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야구도 가업이다…야구계의 ‘다이아몬드 패밀리’

입력 2017-01-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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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2세 야구인’들은 숙명처럼 아버지와의 비교를 받게 된다. 나란히 1차 지명을 받은 이종범-이정후 부자, 일부러 조언을 피한 아버지와 그를 존경한 아들 이순철-이성곤 부자, ‘삼부자 야구 패밀리’ 유승안-유민상 부자(왼쪽부터). 사진제공 | 넥센 히어로즈, 스포츠동아DB

미혼이거나 아직 신혼인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아들에게는 절대 야구는 안 시킬 생각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훌륭한 유전자를 왜 살리지 않나?’라고 되물으면 “너무나 힘들게 운동해서 아이들에게 시키고 싶지 않다”거나 “물론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운동은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 고교 때 4번타자를 해도 프로에 못 가는 경우가 많다”고 답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며 부모의 뛰어난 신체적 재능을 쏙 빼닮거나 남다른 승부욕과 근성을 보이기 시작하면 절반 정도는 생각이 달라진다. 특히 프로야구 선수 아버지는 아들에겐 우상이다. 아버지가 TV에도 신문에도 나온다. 아버지의 이름만으로도 또래들 사이에서 슈퍼스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뛰는 야구경기를 매일 보며 자란다. 아버지의 친구들도 대부분 야구선수다. 아버지는 남다른 능력을 보이는 아들을 보며 슬슬 욕심이 난다. 아들도 아버지를 조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둘 아들들은 야구공과 배트를 잡는다. 이제 대를 이어 성공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NC 이호준. 스포츠동아DB



● 전교 1등 아들도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전학

NC 이호준(41)의 큰아들 이동훈(15)은 공부를 잘해서 국제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슈퍼스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야구를 시켜달라고 조르고 또 졸라 결국 중학교 1학년 때 수원북중학교로 전학했다. 이동훈은 야구부 선수지만 1학년 내내 반에서 시험성적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수재다. 이호준은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아이 엄마와 고민도 하고 의논도 많이 했다. 결론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응원하기로 했다. 야구선수는 밥 많이 먹고 일찍 자야 하는데 여전히 공부에도 흥미가 커서 늦게까지 책을 본다. ‘공부 그만하고 빨리 자야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웃었다. 이호준의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대부분 엘리트 야구선수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단체 훈련을 받는다. 출발은 늦었다. 그러나 성공보다는 과정과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한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선택한 결정이었다.

송진우-송우현-송우석(왼쪽부터).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물려받은 야구 DNA, 그러나 아버지와 비교는 숙명

송우석(24·전 한화), 송우현(21·넥센) 두 아들을 프로에 입단시킨 송진우 WBC 대표팀 투수코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야구를 했던 것 같다. 운동 좋아하고 잘 뛰고 하니 초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2세 야구인들은 건장한 체격을 자랑한다. 또한 대부분 재능도 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은 “아이가 어렸을 때 야구에 관심을 가졌는데 공 받고 던지는 모습을 보며 ‘선수로 대성하기는 힘들다’는 느낌을 받아 말렸다. 다행히 금세 흥미가 바뀌더라”고 추억했다. 아들이 골프선수인 선동열 전 KIA 감독은 야구를 시키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엄마 닮았다”는 농담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2세 야구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000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프로입단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해도 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선수인 아버지와의 비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주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2세 선수도 많지만 남다른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한 사례도 많다. 아버지의 교육방법도 큰 영향을 미친다. 넥센에 1차 지명돼 ‘부자 1차 지명’이라는 영광의 주인공이 된 이종범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 이정후(19·넥센)는 “아버지와 포지션(유격수)도 같아 어렸을 때부터 항상 비교됐다. 어디를 가나 어디서나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고교시절부터 초특급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정후는 “야구역사에 전설적인 이름을 남긴 아버지를 뛰어 넘고 싶다”는 당당한 다짐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두산 이성곤-이순철 해설위원(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성공의 비결, 야구 가르치지 않는 슈퍼스타 아빠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아들 이성곤(25·두산)에 대해 “운동을 한다면 차라리 골프를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야구에 대해 조언하고 싶어도 학교 코치와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웠다. 괜한 오해를 살까봐 아들을 가르치는 감독, 코치를 찾아가지도 않았다”고 기억했다. 이성곤은 우투좌타 외야수다. 오른손잡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TV에 거울처럼 반대로 비춰진 아버지의 타격을 따라하다가 좌타자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 아들이라는 말이 난 가장 기뻤다”는 말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보인 이성곤은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맹타(0.328·19홈런)를 휘두르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상당수 아버지들은 아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직접 가르치고 싶어도 최대한 자제하며 스스로 성장을 기다렸다. 송진우 코치도 “즐겁게 야구해라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 형 유원상(31·LG)까지 야구인 삼부자의 주인공 유민상(28·kt)은 “아버지는 밖에서는 엄한 지도자이시지만 집에서는 굉장히 따뜻하셨다. 야구도 먼저 시켜달라고 졸랐다. 명포수 출신이시지만 아들들에게 특정 포지션을 강요하시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문승훈 심판-LG 문선재(오른쪽). 스포츠동아DB



● 그라운드에 금수저는 없다

야구인 2세들은 야구선수로 성장하며 아버지의 후광의 덕을 보며 성장했다. 돈이 많이 드는 종목 특성상 경제적 풍요도 큰 도움이다. 그러나 프로세계에 ‘금수저’는 없다. 냉혹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야구인 가족들도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다. 이순철 위원은 KIA 수석코치 시절이었던 2013년, 대학생이던 이성곤에 대해 “KIA가 아들을 지명하면 난 당연히 팀을 떠난다”고 말했다.

강진성(24·NC)은 더 특별한 케이스다. 아버지는 강광회 심판위원이다. 문선재(27·LG)-문진제(26·두산) 형제는 문승훈 심판위원의 조카다. 아버지 문성록씨는 프로출신은 아니지만 야구인으로 KIA 전력분석팀에 있다. 집안 전체가 야구인이기 때문에 항상 더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베테랑 심판이자 해박한 야구지식으로 신망이 두터운 문승훈 심판위원은 “그라운드 안에서 조카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이밖에 박종훈 한화 단장과 박윤(29·넥센), 김성근 한화 감독과 김정준 한화 수비보조코치, 고인이 된 유두열 전 롯데 코치와 유재신(30·넥센)도 잘 알려진 야구인 부자다. 김진영 전 삼미 감독의 아들인 김경기 전 SK 퓨처스 감독은 인천야구를 상징하는 부자다. 특히 김경기 전 감독은 2세 야구인들 중 아버지의 명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야구를 잘 한 몇 안 되는 주인공이다.

야구인 형제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과거 구천서-구재서 쌍둥이 형제가 프로원년 OB에서 뛰었다. 양승관-양후승, 정수근-정수성, 윤형배-윤동배 등 유명한 형제들이 있었다. 박세웅(22·롯데)-박세진(20·kt)은 프로야구 역사상 첫 번째 형제 1차지명의 주인공이다. 특히 모두 kt에서 1차 지명을 받은 인연이 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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