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막을 내린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많은 시청자를 추억과 향수에 빠지게 했다. 특히 영화와 가요 등 ‘그때 그 시절’의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새롭게 선보였고 또 다른 감흥을 안겨 주었다. 그 콘텐츠의 핵심이 ‘스타’라고 할 때, 시청자는 드라마를 바라보며 많은 ‘청춘스타’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 가운데 조용원(사진)이 있다. 1980∼90년대 초반까지 강수연과 함께 또래 청춘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일명 ‘책받침 스타’로 군림한 그였다.
그가 1997년 오늘부터 MBC 일일극 ‘욕망’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해 1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에 조용원은 새로운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역시 당시 주가를 날리던 최재성의 상대역이 그의 몫이었다. 조용원의 드라마 출연은 1988년 3월 MBC 미니시리즈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후 9년 만이었다. 비록 드라마는 낮은 시청률 탓에 조기종영됐지만 조용원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아내며 오랜 만의 TV에 나서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선언하는 듯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주위의 권유로 미스 롯데선발대회에 출전하면서 TV 및 영화 일을 시작”(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한국영상자료원)한 조용원은 오밀조밀하면서 청순한 외모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았다. 특히 1984년작인 하명중 감독의 ‘땡볕’을 통해 그는 10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완숙한 연기로 찬사를 받았다. 아마도 ‘땡볕’은 조용원을 10대라는 육체적 나이와 성숙함이라는 정서적 시선을 구분하는 작품일 듯하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1985년 늦가을(11월1일) 조용원은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말았다. 이로 인해 큰 수술을 감당해야 했고 연기 활동 역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픔을 딛고 그 이듬해 영화 ‘먼 여행 긴 터널’을 시작으로 다시 카메라 앞에 나섰다.
그리고는 1989년 돌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는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며 예술학 석사를 거쳐 도쿄대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 사이사이 귀국해 몇몇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드라마 ‘욕망’이 그 한 가지다. 하지만 명성은 예전만 못 했다. 그가 ‘비운의 스타’로 불리는 이유다.
1997년 PC통신을 통해 영화를 비롯한 일본 대중문화를 소개하며 EBS ‘시네마천국’을 진행한 그는 이후 사업가로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