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른이’가 되기 좋은 환상의 80분…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입력 2015-05-19 0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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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다. 하얀 종이 조각들이 눈이 내린 것처럼 공연장을 뒤덮어 마치 아이들이 한바탕 논 ‘놀이터’를 연상케 한다. 뭔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9년 만에 돌아온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가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동화 속 세계로 초대했다.

1993년에서 러시아에서 초연된 ‘스노우쇼’는 광대 슬라바 폴루닌의 어린 시절 ‘눈’에 대한 경험을 아이디어 삼아 나온 광대예술의 정수와도 같은 작품이다. 20년간 전 세계 100여개 도시에서 수천만 관객의 마음을 홀렸다. 올리비에 상, 골든디스크 상뿐 아니라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다. 국내에서도 공연될 때마다 매진되며 사랑 받아왔던 작품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노란색 포대 자루 같은 옷을 입고 빨간색 큰 코를 가진 광대와 초록색 옷을 입고 당나귀 귀를 가진 것 같은 광대들이 나와 아무런 대사 없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짧은 에피소드를 전달한다. 이야기는 마치 글자가 없는 동화책 같다. 비누방울이 공연장을 뒤덮는가 하면 광대들은 침대를 끌고 와 배를 만들어 항해를 떠나고 옷걸이로 연인과 헤어짐을 표현하는 등 아무 말 없이 보여주기만 하는 이들과 관객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이야기가 완성된다.


‘스노우쇼’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무대와 관객석이 하나가 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공연을 본다는 개념을 철저하게 깨버린다. ‘스노우쇼’에서는 관객은 참여자다. 1막 마지막에 초대형 거미줄이 등장해 관객들에 의해 순식간에 객석을 덮어버리고 2막 마지막에는 형형색색의 거대한 애드 벌룬이 객석을 점령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 이 시간만큼은 어른들도 어린이가 된다. 절로 나이를 잊게 되고 추억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것처럼 초대형 공을 손바닥으로 쳐 하늘로 올린다. 어디서 날아올 줄 모르는 공이 내 머리를 맞춰도 웃음만 나온다.

광대들은 객석을 난입하기도 한다. 갑자기 관객의 가방을 가져가거나 하얀 종이 조각을 가득 담아 관객의 머리에 쏟아버리기도 한다. 또한 물을 쏟으며 관객들에게 물벼락을 선사하는가 하면 관객들의 손을 잡고 객석 의자를 넘어간다. 그 순간 무대와 객석의 개념이 사라지고 하나의 놀이공간이 된다. 개구쟁이 같은 광대들 때문에 물벼락에 옷이 젖고 머리를 털면 종이가 쏟아진다. 그래도 여전히 즐겁다. 어릴 적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불러도 집에 가기 싫은 즐거움을 또 다시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특히 작품 이름이 ‘스노우쇼’인만큼 이 작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아이템은 ‘눈’이다. 공연 중간에 무대에서 눈이 흩날리기도 하지만 백미는 극의 마지막이다. 헤어진 연인의 편지를 찢으며 그 편지가 거대한 눈보라로 변하며 객석으로 몰아치며 극의 장면과 관객의 감성을 절정으로 이끈다. 공연이 진행되는 약 3주 간 사용될 눈의 양은 1톤 트럭 한대에 가득 찰 정도의 분량이다.

공연은 끝난 후 즐기고 싶다면 곧바로 공연장을 나오지 말도록. 광대들이 춤을 요청하고 손을 잡고 공연장을 함께 누빌지도 모르니 말이다. 31일까지 서울 LG 아트센터. 문의 02-2005-0114.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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