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볼 피플] “매 경기가 마지막 경기” 이승현의 사부곡

입력 2016-12-2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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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이승현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매 경기 이를 악물고 뛴다. 그는 “아버지가 경기장에 나오실 수 있는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아버지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포츠동아DB

폐암 말기 부친, 경기장 찾아 아들 응원
언제가 마지막 될지 몰라 늘 최선 다해


“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2015∼2016시즌 남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우승 이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가를 보내던 지난 봄. 오리온의 간판 포워드 이승현(24)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부친(이용길 씨)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가족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투철한 프로의식과 성실함으로는 늘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승현이지만,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의 건강악화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승현은 “아버지의 건강이 좀 안 좋아지셨다고 생각했는데,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보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어떻게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운동을 시작할 시기가 됐는데,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국가대표팀 합숙훈련을 마치고 2016∼2017시즌 개막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난 그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다. 외박 때도 가급적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집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부친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아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다.

이승현은 “아버지가 경기장에 찾아오시고는 한다. 집에서 편히 중계로 보셔도 되는데, 직접 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내가 뛰는 경기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은 경기장에 나오실 수 있지만, 워낙 좋지 않은 병이기 때문에 건강이 갑자기 악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경기장에 나오실 수 있는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 경기 아버지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리온 이승현. 스포츠동아DB


오리온은 2016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고양체육관에서 SK와 홈경기를 치른다. 이날 경기는 당초 오후 4시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2017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오후 10시로 변경됐다. 이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획기적 시도’라는 호평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승현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12월 31일은 부친의 생일이다. 이승현은 “아버지 생신이 31일이어서 원래는 가족끼리 저녁식사 예약을 잡아놓았다. 그런데 경기시간 변경으로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시간 변경이 새로운 시도이고, 팬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고 하니 선수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아버지의 생신에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여드린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 경기가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매 경기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2014년 말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라는 명대사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이승현에게도 꼭 어울리는 말이다. 그는 투병 중인 아버지의 자부심이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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