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7) NC 최기문 코치 “故임수혁, 강민호, 그리고 NC”

입력 2016-12-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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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최기문 배터리코치는 화려한 선수생활을 하진 않았다. 부상으로 인해 주전포수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토대로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 전수가 아니라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코치가 되는 게 목표다. 스포츠동아DB

NC 최기문(43) 배터리코치의 야구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故 임수혁, 강민호, 그리고 현재 NC 포수들이다. 그는 아마추어 때까지 엘리트였다. 원광대학교 시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내내 국가대표로 뛸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그러나 프로구단에 입단하면서 야구의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 그때 그를 이끌어준 이가 故 임수혁 선배였다. 이후 강민호를 만나 선배로서의 역할을 배웠고, 지금은 지도자로서 NC 포수들을 현명하게 이끄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


● 야구붐 시대…포수에 푹 빠지다

최 코치는 1973년생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그는 초등학생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축구 붐이 일어났듯이 당시에는 야구가 붐이었다. 동네에서는 무조건 야구를 하는 분위기였다. 친구들과 함께 바깥에서 뛰어노는 게 유일한 놀이였던 최 코치도 자연스럽게 야구에 입문했다.

최 코치가 좋아했던 포지션은 투수였다.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을 때도 투수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통통했던 몸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야구부 코치가 그에게 체격조건 하나만 보고 포수 마스크를 준 것이다. 테스트 차원에서 홈플레이트에서 마운드 쪽으로 공을 던져보라고 했을 때 포수가 하기 싫어 중견수 쪽으로 공을 멀리 던져버렸는데 돌아오는 평가가 “어깨 좋다. 포수해라”였다. 그렇게 최 코치는 ‘포수’와 인연을 맺었다.

유쾌한 출발은 아니었지만 최 코치는 포수를 하면서 점점 매력에 빠져 들었다. 상대팀과의 수싸움도 즐거웠고, 감독의 지휘 아래 경기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투수들이 돋보이게끔 도움을 주는 역할도 보람찼다. 실력도 빼어났다. 대학 시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국가대표로 뛰었다. 1996년에는 두산 전신인 OB에 1차 지명될 정도로 전도유망했다. 처음 구단에 입단했을 때 자신감도 넘쳤다. 그런데 프로무대는 아마추어와 또 달랐다. 준비 없이 충분하다고 생각만 했던 야구실력은 프로무대에서 통하지 않았다.

현역시절 故 임수혁-강민호(오른쪽). 스포츠동아DB



● 날 있게 한 임수혁 선배…날 코치로 만든 강민호

OB에서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최 코치는 1999년 롯데 차명주와 1대1 트레이드됐다. 사실 이적한 뒤에도 그의 자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1군에 故 임수혁과 강성우 현 kt 배터리코치가 있었다. 당시 임수혁은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최 코치가 확실한 주전포수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 LG전에서 불의의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임수혁이 2회 2사 2루서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응급처치가 늦어지면서 상태가 악화됐다. 의식을 찾지 못한 그는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임수혁이 비운 주전포수 자리는 최 코치가 메우게 됐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세대교체였다. 큰 보직을 맡은 최 코치의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교 국가대표 때부터 롯데까지 룸메이트를 하면서 항상 좋은 얘기를 해주던 임수혁 선배를 위해 더 이를 악물고 야구에 매달렸다.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 롯데의 주전포수로 승승장구했다. 2001년에는 스위치히터로 변신해 프로 데뷔 첫 타율 3할을 기록하기도 했다.

6년간 거칠 것 없이 달려온 최 코치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고, 포수에겐 치명적인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그가 재활하는 동안 강민호(31)라는 젊은 포수가 그의 자리를 꿰찼다. 사실 처음에는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한다는 사실이 힘겹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선배로서 후배에게 조력자 역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게 훗날 최 코치가 선수에서 지도자로 가는 첫 발이었다.

NC 최기문 배터리코치. 스포츠동아DB



● NC 출신 토종포수 에이스 만들겠다

최 코치는 선수생활을 되돌아보면 부상이 가장 뼈아팠다고 했다. 그런데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그 아픔이 선수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코치를 하면서 선수들을 나처럼은 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운동장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운동하고 싶어도 몸이 안 좋으면 야구를 할 수 없다고, 나처럼 후회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준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최 코치는 “솔직히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건 어느 정도 방법이 나와 있다. 앞으로 코치들은 선수들의 멘탈코치가 돼줘야 하지 않나 싶다”며 “세대가 바뀌면서 주입식 교육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실력은 빼어난데 성격 때문에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먼저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C에서 과제도 있다. 주전포수 김태군(27)의 뒤를 받쳐줄 새로운 포수를 만드는 일이다. 후보로는 강진성 신진호 김태우 박광렬 박세웅 등이 있다. 최 코치는 “좋은 포수가 되려면 지기 싫어해야 한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게을러서도 안 된다. 성격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타고난 자질도 중요하다”며 “개인적으로 NC로 입단해 성장한 프랜차이즈 주전포수를 만들고 싶다. 내년 시즌은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이니 이를 악물고 준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코치는 이는 비단 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난 아직 좋은 코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겸손하게 말하고는 “다만 난 선수로서 특별나게 잘 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선수들이 자신만의 빛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한 지금이 나에게도 기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좋은 포수를 발굴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최기문 배터리코치


▲생년월일=1973년 6월 10일

▲출신교=화곡초∼충암중∼충암고∼원광대

▲프로 경력=OB(1996∼1998년)∼롯데(1999∼2009년)

▲통산 성적=1075경기 타율 0.262(2595타수 681안타), 35홈런, 270타점, 307득점

▲지도자 경력=롯데 코치(2010∼2013)∼NC 코치(2013∼현재)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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