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싸움+분위기’ 전북, ACL 4강으로 이끈 2가지 힘

입력 2016-09-13 2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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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기 싸움+분위기’ 전북, ACL 4강으로 이끈 2가지 힘

-최강희 감독, “기선을 제압하라!”…길어진 팀 미팅
-전북, 완벽한 원 사이드 게임으로 상하이를 지배

대개 축구경기를 앞두고 진행되는 팀 미팅은 길지 않다. 미흡하다 여겨지는 부분이 있을 때, 사전에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을 때, 상대 라인업이 예상과 다른 경우 벤치가 꼭 필요한 요점들을 짧게 정리해 다시 한 번 주지시키는 정도다.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 길어야 10분을 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요 공식경기 규정상 1시간 30분 이전까지 양 팀 선수단은 경기장에 도착해야 하고, 이후 가벼운 트레이닝으로 몸을 살짝 덥힌 뒤 경기에 출전한다. 이 때 사전 훈련은 통상 20~30분 정도인데, 시간은 팀 재량이다.

그런데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와 상하이 상강(중국)의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이 열린 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 풍경은 평소와 달랐다. 전북 선수단은 한참 동안 그라운드로 나오지 않았다.

전북의 녹색전사들은 상하이 선수들이 한창 땀 흘리던 오후 6시 28분에야 2만7000여 홈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박충균·김상식 코치, 파비오 피지컬 코치가 주도한 훈련도 아주 짧았다. 정확히 15분. ‘캡틴’ 권순태 등 골키퍼 2명만 먼저 나와 몸을 풀었을 뿐이다.

반면 원정팀 상하이는 킥오프를 50여분 남겨놓은 오후 6시 10분 무렵부터 전부 그라운드에 나와 결전을 대비했다. 물론 전북에 사전 훈련은 큰 의미가 없었다. 평소 꾸준하고 혹독한 훈련으로 100% 컨디션이 완성된 상태였다.

대신 미팅을 좀더 길게 가졌다. 여기서 전북 최강희 감독이 제자들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분명했다. 핵심은 전술적인 포인트가 아닌, 정신력 고취에 맞춰졌다. “기 싸움에서 절대로 눌리지 마라!”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쳐 상대 흐름을 꺾어라!” “잠시도 숨 돌릴 틈을 주지 말자!” “우리 실력이면 아시아 최고다!”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최 감독이 가장 화를 낼 때는 패배도, 뒤진 채 맞는 후반도 아닌, 상대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는 무기력한 제자들을 지켜볼 때다.

지시가 통했다. 녹색군단이 춤을 췄다. 정신적인 준비를 한껏 끌어올린 전북은 경기력부터 내용까지 모두 완벽했다. 투지까지 더해지면서 천하무적이 됐다. 전반부터 원 사이드 게임으로 전개돼 전주성을 뜨겁게 달궜다. 후반에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상하이를 몰아쳤다. 이동국과 레오나르도가 2골씩 넣었고, 자책골이 서비스로 찾아왔다. 5-0 대승. 경기가 풀리지 않자 후반 29분 상하이 공격수 루웬준은 자신을 괴롭힌 전북의 중앙수비수 김형일을 발로 가격해 즉각 퇴장을 당했다.

전북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상하이의 스벤 외란 에릭손(스웨덴)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고, 사실상 패배가 결정된 스코어 0-3 이후에는 아예 벤치에 주저앉았다. 1600여 명의 상하이 원정 팬들의 “짜요(힘내라)” 함성 역시 후반 30분 이후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내 떠들썩하던 20여 명의 중국 취재진도 고개를 푹 숙였다.

마르지 않는 자금줄, 많은 돈으로 전 세계 유명 스타들을 잔뜩 사들여 세계축구 선수이적시장의 ‘대세’로 떠오른 중국이지만 전북에 맞선 상하이를 통해 실력도, 매너도 아직까지 뚜렷한 한계를 보여줬다.

전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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