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 여행 ①]탈린, 에스토니아

입력 2015-10-16 1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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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투어 제공

가끔씩 찾아오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 슬럼프, 무기력 혹은 나아가 자기혐오감. 해결점은 내가 찾아야만 한다. 많은 사람이 있으면 안 될 것. 그리고 가급적 한국과 멀어질 것. 떠나야 할 곳에 대한 나의 조건 전부. 발트는 그런 나의 이기적인 요구를 모두 들어준 곳이다. 그 절대적으로 낯섦에서 나를 다시 찾게 해 준 발트에서 보낸 시간이 주는 위로들. 그것에게 감사하며.

내 인생에서는 아직 한 번도 에스토니아라는 이름이 떠올려진 적이 없었다. 같은 유럽권이지만 확실히 심정적으로 발트는 멀었고 에스토니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먼 곳에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발칸이냐고도 되물어보았다. 때문에 가급적 멀리 갈 것을 원했던 나에게 에스토니아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나는 확실히 낯선 곳으로 간다.

새벽에 내린 탈린의 공항은 적막하다. 한국은 뜨거웠던 여름을 떠나보내는 시기이지만 탈린은 이미 춥다. 탈린은 모스크바보다도 위에 있다. 냉랭한, 그러나 순진하게 느껴지는 맑은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택시를 타고 가로등만 외롭게 켜진 텅 비어버린 시내로 들어오면서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던진다.
‘탈린, 너 되게 단정하구나.’

새벽 네 시 반에 눈을 떴다. 믿기지 않게도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4월부터 9월 정도까지 해가 이 시간에 뜬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해가 지는 시간도 늦는다는 이야기일터. 백야, 나는 오늘 하루를 무척 길게 보낼 것 같다. 탈린 시내를 걷고 싶어 우선 숙소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여섯 시. 이미 충분히 떠버린 해는 정면으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말갛게 떠있는 해에게서는 어떤 가공이 되지 않은 무구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이른 시간이기도 하지만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를 산책시키는 할머니, 조깅을 하던 사내 그리고 군복을 입고 어디론가 가는 군인. 다소 난폭한 인상의 사내 둘과 길에서 교차하지만 그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거리에는 낙엽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초록의 잔디도 아직은 푸르르다. 이제 정식으로 탈린과 인사하는 날. 나는 아무도 없는 거리의 중간쯤에 서서 손을 흔들어본다. 떼레에스토니아의 안녕.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까지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상징이다. 모두투어 제공


부드럽게 감기는 느낌의 이름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제일 먼저 탈린의 구시가지로 가본다. 사실상 탈린의 볼거리는 이곳에 대부분 몰려있고 시내에 버스와 트램전차 등이 다니지만 걸어서 모두 다닐 수 있으므로 따로 교통비가 들지는 않는다. 탈린 시내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도 전부 이곳에서 이어진다. 비루Viru 게이트라고 불리는 두 개의 첨탑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에스토니아는 좀처럼 인구가 늘지 않는 도시라고 들었다. 겨울이 길고 늘 안개가 짙게 끼어있으며 일조량도 부족하기 때문인데 오늘은 운 좋게도 파란 하늘로 시작되었고 마침 첨탑의 주황색 지붕은 더욱 생기를 띄고 있다. 돌바닥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반사되고 있고 구시가지 입구 앞에는 꽃집들이 줄지어 있다. 다른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꽃집 사람들은 아침부터 꽃과 하루에 많은 정성을 주고 있다. 하루를 꽃과 함께 시작하는 사람들. 이는 발트 사람들에겐 매우 일상적이고 공통적인 일이라고 한다.

비루 게이트를 지나 가지런하게 바닥에 돌이 깔린 길을 따라 올라가본다. 잘 보존된 건물들이 골목마다 이어진다. 유럽 전역에서 14세기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도시라 평가받는 탈린의 구시가지는 많은 전쟁과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무너지지 않아 보존 상태가 썩 괜찮다. 탈린의 구시가지 전체는 1997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통칭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 세 나라로 구성된 발트 3국은 다른 유럽의 약소국가들보다 더 많은 부침을 안고 살아왔다. 게르만, 슬라브 그리고 덴마크와 바다 건너 스칸디나비아 반도국들은 끊임없이 이 땅의 주인으로 군림하려 했었고 발트는 끝없이 많은 침략과 저항을 반복해야 했다. 발트 3국 중 가장 바다와 가까웠던 나라이기에 더욱 더 굴곡진 역사를 가져야만 했던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가 가지고 있는 여러 수식들인 발트해의 진주, 발트의 보석 그리고 발트의 여왕보다 발트해의 자존심이라는 수식어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들리는 이유이다.

