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이 만난 사람] 박미희 감독 “여성감독 꿈꾸는 후배들 위해 내가 디딤돌 놔야죠”

입력 2017-01-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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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4대 프로스포츠는 하나같이 남성감독들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예외는 단 하나. 바로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다. 박 감독은 주위의 편견을 깨고, 여성 사령탑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국내스포츠에 굵직한 이정표를 새겨 나가고 있다. 손가락 4개를 편 이유는 흥국생명의 4번째 우승을 의미한다. 용인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

편견 없애고 새로운 길 트는게 내가 할일
능력이 된다면 누구에게든 기회가 와요

여자감독이라 선수와 더 많은 교감 장점
훈련 때 공을 세게 때리기 힘든건 아쉽죠

난 딱 필요할 때만 나서는 소방수 스타일
목표의식 사라진 선수 보면 가장 화나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 ‘유리천장’이다. 딸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용어다. 또래 남성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도 뿌리 깊은 관행 때문에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면 어찌 평등 사회라 할 수 있겠나? 그런데 불행히도 불평등의 그림자는 엄연히 존재한다. 성(性)의 장벽이 많이 무너지긴 했지만 스포츠계의 유리천장도 여전하다. 프로 종목의 감독을 보면 쉽게 와 닿는다. 여성이 지휘봉을 잡고 팀을 쥐락펴락하는 곳은 드물다. 현재 국내 프로구단 중 유일한 곳은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의 박미희(54) 감독뿐이다. 2010년 조혜정 감독이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의 사령탑을 맡아 국내 4대 프로종목(야구 축구 배구 농구) 통틀어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주목 받았지만 이렇다할 색깔을 보여주진 못했다. 계약기간 3년 중 1년을 못 버티고 물러났다. 사임 이후 병원 신세를 져야할 정도로 ‘최초’라는 타이틀은 큰 부담이었다. “나는 남자 감독들에게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이었다. 여자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우리가 다른 모든 팀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걸 재임 내내 느꼈다”는 게 조 감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남자 감독 입장에서는 최소한 여자 감독에게만은 지면 안 된다는 자존심, 그런 게 존재하는 게 바로 이 바닥이다.이젠 박미희 감독이 시험대에 올랐다. 1980년대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박 감독의 포지션은 센터였다. 센터인데도 토스가 좋아 세터 역할도 했다. 센터이면서 서브리시브도 좋았다. 한마디로 머리 좋고 다재다능한 ‘코트의 여우’였다. 1984년 LA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뒤에 은퇴했다. 방송해설위원으로 활동한 박 감독은 2014∼2015시즌부터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았고, 첫해는 6개 팀 중 4위, 지난해 3위를 기록하더니 올 시즌엔 12승4패(5일 현재)로 1위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용인|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선수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

-올 시즌 목표가 우승이라고 했는데,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지난 시즌에 천신만고 끝에 플레이오프전에 갔는데, 2경기 만에 끝나니까 허탈하더라. 그런 아쉬움이 없도록, 더 높이 날자는 의미로 우승을 목표로 내건 것이다. 물론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라운드는 끝나야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이다. 다른 팀들도 2∼3경기 차이로 가고 있다. 여자배구 특성상 변수가 워낙 많고, 전력도 평준화됐다. 리그 일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다. 외국인선수 문제, 그리고 큰 부상 없이 얼마나 길게 가느냐도 중요하다.”


-경기 때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주문하는 것은.

“개인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왜 배구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수비를 100개 하라 등의 지시는 당연한 베이스다. 무엇보다 본인이 즐거워야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왜 배구를 하는지, 왜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또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자주 얘기하라고 한다. 생각을 바꿔주는 작업인데, 환경이나 개인차가 있긴 있다. 포지션별 차이도 존재한다. 어렸을 때부터 각자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배구를 배워왔는지, 어떤 선수는 무엇에 민감한지 등에 대한 것이다. ‘똑같이 하면 따라올 것이다’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선수를 보면서 오늘 기분이 어떨지,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는지, 기존 남자친구와 헤어졌는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등 생각할 것이 정말 많다.”


-그라운드에서 제스처가 화려하다. 의도적으로 큰 동작을 하나.

“하다 보니 그렇다. 가수 윤시내 씨가 대기실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무대에 올라가면 달라진다고 하더라. 선수시절에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경기를 하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 지금 작전타임 때도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리듬과 분위기를 생각한다. 기술은 베이스로 깔고 가야 하는 것이고, 각자 역할은 당연히 해야 하는 부분이다. 선수들의 기복을 줄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점프 60cm 뛰던 선수가 갑자기 80cm 뛸 수는 없다. 특히 디그(상대팀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리시브)는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본적인 점프력 등 테크닉은 개인적인 부분이고, 디그를 하기 위해선 정신력, 집중력이 중요하다.”


-지난 시즌과 확연히 달라진 점은.

“팀에 뒷심이 생겼다. 비 시즌 때 체력보강을 위한 운동을 많이 한 덕분이다. 처음에 김수지를 영입했고, 이재영이 입단했다. 그렇게 전력을 꾸린지 3시즌째다. 서서히 호흡이 맞고 있다. 경험이 쌓이다보니 더 나아진 것 같다.”


-칭찬과 질책, 어떤 것을 더 많이 하나.

