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 과정에 있는 KIA와 LG는 가을야구를 통해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KIA 노수광 한승택 그리고 LG 임정우와 유강남(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스포츠동아DB
LG와 KIA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KBO리그 최고의 흥행 매치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전통의 인기구단끼리 만나 가을야구 첫 판부터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사실상 한국시리즈 우승팀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승자가 어디일지가 더 궁금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프로야구의 황금기였던 90년대 해태(KIA의 전신)와 LG의 라이벌전을 보는 듯했다. 이 매치업이 성사된 것부터 이변이었다. 시즌 전에만 해도 2팀은 가을야구 사정권에서 벗어나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두 팀 모두 하위권 평가를 떨쳐냈다. 그것도 ‘리빌딩’이라는 KBO리그 최고의 난제를 풀어냈기에 박수 받을 만하다. KIA는 올 시즌과 이번 시리즈를 통해 외야수 노수광(26) 김호령(24), 포수 한승택(22) 등 새롭게 팀의 미래를 이끌어갈 만한 인재들을 얻었다. KIA 김기태 감독 역시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눈에 띄는 성장에 뿌듯해 했다. 특히 이들에게 가을야구라는 경험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할 자산이다.
LG는 라인업의 대다수가 젊은 선수들이다. 시즌 내내 팀의 뒷문을 지킨 투수 임정우(25)나 2년째 주전포수로 뛰고 있는 유강남(24)을 비롯해 내야수 양석환(25), 외야수 이천웅(28) 이형종(27) 채은성(26) 문선재(26) 등이 주축으로 자리하면서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팀들이 세대교체를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쉽사리 답을 구하지 못한다. 리빌딩의 타이밍을 놓쳤을 때 잃는 건 단기간의 성적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10년이란 시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LG는 이전까진 리빌딩을 하지 못해 고생한 팀이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2013년 플레이오프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암흑기’가 길어진 이유는 명확했다. 당장의 성적에 눈이 멀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지 못했고, 근시안적인 투자가 이어졌다. 성적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홀로 지면서 가장 중요한 ‘연속성’이 사라졌다. 그 사이 팀은 골병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2년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김 감독은 부임 2년차 시즌에 가을야구라는 팀의 숙원까지 풀어냈다. 김 감독의 리빌딩 방식은 기존의 고참들을 인정해주고, 이들이 최고의 성적을 낼 토대를 마련해준다. 베테랑들이 중심을 잡고, 그 사이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이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형님 리더십’으로 대변되지만, 규율에 관해선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단기간에 ‘체질개선’ 효과를 가져오곤 한다. 이러한 기조는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2011년 준플레이오프를 끝으로 가을야구에서 멀어진 KIA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김 감독은 LG 때와 마찬가지로 KIA에서도 부임 2년차 시즌에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KIA는 내년 시즌 승부를 보기 위해 올해 포스트시즌 경험을 간절히 원했고, 이를 이뤄냈다.
김 감독에 이어 LG 사령탑이 된 양상문 감독도 리빌딩에 대해선 확고한 신념이 있다. 과거 롯데 사령탑 시절, 장원준(현 두산) 강민호 등 세대교체의 틀을 다졌던 것으로 평가받았던 그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리빌딩에 임한다. 이로 인해 LG 최고참 이병규(배번 9)가 은퇴 기로에 서기도 했지만, 확실한 결과물을 가져갔다.
LG와 KIA 팬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가을야구 선물에 앞으로 수년간 팀을 이끌어갈 젊은 선수들을 얻었다. 과연 이번 가을을 경험한 선수 중 누가 ‘제2의 안치홍’이 될까.
잠실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