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의 변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입력 2017-06-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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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사진제공|KB손해보험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 사진제공|KB손해보험

KB손해보험 권순찬 감독(42)은 22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귀국했다. 일본배구 우승팀 도레이를 견학할 목적이었다. 손정식 수석코치와 단 둘이 다녀왔다. 이 사이, 팀에는 상징적 변화가 있었다. 팀의 얼굴격인 김요한을 OK저축은행에 트레이드시킨 것이다. 이해득실을 두고 ‘말의 성찬’이 차려졌지만 정작 설계자격인 권 감독의 의중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세상은 KB손해보험의 리더십 교체 자체에만 잠깐 주목했을 뿐, 정작 ‘권순찬 컬러’가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방향성으로 KB손해보험을 이끌어가고 싶은지 듣고 싶었다. 권 감독이 적어도 ‘익숙한 방식과의 결별’은 작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김요한 트레이드의 ‘필연성’

권 감독의 얼굴은 ‘호랑이 상’이다. 엄격할 것이라는 인상과 달리 이야기를 나눠보면 권 감독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임을 체감할 수 있다. 도레이를 보러간 것도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감독, 코치의 지시를 납득할 수 있을지에 관한 구체적 프로세스를 확인하러 간 목적이 컸다.

권 감독 체제에서 KB손해보험 배구의 분석파트 강화는 큰 흐름이 될 터다. 권 감독은 김요한, 세터 이효동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을 감수하고 트레이드를 결행했다.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에게 따로 “두 선수를 잘 챙겨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럼에도 모진 결단을 내린 것은 팀 KB손해보험의 체질 개혁을 위한 두 가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 ‘몰빵배구’와의 결별이다. 권 감독은 팀 공격의 밸런스를 강조했다. 즉 코트에서 뛰고 있는 플레이어 전원이 공격, 수비, 토스에 가담할 수 있는 팀을 원한다. 외국인선수로 리시브를 받는 레프트 페레이라를 선택한 것도 그런 포석이 작용했다. 라이트 이강원을 비롯해 트레이드 영입한 강영준, 기존의 손현종과 황두연, 센터 이선규 등에 걸쳐 세터 황택의가 플레이어 전원을 조합해서 득점루트를 다양화하는 배구를 해야 활로가 열리는 구성이다. 김요한 트레이드를 통해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의도된 두 번째 효과다.

전 KB손해보험 김요한. 스포츠동아DB

전 KB손해보험 김요한. 스포츠동아DB



● 비운의 선수가 ‘정상’에서 느낀 것

배구인들 사이에서 현역시절 권 감독은 ‘배구도사’로 통했다. 거의 모든 포지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선수 권순찬의 재능을 탐냈을 뿐, 관리의 개념까진 이르지 못한 때였다. 아마에서 인대가 거의 끊어진 상태로 경기에 뛴 적도 있었다. ‘아파서 못 한다’는 말은 ‘근성이 없다’와 같은 말로 취급되는 시대였다. 부상의 덫은 재능을 갉아먹었고, 삼성화재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채 은퇴했다. 그 아픔을 권 감독은 배구인생에 걸쳐 잊지 않고 있었다. 권 감독의 지도자 포부는 뜻밖에도 “선수들이 오래 배구하는 팀”이다.

권 감독이 KB손해보험을 맡은 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브라질 출신 피지컬 코치 파스쿠 영입이다. 산(山)을 달리는 전통적 훈련도 폐지했다. 양적 훈련을 줄이는 대신, 밀도를 높이는 스타일이다. 관리의 토대 위해 체력과 집중력을 쌓는 방식이다. KB손해보험 이영수 사무국장은 “감독님이 고등학교부터 여러 프로팀(우리카드, 대한항공, KB손해보험) 코치를 경험하며 ‘만약 감독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를 준비한 것 같다”고 들려줬다.

현재 삼성화재 출신 감독은 남자 7팀 중 5팀에 달한다. 그러나 나머지 4명(현대캐피탈 최태웅, 삼성화재 신진식, 우리카드 김상우, OK저축은행 김세진)에 비해 권 감독은 무명에 가깝다. 화려함은 없어도 권 감독은 어쩌면 이들 중 가장 케이스 스터디가 풍부한 리더일 수 있다.


● 변화는 시작됐다

수원 KB손해보험 연수원 지하 3층에 훈련장이 있다. 황택의 이강원 이선규 등 국가대표들이 빠진 상황에서 진행된 훈련이지만 어쩌면 권 감독의 지향성이 가장 순수하게 묻어날 타이밍이 지금이다. 기자의 눈에 가장 독특하게 들어온 지점은 훈련의 초점이 피지컬과 연결훈련에 집중된 데 있었다. 선수들은 온갖 상황을 가정해 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이빙을 반복했다. ‘배구는 공이 코트에 떨어지지 않는 한, 끝이 아니다’는 배구만화 ‘하이큐’의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권 감독이 쉬라고 했음에도 오전에 체력훈련을 하고 갔다. 역시 휴가를 준 강영준도 오후에 인사를 하러 찾아왔다. 권 감독은 “(이적 충격에도 바로 마음을 다잡은) 강영준의 멘탈이 참 마음에 든다”고 웃었다. 신혼여행 중 트레이드를 접한 센터 김홍정도 합류할 예정이다.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전신 금성배구단부터 이 팀의 역사를 담은 궤적을 볼 수 있었다. 이 국장은 “역사는 오래됐는데 트로피가 많지 않습니다”라고 멋쩍게 말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선언한 지점에서 KB손해보험의 개혁은 절박한 현실이다. 밖에 나와 보니 KB손해보험이 새로 들인 구단버스가 있었다. 구단 지시로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꾸민 버스다. ‘할 수 있는 한, 현장을 돕겠다’는 구단의 의지가 서린 상징물 같았다. ‘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마라.’ 괴테의 말이다. 지금 KB손해보험이 그렇게 변화로 향하고 있다.

수원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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