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베이스볼] 김재윤 “난 포수 출신 투수…그래서 볼넷을 싫어한다”

입력 2015-06-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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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김재윤은 조범현 감독의 권유로 포수에서 투수로 변신했다. 아마추어 때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투수지만, 마치 제 옷을 입은 듯 승승장구하며 투수 변신 5개월 만에 어느덧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스포츠동아DB

■ kt 김재윤


최근 14경기 18이닝 23K 13안타 4볼넷
‘WHIP 0.94’ 투수 전향 5개월만에 필승조

돌고 돌아 스물다섯에 처음 서 본 마운드
코치님은 제가 백지상태여서 더 좋다네요

美 방출·현역병 복무 시간은 나의 자양분
포수 출신 강점? 무조건 포수를 믿는 것


포수에서 투수로 변신한지 5개월 만에 1군 필승조로 탈바꿈한 kt 김재윤(25)을 처음 봤을 때는 당연히 아마추어 시절 짱짱한 투수 경력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인도 아닌 초보 투수가 5월 17일 1군 마운드에 처음 오른 뒤 14경기에서 18이닝 동안(22일까지) 23탈삼진 13안타 4볼넷에 이닝당 출루허용(WHIP) 0.94를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 원정에서 만난 김재윤은 놀랍게도 “사실은 동네야구를 할 때도 투수를 한 적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프로 1군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 팀에서 가장 야구를 잘했던 주인공들이다. 최고 중의 최고가 모이는 청소년대표들 중에서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는 선수가 2∼3명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또 야수들 대부분은 아마 시절 투수로 활약한 경험을 갖고 있다. 에이스와 4번타자를 동시에 맡은 경우도 많다. LG 이진영은 군산상고 에이스였고, 한화 이용규도 덕수정보고시절 좌완 불펜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리그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두산 김현수는 “어렸을 때 상상했던 내 미래의 모습은 항상 투수였다. 야수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렸을 때는 꽤 잘 나가는 투수였는데, 중학교 때 한계를 만났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최고의 강견을 자랑하는 같은 팀 외야수 민병헌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초반 투수를 했다. 내 어깨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진짜 투수들은 다르더라”고 말했다. 그만큼 프로 1군에서 뛰는 투수들은 특별한 존재들인 것이다.

KT 투수 김재윤. 스포츠동아DB



● 포수 신인, 투수로 변신하다!

전국을 주름잡던 에이스도 처절한 좌절을 맛보는 곳이 프로다. 그런데 올 1월에서야 투수로 전향해 5개월 만에 1군 마운드에 섰으니 기적이 따로 없다. 김재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야수가 투수로 변신해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시작은 언제였나?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해 10월이었다. kt에 함께 입단한 신인선수들과 훈련을 받았다. 프로텍터를 차고 펑고를 받고 있었는데, (조범현) 감독님이 갑자기 부르셨다. ‘뭐 잘못했나’, 그런 긴장감을 느끼며 감독님 앞에 섰다. 그러자 감독님이 갑자기 ‘재윤아, 마운드에 올라가서 공 한번 던져봐’ 그러셨다. 이것저것 고민하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감독님이 시키신 거니까 아무 생각 없이 공을 던졌고, 곧 ‘이제 그만 됐다’는 말이 들렸다”


-알려지기로는 투수 훈련을 시작한 게 올 1월 중순부터다. 그보다 몇 개월 빨랐던 것인가?

“피칭 훈련 시작은 1월 중순이 맞다. 그날은 감독님이 아무런 말씀 없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투수 한번 해볼래? 열심히 하면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코치님들도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다만 최종 결정은 내 몫으로 남겨주셨다. 1월, 새해 훈련 시작 전까지 시간을 주셨다. 한 달 이상 고민했다. 부모님과도 많은 상의를 했다. ‘스물다섯에 투수 변신’이라니, 워낙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워 더 고민했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 희한한 인연, 투수 빼고는 다 해봤다!


-야수 중에 어깨가 강한 선수는 지금도 마운드에 서면 시속 145km의 공을 던진다. 그러나 송구와 투구는 다르다. 5개월 된 초보 투수치고는 슬라이더 컨트롤이 매우 뛰어나다. 정말 투수를 한 적이 없나? 보통 동네 야구에선 투수를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몇 안 되기 때문에 공을 던졌을 것 같다.

