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은 왜 지상파가 힘이 약해졌다고 보세요? 전 예산을 아낀다고 공채 제도를 없앴기 때문이라고 봐요. 공채가 사라지면서 모든 힘이 기획사로 옮겨가게 된 거죠. 연합회도 우리가 어렵다는 걸 강조하기 전에 고향이나 다름없는 지상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같은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지상파는 최근 수년 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채널 등이 날이 다르게 성장 중이며 영향력 또한 이미 지상파를 넘어선지 오래다. 배우나 희극인들도 지상파 보다는 종편 및 케이블에 대한 높은 선호를 보이고 있다.
이에 지상파는 결국 고육지책으로 적자를 메우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 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등을 없애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하 드라마가 편성되지 않는 것도 결국 예산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뭘 날려서 예산을 메우더라도 대하드라마는 절대 날려선 안 되는 거 에요. 힘도 많이 들고 돈이 많은 든다고 해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버려서야 되나요.”
대하 드라마, 흔히 정통 사극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본지가 이미 오래 됐다. 어쩌면 KBS1 ‘정도전’ 이후 마치 맥이 끊긴 듯하다. 이에 지상파는 퓨전 사극, 사극 멜로 등의 편법을 쓰고 있다.
“정통사극은 연출자와 작가 모두 상당한 공부를 필요로 해요. 그래야 거기서 이야기를 발췌해서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을 보여줄 수 있죠. 이런 공부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퓨전 사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후 유동근은 해외 판매만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만드는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에게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요즘 중국이나 해외 판매를 노리고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질 낮은 드라마들이 너무 많아요. 작품의 양은 분명히 많아졌는데 질이 낮아졌어요. 우리 드라마는 해외보다 먼저 국내에서 어느 정도 점수가 나와줘야 돼요. 마치 공장에서 상품 찍어내듯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어 “해외만 생각하니 불량 외주 제작사들이 넘실대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통하는 배우에게만 고액의 출연료를 지급하다 보니 나머지 실력 있는 배우들 대신 더 단가가 낮은 배우들로 작품을 채우게 된다”면서 “이건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자들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동근은 인터뷰 내내 예산 혹은 재정으로 포장됐지만 결국 돈 때문에 공채가 사라지고 질 낮은 작품의 출연을 경계했다. 또한 성우들의 설 자리인 외화 더빙 보존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가 바라본 대로 대중 문화 예술인들이 처한 현실은 매우 엄혹하다. 그럼에도 그는 초대 이사장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방송예술인단체 연합회의 회관이라고 만들어 놔야죠. 그래야 해외 방송사에서 취재가 오더라고 좀 체면이 서지 않겠어요? 회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한국 배우 사진도 있고 성우들의 역사도 한 눈에 알 수 있게끔요. 그래야 그들도 지금의 한류가 꼭 전지현 같은 스타들이 이뤄놓은 게 아니라 뒤에서 받쳐온 이들도 함께 만들었구나 라는 걸 알지 않겠어요. 언제 만들어질지는 기약 없지만 제가 이사장 자리에 있을 때 세워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죠.”
→③편에서 계속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