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굿모닝 MLB] 8년 만에 다시 전성기…힐의 ‘인생극장’

입력 2016-05-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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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좌완투수 리치 힐은 올 시즌 7승3패, 방어율 2.18로 순항하고 있다. 입단 3년째인 2007년 11승을 따낸 뒤 지난해까지 9승을 추가하는 데 그치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지만, 36세가 된 올해 다시 잠재력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오클랜드 36세 노장 투수 리치 힐

2007년 이후 하락세…떠돌이 생활
작년 4차례 기회 붙잡고 오클랜드행
7승3패 방어율 2.18 ‘재기상’ 후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25일(한국시간) 현재 승률 0.426(20승27패)를 기록하고 있다. 아메리칸리그 15개 팀 가운데 13위다. 그 아래로는 미네소타 트윈스(0.244)와 휴스턴 애스트로스(0.391)뿐이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인 시애틀 매리너스와 8게임차가 나지만 ‘소리 없이 강한 남자’ 리치 힐의 투혼이 없었다면 더 참혹한 성적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1980년 3월11일 보스턴에서 태어난 힐은 올해 투수로서는 환갑의 나이인 36세다. 완봉승을 벌써 3차례나 따낸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최근 22경기에서 19승무패를 기록 중인 제이크 아리에타(시카고 컵스), 올 시즌 개막 후 9전승을 거두다 25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에서 처음으로 패전투수가 된 크리스 세일(시카고 화이트삭스)처럼 눈에 띄는 기록은 전혀 없다. 하지만 힐은 올 시즌 7승3패(방어율 2.18)로 순항하며 팀이 올린 승리의 35%나 책임지고 있다. 이 분야만 놓고 보면 세일(33.3%)이나 커쇼(29.2%)를 능가한다. 지난 시즌까지 20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주로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선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재기상’을 받을 가장 강력한 후보로 손색이 없다.


● 늦은 출발

고교를 졸업한 1999년 힐은 신인드래프트 36라운드(전체 1088번)에서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됐지만 미시건 대학으로 진학했다. 2년 후 드래프트에서는 7라운드(전체 209번)로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선택을 받았으나 대학 잔류를 선언했다. 결국 힐은 대학 4년을 다 채운 후인 2002년 드래프트 4라운드(전체 112번)에서 시카고 컵스에 지명되며 입단했다.

혹독한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015년 6월15일 꿈에도 그리던 빅리그 무대 데뷔전을 치렀지만 2006년까지는 메이저리그보다 마이너리그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루키 시즌인 2006년 후반 컵스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힐은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다. 비록 남들보다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17경기에서 16차례 선발로 등판해 99.1이닝을 소화하며 6승7패(방어율 4.17)를 기록했다. 완봉 1차례를 포함해 2차례 완투를 한 힐의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짧은 전성기

2007년은 힐이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시즌이었다. 카를로스 삼브라노, 테드 릴리, 제이슨 마키에 이어 4선발로 나선 그는 직구 구속이 90마일 정도로 빠르지 않았지만 좌완투수의 이점과 날카로운 제구력을 앞세워 4월 한때 18연속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시즌 내내 로테이션을 지킨 그는 32경기에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195이닝 동안 27개의 홈런을 허용한 것이 흠이지만 1.19의 낮은 이닝당출루허용(WHIP)을 기록하며 생애 최다인 11승(8패)을 따냈다. 힐의 주무기는 커브. 당시 배터리를 이뤘던 마이클 배럿은 “처음 힐의 공을 받았을 때 커브볼의 낙차가 매우 커 깜짝 놀랐다. 좌완투수가 던지는 커브로는 단연 최고”라며 극찬했다. 그해 85승을 거둬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컵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힐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맞붙은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했지만 3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떠돌이 생활

힐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이듬해인 2008년이었다. 갑자기 제구에 난조를 보인 것이 결정타였다. 5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19.2이닝 동안 허용한 볼넷이 무려 18개에 달하자 바로 마이너리그행을 통보 받았다. 빅리그 재진입을 노렸지만 오히려 트리플A에서 싱글A까지 추락하는 수모까지 당했다. 2009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전격 트레이드된 그는 다시 빅리그에서 선발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13경기에서 3승3패(방어율 7.80)에 그쳤다. 이후 불펜투수로 강등된 힐은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이던 지난 시즌까지 무려 6년 동안 선발로서 빅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힐은 팬들의 기억 속에서 존재감이 사라진 투수였다.


빌리 빈의 안목

고향팀 레드삭스에서 두 번이나 방출의 설움을 당했던 힐은 지난해 8월15일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한 후 9월9일 다시 빅리그에 입성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일찌감치 좌절된 레드삭스는 노장 좌완투수에게 4차례 선발등판의 기회를 제공했다. 힐은 친정팀 오리올스를 상대로 2안타 완봉승을 거두는 등 4번 모두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2승1패, 방어율 1.15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오랜만에 메이저리그 소속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FA(프리에이전트)가 된 힐에게 어슬레틱스가 손을 내밀었다. 넉넉하지 못한 재정이지만 오클랜드의 빌리 빈 구단운영 사장은 힐에게 1년 600만 달러라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연평균 3000만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슈퍼스타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11년 동안 받았던 연봉을 다 합친 것보다 두 배가 넘는 큰 돈이었다.

5선발로 영입된 선수에게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빌리 빈의 안목은 적중했다. 특히 24일 시애틀 매리너스 원정경기에서 8이닝 8안타 무4사구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시즌 7승째를 따낸 장면은 압권이었다. 홈에서 1승3패(방어율 3.79)에 그쳤지만 원정에서는 6승무패, 방어율 1.40의 놀라운 성적을 올리고 있는 힐의 노장 투혼은 올 시즌 어슬레틱스 팬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이자 인생 역전의 표본이다.

MBC스포츠플러스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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