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직장을 다니던 30대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바이크 세계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미쳤다'와 '멋있다'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그게 미친 것이든 멋진 것이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많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할 뿐이다. '푸른 늑대를 찾아서'라는 이름하에 유라시아 횡단 및 아프리카 종단 바이크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송인근(35) 씨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30대 남성이다. 거창한 목표를 지닌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떠난 여행도 아니지만 그가 지나고 또 지나갈 50000Km의 여정은 마찬가지로 조금 더 용기를 발휘할 예비 모험가들에게 하나의 참고서가 될 만하다. 이에 동아닷컴에서는 송인근 씨의 9개월에 걸친 여행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사진제공|송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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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첫 당도지 에스토니아

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한 첫 관문은 에스토니아 세관이었다. 지금까지 해외에 나가본 건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주변국이 전부이고 거기다 여행보다는 업무로 인한 출장이 많았던 나에게 유럽은 굉장히 낯설고 설레는 곳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의 설렘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럽의 첫 당도지 에스토니아는 출입국 검문소에서부터 담배 17갑을 압류하는 시련을 선사했다.

세금 없이 통과가 가능한 담배의 소지 한도가 2갑이란 걸 알지 못한 무지가 원인이긴 했지만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하자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전부다 압류당하는 것은 모면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했다. 에스토니아는 도로 상태도 좋고 엄청나게 많은 표지판 덕분에 탈린으로 가는 방향과 거리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에 들어서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숙소에서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캐시카드를 분실한 덕택에 수중에 있는 돈은 15유로가 전부였고, 이 돈으론 리터당 1.2 유로정도인 기름값을 충당하기도 빠듯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미리 사온 것이고, 잠은 캠핑을 이용하기로 했다.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더 맛있고, 피곤할 때 눕는 침대가 더 편안한 것처럼, 유럽에서는 스스로 약간의 ‘결핍’을 즐길 생각이다.

저녁 7시경에 도착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생각보다 더 한적한 도시였다. 다음날이 밝으면 바로 라트비아로 출발할 예정이기 때문에 탈린의 외곽 공터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준비했다.

그리고 텐트 안에서 파스타와 라면, 보드카와 먹다 남은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홀로 즐기는 파스타 라면과 보드카는 비싸고 좋은 음식은 아니었지만 배고프고 피곤했기에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유럽에서의 첫 하루가 저물었다.
사진제공|송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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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있었던 고마운 사람들

밤사이 비가 꽤 많이 내렸지만 다행히 텐트 안은 전혀 젖지 않았다. 그래도 비오는 날 길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 것에 약간은 찌뿌듯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정작 잠을 깨운 건 빗소리나 습한 날씨가 아니라 낯선 사람의 목소리였다.

텐트 밖에서 ‘헬로우’ 하는 소리가 들려 비몽사몽 나가보니 헬멧 쓴 남자가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처음 텐트를 칠만한 공터를 알려주었던 라이더가 출근하는 길에 걱정이 돼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떠나보냈고 잠이 좀 덜 깬 상태라 이름이나 이메일도 묻지 못했지만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에스토니아의 은인은 그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바이크를 두고 주변 관광지를 돌아볼 목적으로 도심 내 주차장을 알아보았지만 한 시간에 2.5유로라는 가격 때문에 한참을 고민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짐을 잃어버리면 정말 큰일이었기 때문에 주차장에 들어갔고 관리인 아저씨는 바이크는 한 시간에 1유로라고 말해 주었다.

더욱이 이 아저씨는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짐을 사무실에 넣으라고 배려해주고 세 시간 반 정도 후에 돌아오자 주차비도 3.5유로가 아닌 1유로만 받겠다고 했다.

“장기여행에 돈 많이 아껴야 할 테니 깎아준 거다. 여행 선물이다”라는 말에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내친김에 에스토니아 이름을 만들어달라고 하니 관리인 아저씨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에스토니아식 이름이라며 ‘일마르(ILMAR)’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좋은 분들과의 만남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라트비아에서 스웨덴까지 ‘여행은 계속되고’

에스토니아에서 라트비아로 가기 전 가족에게 연락을 하니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여행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나 다행히 다음날 상황이 나아져 여행은 계속 됐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됐고, 그 이후부터는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노력해도 쉽게 마음가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현지에서 계속되는 다른 여행객, 혹은 현지인들과의 만남과 인연으로 인해 조금씩 마음을 다잡았고,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스웨덴으로 향하는 페리 예약과 캐시카드 재발급 이후의 일처리를 진행했다.