1229년 덴마크 인들에 의해 세워진 성으로 현재는 에스토니아의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두투어 제공


여행자 안내소에서 지도를 한 장 받았다. 직원은 세 곳의 전망대를 추천하며 먼저 이곳에서 탈린의 전경을 볼 것을 추천했다. 천천히 정상 쪽으로 돌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언덕 쪽으로 올라가다가 바로 맞닥뜨린 알렉산드르 네프스키Alexander Nevsky성당. 인생은 항상 선택의 문제였다. 좋은 것과 싫은 것 그리고 해야 할 것과 또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그러나 가끔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3의 것이 개입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그저, 순순히 반응할 뿐이다. 순응, 네프스키 성당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반응은 그래야만 했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지배할 당시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세웠다는 러시아 정교의 가장 성스러운 교회. 러시아의 지배 역사가 남아있는 치욕의 상징이지만 에스토니아 정부는 학습 효과를 위해 그대로 둔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로 국민의 75%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이 대부분 러시아 정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미뤄보면 그 수치는 훨씬 더 의미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네프스키 성당은 그런 종교적인 사실과 역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동글동글한 양파 모양의 첨탑은 실제로는 처음 보는 양식이며, 때문에 그러한 무겁지 않은 모습에서는 어떤 종교적인 위압감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이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느낌이다.

성당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둠페아 성Toomper Castle과 성벽이 나온다. ‘최고봉’이라는 뜻으로 13세기에 석회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이다. 이 성은 그동안 에스토니아를 점령했던 여러 나라들이 번갈아가며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지금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국회의사당으로 쓰인다. 이제 에스토니아의 길고도 멀었던 자유와 독립의 여정은 끝이 난 것일까. 이 성곽 뒤편에서 보이는 바다는 조용히 탈린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다.
툼 성당Toom Kirik으로 옮겨본다. 1219년 덴마크인들이 이곳에 진출한 이후 최초로 지은 성당으로 탈린이라는 이름 자체가 ‘덴마크 사람이 지은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부는 중세 탈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길드들이 사용한 나무로 된 문장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계속해서 골목을 따라 내려와 라에코야 광장Raekoja plats과 만난다. 아침시간보다는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탈린 사람들은 탈린 사람 나름대로 또 여행객들은 그들대로 이 시간과 무엇보다 햇빛을 즐기고 있다. 눈이 많이 오는 에스토니아에서 해를 즐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광장은 시청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대대로 시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오랜 동안 이곳에서 많은 축제들을 벌였으며 죄인들을 처형하는 장소로도 사용했다. 현재의 탈린은 이 광장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거리와 골목마다 노천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크리스마스 전후 한 달 동안 시청 앞 광장에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는데, 모든 유럽 사람들은 탈린의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한다고 한다.

현존하는 북유럽 최고의 고딕양식 건물이다. 모두투어 제공


광장을 지나 카타리나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이어서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오래 세월을 버텨온 인내가 골목의 벽에서 보인다. 벽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벽의 질감. 그것은 비단 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을 묵묵하게 버텨야만 하는 벽이 가져야 할 존재의 온도가 그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북쪽 끝 라이 거리와 피크 거리 사이, 초록의 첨탑이 솟아 있는 고딕 양식의 올레비스테 교회Oleviste Kirik는 탈린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랜드 마크 같은 곳이다. 교회는 1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교회의 첨탑 높이가 124미터나 되어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첨탑은 그 옛날 선원들과 선박의 이정표와 등대 역할을 하기도 했었고 강력한 번개를 8번이나 맞은 이력도 있다고 한다. 전망대로 오르기로 한다. 새벽부터 걸었지만 탈린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나선형의 계단은 폭이 무척 좁고 공간도 여유가 없다. 사람들은 이상한 자세로 기다리면서 내려오는 사람과 번갈아가며 몸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그 작은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꼭 그것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마지막 나무 계단을 삐걱거리며 오르자 가득 들어오던 탈린의 모습. 철제로 만들어진 난간을 잡고 앞 사람과의 간격도 충분히 없는 곳에서 첨탑의 지붕 위를 한 바퀴 돌 뿐이지만 탈린의 진정한 뷰포인트는 이곳이다. 발트의 하늘, 발트의 바람 그리고 발트가 주는 이 시간. 그 속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 그것은 위로의 다른 말이다. 원래 위로는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한마디 해주면 된다. 고생했구나.

