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①] 안방극장은 지금 ‘타임슬립’ 시대

입력 2017-02-0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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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와 tvN ‘내일 그대와’(아래)가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오가며 이야기를 쉼 없이 풀어가고 있다. 사진제공 | SBS·tvN

대중문화계는 지금, ‘시간여행’ 중이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한 ‘타입슬립’(Time Slip) 소재가 유행하고 있고, 영화의 시곗바늘은 1980년대 등 과거로 맞춰져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판타지’로 비치지만,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 대중은 시공간을 초월해 펼쳐지는 또 다른 ‘현실’에 잠시나마 각박한 현실을 잊으려 하는 게 아닐까.


지하철로 시간여행하는 ‘내일 그대와’
일상을 판타지와 접목해 현실감 증폭
OCN ‘터널’ 시간여행 통해 사건 해결
불안한 현대인 욕구 해소가 인기 요인

‘시간여행’ 열풍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무대는 안방극장이다. 시간을 거슬러 전생을 체험하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미래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공상 만화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안방극장에 찾아와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의 ‘타임 슬립’ 소재가 또 하나의 ‘킬러 콘텐츠’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 상상력과 호기심에 기대는 극적 효과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치는 이야기가 노리는 것, 최대한의 극적인 효과다. 단순한 가상의 현재나, 사극으로 대표되는 과거사를 넘어 “현실가능성이 전혀 없는 ‘판타지’”(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를 통해 시청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려는 의도다.

이런 극적 장치는 역사적 이야기를 더욱 풍부히 꾸미는 데 적극 활용된다.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에서 이영애는 1인 2역을 맡아 조선시대와 현재를 바쁘게 오간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이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의 일기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시공간을 넘나든다. ‘사임당’이라는 시대의 거울에 갇힌 역사적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통의 사극 형식보다는, 한 시대를 살다간 여성으로서 온전한 인간의 이야기를 또 다른 현대 여성의 모습과 대비시켜 극적인 재미와 메시지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케이블채널 사상 최고 시청률(20.5%)로 종영한 tvN ‘도깨비’, 전지현과 이민호가 주연한 SBS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설화 속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판타지’의 요소를 굵은 줄기 삼았다. 이 역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을 거스르는 설정으로 더욱 극적인 효과를 얻었다.


● 현실감으로 효과는 커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현재성을 배제하고서는 공감을 얻기에 한계가 있다.

신민아와 이제훈이 주연해 3일 첫 방송하는 케이블채널 tvN ‘내일 그대와’는 아예 ‘시간여행자’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드라마는 이제훈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다 신민아를 만나면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연출자 유제원 PD는 “지하철은 일상적인 교통수단이다. 판타지를 일상에 접목시킨다면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 정전 구간을 착안해 ‘시간이동’이라는 극적 장치를 만들었다.

3월 방송하는 OCN ‘터널’은 어두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며 시간을 이동해가는 드라마다. 1980 년대 여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던 한 형사가 2016년으로 날아와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30년 전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의 두 형사가 무전기를 통해 미제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의 ‘시그널’과 비슷한 구조다. 당시 드라마는 김혜수, 조진웅 등이 펼친 뛰어난 연기 말고도 쫀쫀하게 짜놓은 치밀한 구성으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 “위로와 카타르시스”의 판타지

사실 ‘판타지’물은 엄밀한 현실의 시각으로 보자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며 이야기”로 비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떠받치는 장르의 외피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판타지를 덧붙여 극적인 힘을 더하는 로맨스(도깨비, 푸른 바다의 전설)이거나, 그 로맨스에 미스터리한 요소를 강화하는 시간이동의 재미를 활용(내일 그대와)하거나,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으로 이를 지켜보는 폭넓은 연령대 시청자의 공감대를 확보(범죄수사물) 하려는 등 장르물의 성격이 더 짙어진다.

이 같은 ‘시간여행’은 불과 1년 전 불어 닥쳤던 ‘복고 열풍’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추억 가득한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문화적 체험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아래 설문 인용)준다. 지난해 한 포털사이트가 ‘복고’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현실이 너무 힘들어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답변이 1위에 꼽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의 암울함이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복고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현실가능성이 전혀 없는 ‘판타지’도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욕망과 바람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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