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는 홈 개막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전주 KCC를 꺾은데 이어 고양 오리온, 서울 삼성, 인천 전자랜드, 부산 kt를 연파했다. 지난 시즌까지 식스맨으로 출전시간이 평균 10분 미만이었던 서민수, 김태홍 등 새로운 얼굴들이 성장세를 드러내면서 팀이 탄력을 받고 있다. 외국인선수는 다재다능하고 득점력이 좋은 디온테 버튼과 높이가 좋은 로드 벤슨을 보유해 10구단 중 가장 좋은 조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벤치에서 나오는 선수들도 코트에 설 때마다 제몫을 해 탄탄한 팀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DB의 전통적인 색깔인 높이를 앞세운 수비 농구를 탈피해 공격에 많은 힘을 실은 것도 호성적을 거두는 원동력이 됐다.
비 시즌 팀의 지휘봉을 잡은 DB 이상범 감독의 지도철학이 팀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 감독은 비 시즌에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이정현 영입에 올인 했지만 KCC에 졌다. 트레이드도 녹록치 않았다.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유성호를 받고 김동희를 내주는 1대1 트레이드만 성사시켰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자 이 감독은 결국 내부에서 선수를 성장시키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그는 눈높이를 많이 낮췄다. 야인 시절 일본 고교 팀 인스트럭터를 맡았던 이 감독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량이 다소 부족한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 힘썼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가능하면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뜻하는 대로 잘 안 되는 선수에게 화를 내거나 너무 많은 요구를 하면 선수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정신적으로도 지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되면 기량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걸 일본 고교팀을 지휘하며 깨달았다. 이 감독은 또한 비 시즌 연습경기를 하면 작전타임 시간 이외에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작전 타임 때도 간단하게만 말할 뿐 복잡한 얘기는 삼갔다. 선수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갈 시간을 준 것이다.
이러한 이 감독의 지도방법은 예상보다 빠른 효과를 드러냈다. 경험부족을 드러낼 줄 알았던 DB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내고 있다. 주전들뿐이 아니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나오는 식스맨급 선수들도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이 감독은 “예를 들어 특정 선수가 필요하다면 경기 일주일 전 정도에 미리 출전을 준비하라고 말을 해주는 편인데 선수들이 알아서 잘 준비를 해주고 있다. 그 덕분인지 어떤 선수가 나서도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선수들에게 고마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DB는 최근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이 감독은 이른바 ‘만약’을 대비하고 있다. 그는 “냉정하게 우리 팀 전력을 보면 6강 싸움을 간신히 할 정도다. 지금은 팀 분위기도 좋고, 선수들도 자신감에 차 있는데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언젠가 꺾일 것으로 보고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이 대부분 경험적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얘기했다.
이 감독은 “처음에 팀을 맡았을 때는 걱정도 됐다. 그런데 일본에서 고교 팀을 맡을 때는 생각하며 내가 선수들에게 맞추는 쪽으로 결정했고,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잘 온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선수들이 잘 해낼지는 나도 몰랐다”라며 기분좋은 웃음을 보였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