“사실 동네 야구를 안 해봤다. 아버지가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도 많이 했고, 올려주시는 공을 배트로 치기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 곧장 야구부에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때는 투수 빼고 모든 포지션을 뛰었다. 휘문중학교에 입학한 후 포수로 자리를 잡았고, 2015년 1월까지 포수였다.”


-고교 때 청소년대표로 2008년 에드먼턴(캐나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했다. 그 때 포수 김재윤과 배터리를 이뤄 세계를 제패했던 동기들 중 지금 1군에서 던지고 있는 투수는 단 한명도 없다.(당시 투수진은 두산 성영훈, NC에서 방출된 정성철, SK 오수호, 야수로 변신한 넥센 장영석 등이 주축이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안타깝게도 모두 부상이 많았던 것 같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던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포수 김재윤도 지금까지 야구인생이 참 험난했다. 2009년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미국무대에 도전했지만, 2012년 방출돼 돌아왔고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사실 그 때 국내 팀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청소년대표로 우승했지만, 프로의 벽은 그만큼 높았다. 대학 진학의 갈림길에서 세계선수권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 애리조나가 영입을 제안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미국행을 택했을 것 같다. 새로운 야구, 새로운 문화를 배운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자산이 된 것 같다. 팀에 한국은 물론 아시아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포수는 투수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싫든 좋든 쫓아다니면서 손짓 발짓 하다가 말도 점차 배우고 그랬던 과정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1군 사령부 의장대에서 복무했다고 들었다. 의장대는 워낙 훈련이 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년여의 시간은 야구와 점점 멀어지는 끔찍한 느낌을 줬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반대로 큰 행운이 있었다. 자대에 가니 모두가 야구선수 출신인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며 큰 용기를 줬다. 그러면서 LG 김용의 선배가 2010년 1군 사령부 의장대에서 기수를 했다고 알려줬다. ‘군대에서 훈련도 열심히 하고 틈틈이 몸을 만들어 김용의처럼 다시 프로선수가 되라’는 응원도 들었다. 웨이트 시설도 있었고, 캐치볼을 할 수도 있었다. 미국에서처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고, 야구와의 인연도 이어진 기간이었다.”


● 인생을 건 18.44m의 이동


-18.44m는 어린아이라도 힘들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이미 태평양을 오가며 인생을 건 도전을 해본 적이 있지만, 홈에서 마운드까지 18.44m는 그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코치님들이 차라리 백지처럼 아무 것도 없어서 더 좋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지금까지 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배우고 습득하는 게 더 유리했던 것 같다. 변화구 컨트롤 훈련 등도 집중적으로 반복했는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


-포수 출신이기 때문에 강점은 무엇일까?

“포수는 볼 카운트가 몰리는 것에 굉장히 거부감을 느낀다. 볼넷을 싫어하는 그 부분은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포수를 해봤기 때문에 포수를 무조건 신뢰한다. 그 점이 가장 강점이 아닐까.”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포수였기 때문에 리드를 하고 있는 포수의 전략과 정반대의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 같다. 자기의 구상과 포수의 리드가 충돌하는 상황이 있었던 적은 없나?

“그럴 수가 없다. 포수 김재윤보다 포수 장성우가 훨씬 뛰어난 포수라는 것은 누구라도 잘 아는 사실이다. 김재윤의 머릿속에 있는 포수보다, 눈앞에 있는 포수 장성우가 모든 면에서 앞서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다.”


-태평양까지 오가며 참 멀게 돌아 마운드까지 왔다. 어떤 투수가 되고 싶나?

“투수의 역할이 지금도 종종 낯설 때도 있다. 아직 무엇을 말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팀에 보탬이 되는 투수가 되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마음이다.”

김재윤이 마운드에서 묵직한 직구를 펑펑 던지는 모습은 마치 전사 같다. 그러나 한 없이 진지했고, 짧은 대화만으로도 마음이 참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스물다섯, 맑고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는 청년이 새 출발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나이다.


● kt 김재윤은?

▲생년월일=1990년 9월 16일
▲출신교=도곡초∼휘문중∼휘문고
▲키·몸무게=185cm·91kg(우투우타)
▲경력=2009년 애리조나 입단∼2014년 kt 2차 특별지명
▲프로 성적=14경기·1패3홀드·18이닝·23탈삼진·방어율 2.00(22일 현재)
▲2015년 연봉=2700만원


광주|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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