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 토크①에서 이어집니다.

“이거 궁금하지 않으세요?”

김문정 음악 감독이 인터뷰를 마칠 때쯤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야기.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연 중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용변이 급해 벌어지는 해프닝 등이다. 어찌 보면 말하기 민망할 법한 이야기인데 주저함 없이 말했다. 이날 마침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에 김문정 음악감독은 “오늘이 리허설이라 탄수화물을 먹는 거다. 원래 공연 시작 두 시간 전부터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공연 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 가장 무서워요. 그 중에 한 번이 김준수와 했던 ‘엘리자벳’이었어요. 지휘를 하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픈 거예요. 온 몸에 식은땀이 막 나는데 공연이 40분이나 남아있었어요. 그 때는 진짜 ‘혀를 깨물까’, ‘기절을 할까’ 등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회개기도가 절로 나와요.(웃음) 그 이후로는 공연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지 늘 생각을 하고 ‘오케피’(‘오케스트라 피트’ 줄임말)로 들어가요.”

김문정 음악감독은 배우 윤소호와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레미제라블’을 할 때였다. 워낙 공연 시간이 긴 작품이었는데 그 때 윤소호가 ‘귀신을 봤다’고 착각할 정도로 번개 같은 속도로 화장실을 다녀온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지휘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자베르만 죽이고 (화장실을)가자’라고 마음먹고 건반을 치고 있는 부지휘자에게 지휘를 맡겼어요. 자베르 자살 장면이 ‘큐’가 어렵거든요. 그렇게 저는 화장실을 갔는데 마침 무대로 나온 윤소호가 오케피 안에 있는 지휘자가 제가 아니라 긴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깜짝 놀란 거예요. 그런데 순식간에 화장실을 다녀와 짧은 머리를 한 제가 다시 지휘를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진짜 귀신을 본 줄 안 거죠.(웃음) 나중에 윤소호가 ‘감독님, 저 오케피서 귀신 봤어요’라고 하기에 제가 ‘인마, 나 화장실 다녀온 거야’라고 했어요.”


벌써 음악 감독을 한 지는 16년이 됐고 뮤지컬이라는 업계로 들어온 지는 20년이 됐다. 실용음악을 전공한 그는 7년 정도 건반 연주자로 활동을 했다. 그러다 2001년 ‘둘리’로 음악 감독에 데뷔를 했다. 뮤지컬 세계로 들어온 것은 아르바이트로 잠시 뮤지컬 ‘코러스 라인’에 건반 연주자에 합류했었다. 라이선스 작품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경험이라 기회가 온다면 또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기억이 점점 잊혀지고 있었는데 ‘명성황후’에 마침 빈 자리가 있었다. 그래서 예전 기억이 다시 떠오르더라. 그래서 남편과 친정어머니와 논의를 하고 참여를 했죠. 이후부터 국악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지휘법도 배우면서 이 길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01년에 ‘둘리’ 음악 감독님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시게 되시면서 3주 개막을 앞둔 채 급박하게 제가 지휘봉을 잡게 됐죠. 그렇게 데뷔를 했어요.(웃음)”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천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그는 “공연 준비할 때는 정말 힘든데 오케피석에 들어가면 에너지가 생긴다. 이제는 그 공간이 가장 편안하기도 하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히려 일이 없을 때는 몸이 더 아파요. 이 노예근성….(웃음) 저는 공연장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도 쉬는 기분이에요. 연습이 잘 되면 아팠던 몸도 낫는 기분이 들고요. 이거 좋은 거 맞나? 하하. 놀라운 경험이죠. 일을 하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김문정 음악감독은 “잘 쉬면서 살기”가 삶의 목표라고.

“만약 제가 세월이 흘러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떨지 생각해봐요. 100% 우울증이 걸릴 거라 확신하는데. 하하. 그래서 지금 열심히 일을 하다가도 스스로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을 해요. 잘 놀고, 잘 쉬고, 열심히 일하는 게 제 목표예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