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뮤지스땅스에서 열린 ‘최배호 & 에코브릿지와 함께 하는 음악감상회’에서 포토타임을 하고 있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는 그는 최근 이를 기념하는 새 앨범을 내놓았다. 11일부터는 콘서트로 팬들을 만난다. 깊이 깔리는 듯 치받쳐 올랐다 다시 잔잔히 스며드는 고유의 탁성으로 최백호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낭만에 대하여’는 45살 때 만들어 노래했다. 노랫말이 비로소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쩔까!
“늙어가는 거다. 하하하! 45살, 그 나이에 비해 내가 세상 풍파 좀 많이 겪었다.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이민도 갔고.”
-무엇이 그리 어려웠나.
“가수들은 인기가 떨어지면 바로 어려워진다. 우리 세대들은 돈을 모으지 못했다. 방송 좀 못나오면 금세 인기가 떨어진다. 그러면 업소 밤무대에서 노래하는데, 지친다. 인간적 모멸감도 느끼고. 그럼 하기 싫어진다. 1980년대는 너무 힘들었다.”
-돈을 왜 못 벌었나.
“매일 쓰고 다녔지. 술 마시고. 돈이 워낙 없다가 갑자기 생기니까. 모으질 못했다”
-최근 아침 토크프로그램에 나와 저작권료를 많이 받는다고 해 화제가 됐다.
“‘낭만에 대하여’ 덕분에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그 뒤에 할 말이 있었는데 말이 끊겼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참 많이 받는다. 노동의 대가라기보다 내가 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걸 받는 게 너무 미안하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데 미안하다. 감사한 일이다. 모든 이들에게. 정말 그렇다.”
-지금까지 만든 음악, 부른 노래, 전부 자신의 이야기인가.
“90% 이상!”
-감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따로 음악공부나 글공부를 한 건 아니다. 난 공부를 안 했다. 고등학교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음악하는 친구들 만났다.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다만 부모님의 DNA를 물려받은 것 같다. 어머님은 글을 쓰셨고, 아버지가 색소폰을 부셨다고 하더라. 중학교 때까지는 어디 가서 노래하지 않았다. 이후 기타를 배우고 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게 됐다. 그래도 잘 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럼 어떻게 무대에 섰나.
“어린 시절 친구 매형이 하는 부산 업소가 첫 무대였다. 업소 문을 열면서 가수를 구해 달라 하기에 친구와 부산시내 업소를 뒤지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 친구가 ‘네가 해도 괜찮겠다’며 권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래? 그럼 해볼까?’ 해서 시작했다. 부산시내 같은 업소에서 일했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의 하수영 선배 조언으로 상경해 윤정하라는 가수와 함께 한 앨범의 절반을 맡아 녹음했다. 무명가수가 불안하니까 그렇게들 음반을 만들었다.”
-멜로디와 노랫말은 동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비중을 더 둔다면 어느 쪽에.
“노랫말이다. 난 노랫말부터 쓴다. 주제도 뚜렷해진다. 멜로디에 노랫말을 끼워 넣으면 아름다운 단어만 연결하는 것 같아서.”
-하루에 작업은 얼마나.
“그림은 매일 그리는데 노래 작업은 일주일에 두 세 번 한다. 그래도 노래 연습은 매일 한다. 정 시간이 안 되면 차 안에서라도. 하루이틀만 안 해도 표가 난다. 매일 해야 한다.”
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