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이끌 정신문화는 선비정신”…‘선비처럼’ 펴낸 김병일 이사장 인터뷰

입력 2015-11-03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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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이사장

단아한 옥색 두루마기에 군더더기 없는 얼굴. 차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강직한 말세.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선한 눈. 선생의 모습은 머리 속에 그려왔던 선비를 떠오르게 했다. 30년 넘게 경제 관료로 봉직하며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추진해 왔던 선생은 2005년 퇴직 후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으로 부임해 경북 안동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안동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지만 많은 시간을 안동 퇴계 종택 뒤 산기슭에 위치한 선비수련원에 머물며 퇴계 이황을 정점으로 한 선비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그렇다. 김병일(71)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장관을 역임하며 원칙과 도리를 앞세우는 ‘딸깍발이’ ‘대쪽 공무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 이사장이 지난 2012년 퇴계 선생의 삶을 소개한 역작 ‘퇴계처럼’ 이후 3년 만에 또 하나의 화두를 들고 세상으로 나왔다. ‘선비정신’이 그 화두다. 선비정신을 담은 책 ‘선비처럼’(김병일 지음 l 나남 펴냄)을 앞세워 가난한 정신문화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에 죽비소리를 울리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선비처럼’ 출판 간담회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도산서원 선비수련원은 어떤 곳인가.

“강의와 체험을 통해 선비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현대에 필요한 선비정신을 배워 선비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2002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2014년 한 해 동안 5만5000여명이 다녀갔다. 이들이 오는 이유는 퇴계 선생의 삶의 정신이 오늘날 사는 본인들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비처럼’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책을 쓴 동기는 무엇인가.

“‘선비처럼’은 머리와 손으로 집필한 게 아니다. 선비문화수련원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감동했다. 그곳에서 제 삶과 비교했을 때 후회스러웠다. 퇴계 선생의 선비적인 삶을 수련원에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주고 싶었다. 팍팍하고 혼탁해지는 우리 사회를 보며 틈틈이 느낀 것이 큰 자양분이 됐다. 선비답지 못하게 자랑질만 하게 됐다.(웃음)”


-선비정신의 요체는 뭔가. 그리고 지금 선비정신이 필요한 이유는.

“선비와 양반을 혼돈 하는 경우가 많다. 양반은 현직 벼슬아치다. 신분적 개념인 것이다. 선비는 양반 중에서 이상적 인격체, 즉 지덕(知德)을 겸비하고 의리와 범절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이뤘지만 정신문화는 그리 풍요롭지 못하다. 지금 새로운 정신문화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바로 선비정신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엔 다른 사람을 공감시키는 문화가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의 근간엔 배려와 섬김이 있고 이는 인성교육을 통해서 배양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선비정신을 이어가자고 했지만 그 뒷면도 꿰뚫고 있었다. “선비와 선비정신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남녀차별, 반상차별, 적서차별, 신분제, 사농공상 천시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부정적인 것은 버리고 긍정적인 면을 계승하되 현대에 맞게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비처럼 사는 법을 알려 달라. 또 2015년판 선비정신은 어떤 것인가.

“수신제가(修身齊家), 가까운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습관을 갖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어릴 때 가정에서부터 인성교육을 시작해 평생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인성교육은 윗사람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말만으론 되지 않는다. 인성교육에 바탕을 둔 선비정신이야말로 오늘날의 아픔을 치유할 해법이다.”


-퇴계 이황 선생을 선비정신의 결정체로 꼽았는데.

“퇴계 선생을 조선시대 학식 높고 근엄한 대유학자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은 평생토록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을 배려했다. 한번은 한양에서 아이를 낳은 퇴계 선생의 맏손부의 젖이 모자라 맏손자(몽재 선생)가 선생께 안동 고향집 하녀를 서울집 유모로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남의 자식을 죽여서 제 자식을 살리는 것은 안 된다’며 타이른 일화가 있다. 패미니스트, 휴머니스트로의 퇴계 일화는 수 없이 많다.(김 이사장은 퇴계의 두 번째 부인인 안동 권씨의 ‘정신이상 해프닝’을 너그럽게 이해해 준 일화도 소개했다.) 퇴계 선비정신의 미(美)는 아는 것에 있지 않고 실천하는 지행일치(知行一致)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존중에 있다.”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김 이사장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선현들의 소중한 정신유산인 선비정신을 잘 계승해 소중한 정신문화로 계승하자”며 공식행사를 마쳤다. 김 이사장이 간담회 후에 전화를 걸어왔다. 최근 일부 스포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도덕적 해이에도 일침을 가했다. “최근 어느 스포츠분야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인성교육이 안 된 탓이다. 특히 사회에 영향력을 많이 끼치는 스포츠분야에서 선비정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병일 이사장이 쓴 ‘선비처럼’은 어떤 책?

도산서원 원장 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인 저자가 안동에 기거하며 쓴 글과 강연을 모은 책이다. 퇴계 선생과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정신문화 기근에 있는 한국사회에 참신한 대안을 제시한다. 제1부 ‘인성회복을 위하여’, 제2부 ‘공감과 배려, 행복의 지름길’을 통해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3부 ‘다시 선비를 생각하며’ 제4부 ‘전통에서 배우는 지혜’를 통해 선비정신의 부활과 온고지신의 삶을 설파한다. 또 제5부 ‘사람 향기는 만 리를 간다’와 제6부 ‘정의 주장보다 따뜻한 가슴을’에선 인본주의, 인간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자칫 고리타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선비정신을 호흡이 짧은 글로 담박하게 담아냈다. 또 생활을 예로 들어 ‘온고’(溫故)를 현대의 눈높이에 맞췄다. 지루하지 않아 술술 넘어간다. 퇴계학연구원 이용태 이사장 쓴 추천사(선비정신…진정한 선진국으로 이끄는 견인차)와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의 ‘선비정신은 대한민국의 정신입니다’ 등 4편의 권독사는 ‘맛있는 양념’으로 김 이사장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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