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김경문의 “미안해”, 김태형의 “눈물나”

입력 2016-11-0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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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김경문 감독-두산 김태형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 2016년 한국시리즈(KS)가 열린 11월의 마산은 추웠다. 순간을 놓치면 현장은 끝인데 집중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TV 카메라가 비쳐주지 않는 ‘찰나’를 자의적, 선별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KS를 통틀어 포착한 ‘찰나’는 2일 밤 KS가 4차전 만에 끝나고, 기자회견장에서였다. 별 뜻 없이 왼쪽 맨 뒷좌석에 앉았는데 마침 NC 김경문 감독, 두산 김태형 감독이 인터뷰를 마치고 퇴장하는 딱 그 동선이었다. 나가는 과정에서 두 감독은 평소 안면이 있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반말로 짧게 말했는데 그 속에는 ‘울림’이 있었다. 또 KS에서 좌절한 패장 NC 김 감독은 “미안해. 더 오래 경기 못 보여줘서”라고 말했다. 2년 연속 KS 우승을 해낸 두산 김 감독은 “왜 이렇게 김경문 감독님 생각이 나냐? 눈물이 나냐?”라고 말했다. 두 감독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짧은 문장만으로도 KS라는 격전을 치른 두 남자의 정서를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2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에서 두산이 NC를 꺾고 한국시리즈 4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NC 김경문 감독이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마산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싱거운 KS라고 혹평할 여지도 있겠지만 2016년 가을의 전설은 깨끗했다. 그 어떤 권모술수도, 기만도, 신경전도 없었다. 두 감독은 신사의 미덕을 지켰다. 두산 김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이 NC를 몰았다. 두산이 쓴 투수는 4경기에서 6명에 불과했다. KS를 결정짓는 4차전에선 다음날 선발로 내정된 니퍼트까지 불펜에서 잠깐 몸을 풀게 했다. 그렇게 후배는 선배를 뛰어넘었다. 2015년 가을에 이어 또 한번 좋아하는 형님의 숙원을 막았다. 두산 김 감독은 우승 직후 “기쁜데,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라는 예상 밖 소감을 꺼냈다. 이겨야 살아남는 승부 세계의 정상을 정복한 순간, 허무함이 밀려온 듯했다. 승리지상주의자 김태형도 어쩌면 언젠가 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 같은 것을 정점에서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김 감독의 이례적인 우승 소감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 NC 김경문 감독은 졌지만 끝까지 고결했다. KS 4차전 패배로 NC와의 계약이 사실상 끝났지만 향후 거취에 대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NC에 대한 예의가 아닌 자리, 자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는 안 되는 자리임을 김 감독은 분별했다. 퇴장의 미학을 김 감독은 알았다. 얼마 전,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직후, 소속팀에 언질도 주지 않고 휴대폰으로 급조한 자진사퇴문을 회견장에서 읽었던 어느 감독과 비교된다. 그 감독은 자신에게 감독 기회를 준 그 구단 프런트에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정말 그토록 고마웠다면 저럴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 계산된 행위로 그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의 관심을 승자 LG에서 자기에게로 훔쳐왔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되는 자리라는 겸허함도, 오랜 시간 같은 목표를 공유한 소속팀 구성원에 대한 진정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람의 그릇은 퇴장할 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경험으로 깨닫는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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