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방진’ 10주년, 그리고 고선웅 연출가 “유행을 쫓느니 본질에서 방황하겠다”

입력 2015-08-13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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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10주년, 감회가 새로울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고 그냥 대견하네요. 하하.”

연극을 하겠다고 4년간 다닌 광고회사를 박차고 나와 소극장을 차리겠다고 결심했다. 유명한 계룡산 도사가 “여기다 극장 지으면 재산 다 털려!”라는 무시무시한 말에도 ‘에이, 한번 다 털려보지’라는 마음으로 극장을 짓고 말 그대로 전 재산을 날렸다. 이후 쓴 ‘들소의 달’과 ‘칼로막베스’가 서울연극제와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가의 이야기다. 숫자의 합이 사방으로 일치하는 정교한 진법인 ‘마방진’에서 이름을 따온 만큼 정교하게 연극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단원 43명으로 이뤄진 이 극단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10년이면 터전이 잡힌다고 하는데 그건 모르겠어요. 단지 극단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고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도 서툴렀어요. 소품 하나 사러 10번을 다니기도 했죠. 지금은 10번 갈 3번 가고…(웃음) 밤 세우던 연습도 이젠 효율적으로 하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늘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에 당황하지 않고 당면할 줄 아는 기술이 생긴 것 같아요. 게다가 제가 경기도립극단 예술 감독을 4년간 하면서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가 적절히 섞인 것 같아요. 연극은 개인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주제의식이나 사회메시지도 담겨있거든요. 4년간 아주 밀도 있는 시간이었어요.”

처음부터 극단을 차릴 계획은 아니었다. 원래 프로듀서 등을 모아 기획집단을 만들려고 했지만 배우가 없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선웅 연출가는 “함께 철학을 나눠야 했다”고 강조했다.

“작품이란 연출가와 배우가 생각을 쌓고 공유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냥 외부에서 캐스팅한 배우들과의 철학을 공유하는 시간은 짧더라고요. 그래서 단원을 뽑았죠. 극단이 일체 단원이 돼 추구하는 철학과 의지가 있어야 연극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극공작소 마방진은 마술적 사실주의를 표방하며 연극을 통해 세상의 기이한 현상과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한다. 예술성과 상업성의 기로에서 그 명분과 해답을 찾아 연극 본래의 원형성을 찾아 회귀하는 것이 이 극단의 지향점이다.

“사실주의 연극에 좀 회의가 들었어요. 회의가 든 이면에는 사실주의는 정말 어려워요. 예를 들면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은 어떻게든 밤과 낮을 표현해야 해요. 세월을 흐름을 사실적으로 매일 재현한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에요.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하하. 그런데 연극을 플레이(Play), 그러니까 놀이의 개념으로 본다면 마술적 사실주의가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어요. 단지 극단의 형편이나 제작자의 요구 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요.”

‘홍도’, ‘칼로막베스’, ‘강철왕’, ‘들소의 달’ 등으로 잘 알려진 마방진은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극단 레퍼토리 중 가장 의미 있는 공연인 화류비련극 ‘홍도’와 연극 ‘강철왕’을 선보인다. ‘홍도’는 비극과 희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2015년형 신파극’으로서 지난해 첫 선을 보인 적이 있으며 ‘강철왕’은 2009년 이후 오랜만에 재 공연된다. 고선웅 연출가는 “이 두 작품을 올리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며 올해의 레퍼토리를 설명했다.

“’강철왕’은 ‘연극을 좋아한다, 해본다’라는 개인적인 기호에서 출발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하고 싶었던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에요. 반대로 ‘홍도’는 관객들의 ‘니즈’만을 충족시켰다면 ‘원트’를 향해 만든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제 고집을 꺾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중극이야말로 정말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푸르른 날에’나 도립극단 작품 등을 보면 결코 상업지향적은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매력적인 작품이거든요. 이 줄타기가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올해 제 10년의 변천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패기가 있는데 정돈되지 않은 ‘강철왕’과 패기는 좀 없지만 정돈이 된 ‘홍도’를요.”

‘홍도’와 ‘강철왕’ 외에도 5월 막을 내린 ‘푸르른 날에’와 현재 공연 중인 ‘아리랑’은 고선웅 연출가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늘 기발한 연출력과 맛깔 나는 언어유희는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의 작품들은 늘 독특함이 가득 묻어난다. 오죽하면 ‘고선웅 식’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연극은 다 ‘애이불비’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 예상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척하고,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척하는 감정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가 대단하거든요. 한 번 비트는 거죠. 이런 방식이 저만의 방식이라고들 하시니 전 좋습니다. (웃음) 김치찌개 집이라고 다 같은 맛의 김치찌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작품도 호평을 받으니 그는 요즘 말로 가장 ‘핫’하다는 연출가로 손꼽히기도 했다. 소감을 묻자 고선웅 연출가는 “그냥 내 스스로 ‘핫’하게 살아왔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좋아하는 바둑으로 예를 들며 “’패착을 둔다’는 말이 있는데 극본가가 패착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친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제 강산이 한 번이 변했다. 앞으로 꾸려나갈 ‘마방진’을 통해 그가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을 무엇일까. 그는 “유행을 좇느니 본질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같아요 유행에 표류하느니 본질을 쫓아 방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전 죽어도 본질을 찾아야 해요. 제가 말하는 본질이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 예를 들면 ‘효도합시다’, ‘착하게 삽시다’와 같은 보편적인 진리예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연극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배우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고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품을 연출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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