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옥자’는 사랑”…정재일이 마케도니아로 날아간 까닭

입력 2017-07-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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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 꼭 머릿속에 각인되는 장면이 있다. 자장면을 먹으며 ‘수사반장’이 시작되는 음악을 듣곤 “이건 노래가 좋아, 노래가”라며 감탄을 하던 송강호, 괴물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러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모습 등 수 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장면들 속에는 꼭 음악이 있다.

봉준호 감독 작품에서 음악은 놀라운 효과를 일으킨다. ‘살인의 추억’의 피아노 연주는 극을 더 스산하게 만들었고 ‘괴물’의 ‘한강 찬가’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음악이 됐다. 이는 화면 속에 보이는 장면만큼 듣는 음악의 중요성을 아는 봉준호 감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옥자’에서 봉준호 감독은 정재일 음악 감독과 함께 했다. ‘해무’로 제작자와 음악 감독으로 만난 이후 3년 만에 연출가와 음악 감독으로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평소 정재일 음악의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옥자’의 국내 촬영을 마치고 정재일을 만나 음악 감독으로 함께 해줄 것을 제안했다.

“저도 봉준호 감독님 팬이에요. 차기작을 늘 기다려왔고요. 하지만 음악으로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옥자’로 제안을 받은 건 국내 촬영 후 뉴욕 촬영이 있기 거의 직전이었어요. 감독님도 ‘이렇게 급하게 음악을 부탁한 것은 처음’이시라며 제안을 하셨죠. 별 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냥 같이 열심히 하자고.(웃음) 잘 해보자고 하셨죠.”

정재일 음악 감독이 ‘옥자’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든 생각은 한 편의 ‘로드 무비’였다. 그는 “‘동물’이야기에 우선 끌렸고 전체적으로 다이내믹한 로드 무비여서 좋았다. 강원도, 서울 미국 뉴욕까지 배경이 다 달랐기 때문에 음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해 보였다”라며 “게다가 봉준호 감독은 영화 음악에 대한 비전이 명확했다”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님을 보면 약간 타란티노 감독 같아요. 타란티노 감독도 자신이 선곡한 곡을 음악으로 넣는 경우가 많죠. ‘옥자’에 나오는 존 덴버의 ‘애니송’ 같은 경우는 이미 선곡해두신 곡이었어요. 곡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봉 감독님은 음악을 많이 알고 계신 분이라는 게 느껴져요. ‘옥자’ 때는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작품과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옥자’ 작업 중인 정재일 감독의 모습. 


정재일 음악 감독은 ‘옥자’의 의 모든 수록 곡의 작·편곡은 물론 피아노, 기타, 드럼 등 악기 연주까지 직접 했다. 또한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마케도니아를 직접 방문,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유명 브라스 밴드 잠보 아구세비 오케스트라(Dzambo Agusevi Orchestra)와 협업해 집시 선율이 담긴 브라스 음악을 담아냈다. 또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60인조 오케스트라, 15인조 빅밴드, 소년소녀 합창단 및 여성 합창단을 지휘하며 열흘 넘게 녹음에 공을 들이는 등 웅장하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탄생시켰다.

“자꾸 에밀 쿠스트리차를 이야기 하게 되는데, 그 분이 세르비아 출신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음악이 참 많아요. 그래서 그 나라를 중심으로 음악가를 찾다가 우연히 터키 출신의 마케도니아 분을 알게 됐어요. 마침 스케줄도 맞았고 함께 음악을 할 열의도 보여서 함께 하게 됐어요. 전통음악을 하는 젊은이라 좋았어요. 너무 전통적이지도 않고 너무 현대적이지도 않아서요. 그들과 함께 하려고 스코페(마케도니아 수도)로 떠났죠.”

정재일 음악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케스트라와의 작업을 마친 뒤 자동차를 빌려 스코페로 향했다. 무려 15시간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도중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비행기로 스코페에 도착한 다소 험난한 여정을 보냈다.