다음날 곧바로 리가 인근의 벤츠필드로 이동해 스테나라인 페리를 탑승했고, 10여 시간의 항해를 통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70km 떨어진 니냐샘 항구에 도착했다.
사진제공|송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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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라에 갈 때마다 피어나는 묘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안고 캠핑장으로 향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 모두 유로가 아닌 자국화폐를 쓰고 있었고, 달러와 유로밖에 없었던 나는 졸지에 거지가 되고 말았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상황을 설명하니 캠핑장 관리인 친구가 정말 쿨하게 그냥 자고 가라고 했다. 긴 여행하고 있으니 선물이라는 이 젊은 관리인의 배려 덕에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스웨덴의 첫인상은 복지천국 북유럽의 나라답게 정갈한 고급스러움이다. 스웨덴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과 드로트닝홀름 왕실 영지, 팔룬의 구리 광산 지역을 돌아보려고 마음먹고 묘지공원으로 향했다.

구역별로 나뉜 거대한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은 굉장히 직관적으로 설계된 듯 보였다. 동선이 명확했으며 구역별로 평범한 공간이라는 느낌이었다.

묘지공원을 관람하고 스톡홀름 시내에서 50달러를 스웨덴 크로나로 환전했다. 높은 물가덕에 스톡홀름 도심구경은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곧바로 드로트닝홀름 왕실 영지로 바이크를 향했다.

왕실영지도 간단하게 둘러본 후 세 번째 유네스코 유산이 있는 팔콘으로 향했다. 팔콘의 구리광산은 한때 세계 구리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광산이었으나 그냥 눈앞에서 보기에는 큰 구리광산이었다.

사실 스웨덴에서의 여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보다 이곳 사람들의 삶이 더 눈에 띄었다. 정갈하고 깔끔한 주택들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가시간을 즐기는 모습은 피상적일지 몰라도 삶의 질과 여유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표정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게, 도시부터 시골까지 아름답고 깔끔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참 부러웠다.


●“여행자여, 노르웨이로 가라!”


노르웨이로 넘어가기 전 50달러를 추가로 환전해 나름대로의 사치품인 리큐어를 한 병 구입했다. 그렇게 안 먹고 불편하게 지내면서 결국 산 게 술이었지만 이 작은 호사는 상당한 기쁨이었다.

남은 돈으로 기름을 넣고 먹을거리를 구입해 노르웨이로 향했다. ‘노르웨이 숲’이라는 책 제목처럼 노르웨이로 향하는 길은 끝없이 펼쳐진 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관통하며 수백km에 달하는 숲속을 달린 것만은 분명하다.
사진제공|송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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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국가간의 국경검문을 폐지한 노르딕여권연맹덕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경기도에서 충청도를 넘어가듯 표지판 하나로 국경이 나뉘어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갈 때 즈음 엘버름이란 조그만 도시에 도착했고, 이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기 싫어 인적이 드문 공터를 찾아 텐트를 쳤다.

장기 여행의 묘미는 캠핑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노르웨이 조그만 마을 근처 외딴 숲 속 공터에서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고, 곡물죽을 먹는 게 캠핑하는 것이 꼭 환상적이거나 감상적이진 않다.

그저 오늘 하루도 이렇게 잘 마무리 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잘 곳이 있어 누울 수 있고, 배가 고픈데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그래도 오늘은 쓸쓸한 밤을 함께 해 줄 리큐어가 있어서 보다 더 풍요로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시 아침이 오고 어느 정도의 돈을 환전을 한 후 본격적으로 노르웨이의 여행 코스를 정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르웨이에서도 국가에서 지정한 특히나 아름다운 18개의 코스를 내셔널루트(national tourist route in Norway)라고 부르며, 이중 27번 국도를 지나는 론다네(rondane) 루트로 가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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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릴레함메르를 지나 도착한 27번 국도는 과연 장관이었다.

2,000미터가 넘는 산들을 끼고 도는 론다네루트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만족과 뿌듯함을 선사했다.

사실 노르웨이의 절경은 내셔널루트뿐만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셔널루트는 끝났지만 다음코스로 이동하는 중간중간 보이는 풍경은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곤 했다.

수 백미터에 이르는 산맥들 사이로 난 길을 달리며, 머리끝이 새하얀 산봉우리 아래로 폭포가 쏟아지는 풍경과 맞닥뜨렸을 땐 정말로 놀라움에 길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노르웨이에서는 흔해 빠진 절경을 뒤로하고 다시 캠핑을 준비했다. 노르웨이에 도착해 환전한 돈은 300달러정도였고, 이건 아껴야 된다는 걸 의미했다.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는 빅맥 세트가 우리나라 돈으로 16000원정도 였고, 카페 샌드위치가 4~50000원에 달하는 기대대로의 가격을 보여주었다.

