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 남해에서 만난 김병수 서울이랜드FC 감독은 자신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빼어난 지도력으로 큰 성과를 올린 그는 프로 사령탑으로서의 도전도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감독은 정보제공자…현장 판단은 선수 몫
우승·승격? 본연의 축구 찾다보면 길 열려
“축구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고 접근하느냐가 차이를 가른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서울이랜드FC 김병수(47) 감독의 오랜 축구철학이다. 현역 인생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19세에 태극마크를 달고 각급 국가대표를 거치며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았으나, 체계적이지 못한 부상관리 시스템으로 인해 28세에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많은 축구인들은 여전히 “반세기에 한 번 나올 만한 드문 인재”라고 회상한다.
잊혀질 리 없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꾸준히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하이라이트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지휘봉을 잡은 영남대에서의 9년이었다. 대학무대를 수차례 평정했고, FA컵에서도 당당히 프로팀에 맞서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프로 벤치 입성은 다소 늦었다. 그동안 꾸준히 여러 팀의 사령탑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렸으나, 확실하게 접촉해온 곳은 서울이랜드였다. 연말연시 이런저런 사태로 뒤숭숭하던 팀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눈높이를 낮춰 선수들을 바라보는 자세, 유형별로 쪼개 강습하는 특이한 교수법,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이뤄지는 시나리오 교육 덕분에 동계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서울이랜드 선수단의 분위기는 아주 뜨겁다. 제주 서귀포에서 진행 중인 2차 훈련에 앞서 1차 훈련 캠프를 차렸던 남해에서 만난 김 감독은 “주변에선 내가 프로에서도 성공할 수 있느냐를 궁금해 한다.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그러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어느 무대에 있느냐가 아니라, 축구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언제나처럼 행복한 축구를 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 이상
-무엇이 좋은 감독을 결정하는 요소인가.
“심리적으로 선수들을 다독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할지를 깨우쳐주는 것이다. 명확하게 임무를 전달하고, 선수들이 이를 숙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축구는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다만 내 철학은 이렇다. 통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볼을 확실히 소유한 뒤 주도권을 쥐고 우리에게 불리한 변수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축구라고 본다. 적을 완벽히 통제해야 승리 확률을 높일 수 있지 않겠나.”
-김병수가 보는 가장 이상적인 선수란?
“볼을 잘 다루는 선수, 잘 잃어버리지 않는 선수를 선호한다. 그런 선수들이 많으면 방향전환이 유기적이고, 볼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팀이 된다. 또 그런 선수는 어디에나 분명히 존재한다.”
-어디에서 주로 길을 찾아가는지.
“어디에서든 항상 배우려고 한다. 축구 자체를 통해, 또 책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요즘은 소설을 많이 읽는다. 예전에는 리더십이나 자서전 등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최근에는 ‘글자전쟁’을 재미있게 봤다.”
영남대 감독 시절 김병수.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19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사제의 연을 맺은 고(故)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김병수를 향해 “한국축구의 발전속도를 확연히 앞당겨줄 천재”라고 평가했다. 그도 크라머 감독을 존경하지만, 지도자로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로는 필립 트루시에(62) 전 일본대표팀 감독을 꼽았다. 김 감독은 “질서정연한 축구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포지션 라인 형성과 과정 전개 전부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축구는 쓰리백과 스위퍼 형태가 주를 이뤘다. 일본의 포백 디펜스는 아주 신선했다.
● 도전
-프로의 길을 계획한 적은 없나.
“마음으로는 항상 생각했다. 그런데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기회가 닿으면 하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했다. 다만 억지로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자연스레 길이 열렸다. 억지로 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지도법이 독특하다.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지도하면 발전속도도 빨라진다는 것을 경험과 믿음을 통해 얻었다. 그런데 축구는 결국 선수가 한다. 감독은 정보제공자일 뿐이다. 좋은 정보를 전달할 뿐, 현장에서의 판단은 선수의 몫이다. 정답은 없다. 플레이 선택의 폭만 넓혀주려고 한다.”
-프로에서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보상은 노력만큼 따라온다. 서울이랜드의 클래식(1부리그) 승격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데 두려움은 없다. 우승과 승격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도 그 자체가 목표와 가치가 될 순 없다. 부담에서 모든 구성원이 벗어나 본연의 축구를 찾아가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나.”
김 감독은 무릎을 꿇고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춰 지시하고 대화한다. 낮은 자세의 감독을 바라보는 선수들의 집중력은 배가된다. 자존감도 높여준다. 코칭스태프의 행동 하나하나에 메시지가 담겨있다.
서울 이랜드FC 김병수 감독(왼쪽). 사진제공|서울 이랜드FC
● 행복
-충분한 행복을 찾았나.
“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주변에서) ‘비운의 천재’라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솔직히 천재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현역생활이 좀더 길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아프지는 않다.”
-선수들에게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나.
“‘축구 앞에서 겸허해지자’는 말을 한다. 그리고 ‘평범해지자’고 한다. 욕심을 버리면 팀은 평범해지지 않는다. 개인은 평범하되, 팀은 특별하게 키우고 싶다. 물론 쉽진 않다. 나 역시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니.”
-장기 레이스의 부담은 없나.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좋게 생각하면 한없이 좋다. 토너먼트는 1차전부터 결승까지 내내 집중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 반면 리그에선 경기 이후부터 다음 경기까지 몸, 마음을 추스를 여유가 있지 않나. 물론 연패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아주 힘들지는 않다.”
● 김병수 감독
▲생년월일=1970년 11월 24일
▲출신교=경신고∼고려대
▲선수 경력=코스모석유 요카이치(1993∼1996년), 오이타 트리니타(1997년·이상 일본)
▲지도자 경력=고려대 코치, 경신고 코치(이상 1998년), 포철공고 코치(1999∼2001년), 포항 스틸러스 2군 코치(2003∼2005년), 영남대 감독(2008∼2016년), 서울이랜드FC 감독(2017년 1월∼현재)
남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