아침부터 비가 온다. 탈린 여행은 비와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할 정도로 비가 자주 온다고 한다. 이곳에서 햇빛을 즐기기에 가장 좋다는 6,7월. 하지만 정작 이 시기에도 비와 바람이 너무 심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에서 비를 맞는다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이기에 서둘러 다시 구시가지로 향한다. 아침의 돌 성벽 길에는 아무도 없다. 탈린의 구시가지 자체에 오로지 나만이 있는 것 같다. 멀지 않은 곳에 발트해가 보인다. 핀란드에서 넘어오는 페리도 이제 곧 에스토니아 땅으로 들어올 것이다. 발트해에서 바라보는 탈린의 전경은 어떨까. 오른 편에 둠페아 성과 왼 편의 올레비스테 교회의 첨탑 그리고 건물들의 빨간 지붕들. 내 눈에 담기에도 벅찬 탈린의 아름다움. 바이킹과 노르만족들은 이곳으로 건너오면서 이 광경을 보고도 기어코 전쟁을 해야 했을까.
나는 꽤 오랜 시간 탈린을 바라다보았다. 아마 멀지않은 몇 년 후, 그리고 반드시 겨울이라는 조건이라면 나는 아마 다시 이곳에 서 있을 것이다.
비가 더욱 거세졌다. 서둘러 숙소로 가서 짐을 챙긴 후 예정보다 서둘러 라트비아로 내려간다.

탈린이 올드타운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 왔던 이유는 에스토니아의 기후와 관련이 깊다. 항상 안개가 짙게 끼어 탈린 폭격 당시 전투기들은 폭탄의 투하지점을 가늠하지 못해 엉뚱한 발트해에 폭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탈린의 기후가 에스토니아를 살린 셈이다.

음식

카루Kalu
‘곰’이라는 뜻의 에스토니아 전통식당. 돼지고기 안에 플럼을 채운 뒤 와인으로 매리네이드 한 이집 주인장의 추천 음식은 무척 새콤해서 색다른 맛이다. 비루 게이트에서 한 블럭을 지나 왼 편에 있으며 주인이 화이트 블루스 팬이라 식당 안에는 언제나 블루스가 흐른다.

헤스버거
간단하게 북유럽의 햄버거를 즐겨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핀란드 브랜드로 발트 3국 뿐 아니라 러시아와 터키, 독일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탈린에 유독 헤스버거 매장이 많으며 기본적인 세트는 4유로 안팎이다.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동아닷컴>

<발트 3국 공통 팁>

환전
3국 공히 유로를 쓴다. 현지 환전율이 그다지 좋지 않다. 많은 숙소와 식당에서 카드를 받으므로 카드와 현금을 적절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언어
발트 3국의 언어는 모두 다르며 인접국이지만 특히 에스토니아의 언어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다르다. 영어가 잘 통하지만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면 라트비아에서는 좀 더 편하게 여행 할 수 있다.

전압
한국과 같다. 220v 동일.

발트 내의 국경 넘기
버스로 국경을 넘을 때는 특별한 검사를 하지 않는다. 개인별 이동시 불시에 검문이 있을 수 있다.

버스 이동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나라는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나라 자체가 크지 않아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리가까지는 다섯 시간, 다시 빌뉴스까지는 대략 네 시간 정도가 걸린다. 버스티켓은 각 나라의 버스터미널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국가 간의 이동 티켓은 일반 창구에서 팔지 않고 룩스나 에코라인 같은 개인 버스 회사의 별도 부스에서 판매한다. 버스표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과 현장 구매 모두 가능하며 버스 탑승 전 여권 검사를 하기 때문에 여권 지참은 필수. 버스 내부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다.
에코라인 http://ecolines.net/en/
룩스 http://www.luxexpress.eu/en

기차 이동
전 유럽을 커버하는 유레일패스는 불행하게도 발트 국가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등에서 기차로 입국이 가능하나, 라트비아의 경우 벨로루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벨로루시 비자가 따로 필요하다. 기차로의 입국은 비 추천.

선박 이동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로 오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편수도 많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돌아가는 배편은 생필품과 맥주 등의 주류를 사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치안
표현을 잘 하는 민족은 아니지만 러시아나 폴란드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라 치안 문제는 다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야간 시간의 도심 활보는 주의할 것.

인터넷
발트의 인터넷 사정은 꽤 좋다. 전 세계적인 인터넷전화로 유명한 스카이프를 처음 발명한 곳도 에스토니아이다. 숙소와 레스토랑, 터미널 등지에서 쉽게 와이파이에 연결된다.

비자
발트 3국 모두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90일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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