고 싶다. 지난해 부산국제 영화제 때 홍상수 감독님께 ‘써주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망가지는 코미디도 좋다. 바보짓을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심각한데 2% 부족해서 웃긴 연기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부정을 다룬 영화를 정말 하고 싶다. 아들이 있다 보니 감정이입을 잘 하지 않을까.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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