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잃어버린 얼굴’ 차지연 “겸허하고 진중해진 시간”

입력 2015-09-07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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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작품의 만남은 인연이다. 때로는 연인처럼 '밀당'을 하듯 아무리 밀쳐내도 오는 게 있고, 아무리 갖고 싶어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는 부모와 자식처럼 '배움과 성숙'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배우와 작품은 서로 끊임없이 부딪히고 인연을 맺으며 함께 성장하고 성숙한다. 차지연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그를 자라게 한 작품이었다.

"2년 전, 이 작품을 만난 건 크나큰 영광이었어요.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진중하고 겸허해지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그 때에 그 작품을 만난 것은 분명 운명이었기에 가능했을 거예요. 큰 축복이죠. 그 이후 작품을 대하는 제 태도도 달라졌고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어요."

그가 '잃어버린 얼굴 1895'를 특별히 여기는 이유는 극작가 장성희의 탄탄한 텍스트와 연극에 가까운 대본을 각색한 연출가 이지나 연출 등 작품의 초석과 기반과도 같은 작업을 하는 스태프들 덕분이다. 그는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만을 남겨둔 채 쳐나가는 이지나 선생님의 작업과 캐릭터, 장면의 분위기마다 노래를 만드시는 작곡가 선생님과 무대 디자이너 선생님, 그리고 의상 하나까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특히 이지나 연출가님께서 저희에게 '이 대본의 대사 말고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은 지 만들어 와'라고 말씀하셨어요. 대본에 반영하실 수도 있으셨겠지만 배우들이 심도 있게 준비를 하고 연구할 수 있게끔 하신 것 같아요. 그게 큰 자극이 됐어요. 배우는 그 인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요. 단지 그 인물의 대사만 잘 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둘러싸인 환경, 인물들을 잘 파악해서 내 역할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참 뜻 깊은 작업이었어요. 그 이후 작품을 대하는 방향이 달라지면서 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깨닫고 있어요."

차지연이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아 열연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성황후'는 각종 매체나 작품에서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역사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지연이 연기하는 '명성황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만을 담지 않고 있다.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 그 진실을 무엇인가'로 출발한 '잃어버린 얼굴 1859'는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황후와 한 여성이자 사람이었던 '민자영'의 이야기를 판타지적인 요소를 섞어 만든 작품이다.

"지독하게 외로웠을 것 같아요.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인데 명성황후는 또 시대에 앞서 나가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외로웠을 것 같아요. 한 나라의 왕비, 한 남자의 아내, 또 엄마 그리고 며느리까지 정말 온전히 여자 '민자영'으로 살았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2년이 지난 이 순간, 더욱 '명성황후'를 깊이 생각하게 된 차지연은 그를 마주하는 감정도 바뀌었다. 그는 "예전엔 죽음을 맞이한 명성황후를 보며 비극적인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명성황후가 죽임을 당하고 저승길을 떠날 때 예전 공연에서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 죽음이 그에겐 가장 편안한 시간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요. 모든 짐을 내려놓고 10대 소녀 민자영이 돼서 나비를 따라다니고 풀잎을 꺾어서 놀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 역시 소녀시절로 돌아가 행복하게 연기하려 해요."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면 차지연은 행복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비극이 있어야 희극이 더 빛날 수 있지 않을까. 대충 만들지도 않고 오히려 무게를 다지고 연습에 임했기 때문에 이런 작업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는 차지연이 배우가 된지 10년을 꽉 채운 해이기도 하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라이온킹' 오디션에 덥석 합격을 해 앙상블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르게 됐다. 그는 "한국말로 다시 공연을 해보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때는 뮤지컬 배우가 될 거라 생각을 안 했죠. 뮤지컬의 '뮤'자도 관심이 없었어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셌거든요.(웃음) 친구가 그냥 무대에 다 같이 나와서 노래만 하면 된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해도 그때는 정말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때였어요. 뭐라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아무 생각에도 없던 뮤지컬과 계속 인연을 맺게 될 줄이야. 정말 운명이긴 한 가 봐요."

배우 생활을 10년을 맞이한 소감을 물으니 "그때는 '우리가 10년 뒤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를 생각했다"며 "'결혼은 했을까' 등 궁금한 게 많았다"고 웃으며 답했다.

"10년이 지나도 사실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지금도 뮤지컬에 대해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죠. 그래도 아주 조금은 깨닫기도 했고 그러기에 더 잘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 아쉬움도 남아요. 조금 달라진 건 성격이 순해지는 것? 나이를 먹으면 성격이 순해진다고 하는데 욕심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이 떨어지니까 그런가 봐요. 하하."

욕심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았다. 작품 이야기를 하다가 미래에 대한 계획을 펼치니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신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유독 카리스마를 많이 맡았던 그는 꼭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터액트'의 '우피 골드버그'와 같은 경쾌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제가 장난기가 정말 많은데 웃긴 작품이 안 들어와요. 제가 하고 싶은 느낌의 작품과 관객들이 차지연에게 바라는 작품의 색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언젠간 꼭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밝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지나 선생님께서 '지연아, 너랑 나랑 남은 건 이제 코미디야!'라고 하셨으니 조금 기대해도 되겠죠?"

또 그는 앞으로 배우의 길을 걸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존의 라이선스나 창작뮤지컬 외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정말 괴기스럽거나 독특한 것도 포함된다. 혹시 연출가로서 도전을 하고 싶은 게 아닌지 물어봤지만 "나는 그 정도로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진 않았다"며 몸으로, 목소리 등으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괴기스러운 창작을 만들고 싶어요. 도전하거나 용기 낼 수 없는 과감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말도 안 되는 것을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멀리 본다면 뮤지컬 장르의 다양화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그 괴상한 길을 터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더 데빌'을 하면서 많이 생각하고 있고 지금 몇몇 예술인들과 아이디어를 모아 작업을 하고 싶어요. 시간은 좀 걸리긴 할 테지만 앞으로의 제 별난 짓을 기대해주세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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