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현대, 프로스포츠 패러다임 전쟁

입력 2016-02-2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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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수원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삼성 썬더스 농구단-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 로고(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 제일기획으로 스포츠단 이관 후 내실경영 색채 강화
현대, 공격적 투자 거듭해 강세였던 축구·농구 이어 배구까지 1위로
재계 양대 그룹의 사뭇 다른 스포츠단 운영 전략의 귀결은?


대한민국 프로스포츠를 양분했던 삼성과 현대의 경쟁 구도에 미묘한 균열이 오고 있다. 그동안 고착화됐던 ‘야구와 배구는 삼성이 지배하고, 축구와 농구는 현대가 최강이다’는 판세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격변의 진원지는 삼성 스포츠단 운영 주체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삼성은 스포츠단을 그룹 내 홍보계열사인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시키는 작업을 완료했다.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졌던 축구단(수원 삼성 블루윙스)과 농구단(서울 삼성 썬더스·용인 삼성생명 비추미)에 이어서 배구단(삼성화재 블루팡스)과 야구단(삼성 라이온즈)까지 제일기획의 우산 아래로 넣어버린 것이다.

스포츠계에서 삼성이 벌이는 일련의 작업은 스포츠단의 지향성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삼성이 추구했던 일등주의에서 탈피해 자생경영을 추구하겠다는 ‘대전환’의 메시지가 읽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 일등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야구단과 배구단이 흔들리고 있다. 삼성화재는 2014~2015시즌 우승에 실패한 데 이어, 2015~2016시즌도 포스트시즌 진입을 놓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V리그 출범 이후 삼성화재가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음 시즌부터 남자배구 외국인선수를 트라이아웃으로 뽑게 되는데 삼성화재 앞에 놓인 불확실성은 더 극심해진다.

삼성 야구단은 도박 스캔들에 발목 잡혀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친 데 이어 스토브리그에서 내부 프리에이전트(박석민)와 외국인선수(디오너 나바로)를 놓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연봉 테이블에서도 긴축 한파가 불었다. 한화에 연봉 총액 1위 자리마저 내줬다. 트레이드 루머에까지 휩쓸리며 팀 분위기는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남자배구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여자배구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전북현대 모터스 축구단-전주KCC 이지스 농구단-울산 모비스 피버스 농구단-KIA 타이거즈 야구단 로고(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휘청거리는 삼성 스포츠단의 틈을 범(凡) 현대그룹의 스포츠단들이 파고드는 형세다. 남자배구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돌풍의 14연승을 거두며 올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최태웅 신임감독 체제에서 ‘업템포 1.0 배구’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며 삼성화재의 ‘몰빵배구’를 넘는 승리모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여자배구에서도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가장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팀으로 꼽힌다.

현대의 아성인 축구와 농구는 여전히 막강하다. 축구단 전북 현대 모터스는 K리그의 우승을 넘어 아시아 최강 클럽을 노리고 있다. 김신욱 영입 등 ‘한국판 갈락티코’를 추구하고 있다. 남자농구는 올 시즌 범 현대 계열인 전주 KCC 이지스와 울산 모비스 피버스가 정규시즌 1위를 다투고 있다. 이미 두 팀은 4강 직행을 확보한 상태라 우승 가능성이 꽤 높다. 야구단 KIA 타이거즈가 약체로 평가받지만 모그룹의 투자 자체가 위축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일등기업 삼성의 스포츠단 경영 방침 변화는 여타 대기업들에도 많건 적건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큰 틀에서는 삼성을 따라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현대는 다르다. 축소지향 트렌드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재계 양대 그룹이 승패뿐만 아니라 철학을 놓고도 경쟁선상에 섰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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