그 덕에 마트에서도 무조건 싼 음식을 찾았고, 식수는 민가에서 수돗물을 물통에 받아와 사용했다. 특이 한 것은 안달스네스의 한 민가에 물을 요청하자 옆 호수에서 물을 담아가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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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도 되는 물이냐고 묻자 괜찮다고 해서 마셔보니 약간 달달하고 특이한 향이 있었다. 의외로 나쁘지는 않았고, 그냥 호수의 물도 그냥 마셔도 되는 노르웨이의 자연환경에 작은 놀라움을 느꼈다.

또다시 밤을 적적하지 않게 만들어줄 친구, 리큐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트롤스티겐에서 게리랑게르(Trollstigen–Geiranger)로 가는 루트로 발걸음을 향했다.

트롤스티겐 – 게리랑게르 루트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루트중 하나로 말도 안 되는 절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 삶에서 다시 보기 힘든 멋진 풍경을 마주하니 처음 여행을 시작하던 설렘과 흥분이 다시 찾아왔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감레 스트리네필엘스베겐 (Gamle Strynefjellsvegen) 구간과 송네프제렛 (Sognefjellet) 구간, 아우랜즈필렛(Aurlandsfjellet), 하르당에르비다(Hardangervidda) 7번국도, 하르당거(Hardanger) 피오르드를 끼고 도는 루트, 프레이케스톨렌까지 모든 내셔널 루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떨림과 감동을 선물했다.

내셔널루트는 모두 어떤 유명한 시인이 와도 쉽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경치를 자랑했다. 다만 누구나 내셔널루트에 대해 공통적으로 확실하게 하는 말이 있다.

“최대한 많은 내셔널루트를 방문하고 또 감상하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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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의 묘한 만남

약 1주일간의 노르웨이 유람을 마무리하고 덴마크로 이동했다. 히츠할스란 조그만 항구도시에 도착하니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물가가 비싼 덴마크에서 숙소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아 독일로 바로 향하기로 했다.

독일에 들어서니 일단 물가가 정말 인간적이었고, 차량의 속도가 정말 빨랐다. 130~140km로 달리는데도 나를 추월하는 차량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이런 속도감 때문인지 함부르크(hamburg)까지 곧장 향했고, 인근 캠핑장에 들러 11번째로 텐트에서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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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반가웠던 이유는 재발급 받은 캐시카드가 베를린 페덱스 사무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호스텔을 예약하고 12일 만에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독일에 오래 머물진 않았지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었다. 카드를 찾은 기념으로 페덱스 앞에 있는 수제 햄버거집을 찾았고, 잠시 가게 사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터키에서 온 이 아저씨는 어린 시절 베를린으로 이민을 와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살고 있었으며, 유럽의 이민이나 난민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아저씨는 “많은 터키사람들이 베를린으로 오면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고생해서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다. 종교적인 문제의 부분에서는 더욱 안 좋다. 겉으로는 드러나진 않지만 실상은 무슬림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하지는 않는다”라고 이민이나 이주가 능사가 아님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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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만남은 드레스덴에서였다. 드레스덴이라는 도시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건, 지난해 3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란 ‘드레스덴 선언’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드레스덴에 갔을 때는 하필이면 북한에서 포격하고 전쟁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남북한 위기가 고조된 시기였다.

그 시기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란 선언이 있었던 드레스덴에 내가 있다는 게 묘하고 재미있었다.

기왕 드레스덴에 온 김에 드레스덴 선언 전문을 읽어보았다. 드레스덴 선언 자체에는 좋은 내용이 참 많았다.

특히 북한과 함께 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당시 선언 내용에 북한이 격하게 반발한 걸 보면 북한과 먼저 이야기되진 않았나보다.

그리고 1년 반 후 포격과 협상, 그리고 합의가 있었다. 처음부터 웃으며 손을 잡진 않았지만 결국 손은 잡긴 잡았고 합의의 내용 중 드레스덴 선언에 나온 내용들이 아주 일부 포함돼 있었다.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 덕분에 드레스덴은 또 다른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나중에 다시 돌아올 계획이지만 독일에서 짧은 5일을 보냈고 이제 체코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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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자세한 여행기는 송인근씨의 블로그 (http://songig0831.blog.m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송인근 / 감수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