“나는 강압적으로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필요할 때는 혼을 내기도 한다. 물론 칭찬도 많이 한다. 선수들에게 안 무섭냐고 물어보면 무섭다고 한다.(웃음) 꼭 소리를 지르고 압박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무섭다’는 것이다. 칭찬은 선수 본인이 열심히 하고 눈빛이 달라질 때 많이 해준다. 밖에선 경기 관련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필요할 때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하는 정도다.”


-요즘 흥국생명의 팀 분위기를 한 마디로 한다면.

“내가 처음 왔을 때는 밥 먹을 때도 서로 말이 없었다고 하더라. 지금은 대화도 많이 하고, 많이 밝아졌다. 선수들 팬이 굉장히 많다. 선물도 많이 받는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용인|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여성 감독 부담됐지만,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국내 프로스포츠 현역 감독 중 유일한 여성이다. 사명감 같은 게 있나.


“처음에는 여자부 경기는 여성해설자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여자경기를 중계할 때 이숙자(KBSN 해설위원), 이도희(SBS스포츠 해설위원) 해설위원이 아닌 남자가 중계하면 ‘두 분이 어디 아프신가’ 생각했다. 나도 해설위원을 했지만, 감독과는 차원이 다르다. 감독이 됐을 때 ‘과연 저 판에서 힘든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여자감독에게 기회가 왔는데 잘 해내지 못하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담이 됐지만, 오히려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사실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다. 내가 지도자로서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현장에서 계속 지켜봤으니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고 봤다.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순해 보여도 하나에 집중하면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성격이다.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내 능력 이상으로 가면 탈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조금 나아지더라.”


-선배인 조혜정 전 감독에게 전해들은 조언이 있다면.

“조혜정 감독님은 선배로서 굉장히 존경하는 분이다. 그 분의 리더십도 부러워했다. 뵐 때마다 배울 점도 많다. 항상 잘하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용기를 많이 주셨는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 하나를 갖고 감독을 하라고 하셨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운동도 하지만, 신앙생활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얘기도 자주 나눈다. 가까운 친구들이 좋다. 우리 외국인선수(타비 러브)에게도 쉴 때는 배구 생각 말고, 남편과 함께 푹 쉬라고 한다.”

전 GS칼텍스 조혜정 감독. 스포츠동아DB



-여성 감독으로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훈련할 때 가벼운 것은 할 수 있지만, 남자 지도자들처럼 힘을 실어서 공을 때리지 못하는 것은 있다. 여성이 배구 지도자를 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공을 때리는 부분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키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시킬 것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흥국생명에 지면 여자감독에게 졌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감독과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러한 편견을 깨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은 여성감독이 무엇이 다르냐를 묻겠지만, 코트에서는 똑같은 운동인데, 코트에서 왜 차별해야 하나. 일본여자배구대표팀의 나카타 감독, 중국대표팀의 랑핑 감독도 여성감독인데, 2020도쿄올림픽에서도 지휘봉을 잡는다. 모두에게는 꿈이 있다. 때가 되고, 자기 능력이 어느 정도 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 처음에는 맨 바닥에 헤딩하는 수준이었지만,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배웠다. 매일 공부도 한다. 노하우도 공부를 통해 되는 것이 있고,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남자감독과 달리 장점도 많을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이 생각하기에 남자감독이면 모를 텐데 여자감독이라서 아는 것들이 있다. 내 입장에선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선수들이 몰랐으면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스킨십도 자유롭다. 선수들에게는 코트에서 경기력 좋은 것이 가장 예쁜 건데, 외모도 가꾸라고 한다. 다른 팀에서 물어보면 ‘우리는 감독님이 예쁘게 하라고 하셨다’고 전하라고 했다. 물론 나와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하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어떤 선수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도 하더라.”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용인|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후배들 새로운 꿈 꾸게 해주는 게 내가 할 일”

-외국인 선수 관리는 어떻게 하나.


“모든 감독들이 외국인 선수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전력이다. 외국인 선수 스스로 여기가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길 바라진 않는다. 대신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훈련 똑같이 시키고, 배려할 때 배려한다. 많이 뛰니 부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선수들의 선배고,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잘하는 일이고, 좋으니까 하는 일이다. 계속 배구선수는 나올 것이고, 새로운 길을 가는 데 있어 좀더 편안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내가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왕 시작했으니 성공한 감독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우승도 한 번은 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성감독으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됐으면 좋겠다. 내가 지도자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 기간에는 내가 가능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설할 때는 정답만 얘기하는데, 코트에선 다른가.

“그건 차이가 많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부분이다. 해설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청자들에게 배구를 안내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해설할 때도 처음엔 힘들었다. 감독 부임한 이후에도 많이 울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얘기한 것을 선수들이 못 알아들을 때다. 목표의식이 사라지는 선수들을 보면 가장 화가 난다. 또 선수가 알아서 해야지 내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싫다. 내가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안 됐을 때, 왜 안됐는지에 대해 얘기해주는 정도다. 또 필요할 때 나서서 해주는 것이다. 이른바 소방수 리더십이다. 딱 필요할 때만 나선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용인|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박미희 감독


▲생년월일=1963년 12월 10일

▲출신교=화산초∼동성여중∼광주여상∼한양대

▲선수 경력=미도파(1983∼1990년)

▲대표팀 경력=1984LA올림픽, 1986서울아시안게임, 1988서울올림픽, 1990베이징아시안게임
▲지도자 경력=
흥국생명 감독(2014∼현재)

최현길 스포츠 2부 부장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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