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여정, 흐르는 세월마저 연기가 되는 ‘진짜 배우’

입력 2016-06-10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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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나보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소멸됐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의아했어요. 그 말이 재밌어서 제작진과 만나게 됐죠. 근데 정말 내게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일종의 도전의식 같은 게 생겼어요.”

배우 윤여정(70)은 도시적인 이미지의 대명사다. 지난 1966년 데뷔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도회적인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나 한 영화 제작자의 발언이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 바로 창감독이 연출한 영화 ‘계춘할망’이다.

‘계춘할망’은 12년의 과거를 숨긴 채 집으로 돌아온 수상한 손녀 혜지(김고은 분)와 오매불망 손녀바보인 계춘할망(윤여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가족 간의 이야기를 다룬 따뜻한 스토리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보통 끝까지 읽게 되는 작품이 많진 않아요. 지나치게 과하거나 취향과 맞지 않으면 끝까지 읽기 어렵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자극적이거나 굉장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근데 끝까지 읽고 마음이 뭉클했어요. 처음엔 독립영화인가 싶었지만 드라마틱한 상업영화라고 느껴졌어요.”

극 중 윤여정은 평범하고 소박한 제주도 할머니 계춘으로 등장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손녀딸을 잃은 후 12년 만에 재회하며 애틋한 마음을 연기했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에 특수 분장을 한 윤여정은 화약약품 탓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

“어떤 영화든 편하게 찍은 건 없어요. 그런데 각오했는데도 너무 힘들었어요. 12년이 지난 후의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서 특수 분장을 했거든요. 분장에 사용한 화약약품 탓에 피부과를 다녀와도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요. 머리털은 옥수수수염이 됐고 피부도 빨갛게 됐죠. 뱀장어를 맨손으로 잡는 장면을 찍다가 물리기도 할 정도로 고된 현장이었어요.”


그는 원로배우이자 베테랑 배우이면서도 매 작품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계춘할망’에서는 치매에 걸린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썼다.

“매 작품마다 아쉬움이 늘 남아요. 보통 자신이 한 일을 두고 ‘정말 잘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늙은 할머니들의 치매 증상을 보여주려고 혀를 많이 내놓고 연기했어요. 그러한 부분이 지나치게 표현된 게 아닌가 싶어서 스스로 아쉬움이 남았어요. 그래도 영화 자체가 워낙 따뜻하니까 위안이 됐죠.”

함께 호흡을 맞춘 김고은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극중 자신의 손녀딸로 출연한 김고은을 향해 가능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겸비한 배우라고 표현했다.

“우선 남자들이 좋아하는 미녀상이 예전과 달라져서 좋았어요. 김고은이 나온 영화 ‘은교’를 봤을 때 가능성 있고 다양성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촬영장에서는 그 아이가 내게 쭈뼛쭈뼛 다가오는 게 그냥 좋았어요. 연기력 측면으로는 제가 맘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연기는 함께 느끼고 함께하는 거니까요.”

‘계춘할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윤여정은 엔딩신을 언급했다. 유채밭을 배경으로 손녀딸을 향해 다가서는 모습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계춘할망’에서 마지막 엔딩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 아이의 전시회를 가는 걸로 끝이었는데 바뀐 부분이죠. 아무래도 감독이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라 그런지 유채밭 배경을 아름답게 찍었더라고요. 그러한 장면들이 더욱 따뜻하고 온 세대가 공감할만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는데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최근 윤여정은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에도 출연 중이다. 영화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에 이어 ‘디마프’에도 출연 중인 그의 행보는 멈출 줄을 모른다.

“‘디마프’가 처음에는 공중파 편성이 거절됐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tvN에서 방영된 건데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늙은이들도 요즘은 오래 살잖아요. (웃음) 노희경 작가에게 참 감사해요. 다들 50년 전에는 같은 드라마에서 했는데, 지금은 다 각자 드라마에서 활동하느라 한 작품에서 못 만나잖아요. 노 작가 덕택에 이렇게 모여서 연기도 하는 거죠.”

어느덧 올해 일흔을 맞은 그는 여전히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종횡무진하며 맹활약 중이다. ‘계춘할망’에서 보여준 정감 가득한 할머니 역할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40대에는 ‘일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나이 60살이 넘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어요. 돈이나 이름, 명성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감독, 작가와 함께 작업하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스스로 최고의 사치를 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배우의 인생이 아닐까요.”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콘텐츠난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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