“‘옥자’가 로드 무비니까 우리도 차로 한 번 가보자는 마음에 떠났는데.(웃음) 그런데 막상 스코페에 도착하니 좀 무서웠어요. 생각보다 낙후된 도시라 ‘여기에 녹음실이 있단 말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함께 음악 할 분이 저희를 찾으시곤 어떤 지하상가로 데려가는 거예요. 정말 캄캄해서 공포에 떨었어요. 스튜디오로 들어갔는데 검은색 계란 판이 방음장치로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여기서 녹음을 하는 거야?’라고 물으니 ‘노 프로블럼(No Problem)’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걱정이 됐는데 그들이 연주를 하는 순간 모든 근심이 사라졌어요. 정말 ‘어메이징’ 했어요. 최악의 공간에서 최고의 연주가 나왔어요.”

이 외에도 ‘옥자’와 ‘미자’(안서현)함께 할 때는 어쿠스틱 기타로 단순한 선율을 만들어냈고 비밀 동물 보호 단체(ALF)가 등장할 때는 트럼펫과 색소폰을 사용했다. 또한 비육장에서 아기돼지를 구할 때는 소녀들의 아카펠라를 넣어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옥자와 미자의 우정 또는 평화로운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한 악기로만 간헐적인 선율의 표현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와 기타 중 고민했지만 최종적으로 기타의 투박하고 단순한 선율이 더욱 잘 맞는다고 생각했죠. 또 ‘ALF’ 같은 경우는 2인자 ‘케이’(스티븐 연)이 통역을 잘못해서 옥자가 뉴욕으로 가게 되잖아요. 거기서 뭔가 허술한 비장함을 표현하기 위해 트럼펫과 색소폰을 사용해 마카로니 웨스턴 같은 선율을 연주했어요. 또 마지막 아기 돼지를 구출하는 장면에서는 청아하게 비브라토 없는 소녀들의 간헐적인 아카펠라 선율 사이로 돼지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새어나올 수 있도록 했어요.”


‘옥자’ 작업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시작 음악과 끝 음악이다. 이유는 각각 다르다. 그는 “일단 시작 음악이 나와야 실타리가 풀린다. 음악의 결을 결정짓는 부분이기도 해서 가장 오래 걸리는 음악이다”라며 “‘옥자’를 보며 엔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밝지만 않은 해피 엔딩이라. 험한 시간을 거쳐 다시 찾은 평화지만 옥자와 미자의 세상은 달라졌을 것 같았다. 이들의 감정이 내게 많은 영감을 줬다. 그러기에 마지막 곡은 가장 ‘정재일’스러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음악 감독으로서, 연출가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곳은 저만의 예술세계가 아닌 협업공간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위해 음악을 만들려고 애쓰죠. ‘옥자’를 작업할 때는 평소 듣던 음악을 다 바꾸고 약간 더 밝은 곡 위주로 들었어요. 봉 감독님 작품을 보면 참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어요.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두움 등이 함께 있어요. 그게 감독님의 강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도 감정이 겹겹이 쌓여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발칸반도의 집시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처음엔 흥겹다가도 계속 들으면 무섭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정재일 음악 감독은 VIP 시사회를 통해 ‘옥자’의 최종 편집본을 봤다. 그는 “‘믹싱’때와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라며 “영화를 보니 ‘옥자’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미자가 옥자를 찾기 위해 떠난 여정도 좋았고 밝지 않은 해피 엔딩도 좋았다. 특히 회현 지하상가에서 ‘옥자’가 도망치는 장면에서 나오는 존 덴버의 ‘애니송’은 영화사에 남지 않을까”라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옥자’의 음악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들렸으면 할까. 사실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이거나 영화 마니아가 아닌 이상 대부분 한 번의 관람으로 끝이 나기에 때문에 영화 속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도 어려운 일. 이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지 묻자 그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 음악은 나를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시작을 영화를 위해서, ‘옥자’를 위해서 한 거니까요. 제 욕심을 넣으면 안 좋은 영화 음악이 될 거예요. 좋은 영화음악이 좋은 음악은 아니고, 좋은 음악이 좋은 영화 음악은 아니에요. 좋은 영화 음악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선율로 극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장면을 각인시키게 했다면 된 거예요. 음악이 제대로 한 몫을 한 거죠. 비록 멜로디는 기억이 남지 않아도요. 전 그거면, 만족합니다.(웃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글러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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