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16강 도전의 첫 걸음은 정보싸움과 맞춤형 준비

입력 2017-12-0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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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가 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끝난 ‘2018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조추첨 행사에서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 추첨용지를 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일 새벽 모스크바의 크렘린궁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행사의 끝자락까지도 대한민국은 호명되지 않았다. 출전국 32개국 중 30개국의 조 편성이 마무리된 가운데 남은 두 나라는 하필이면 한국과 일본이었다. 독일, 멕시코, 스웨덴의 F조와 폴란드, 세네갈, 콜롬비아의 H조가 남았다. 종교를 믿진 않지만 나는 그 순간 손을 모으고 짧은 기도를 했다.

‘제발~.’ 이름값으로 보면 H조 정도면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야속하게도 우리가 먼저 호명됐다. F조다. H조의 일본은 환호했다. 희비가 엇갈렸다. 현장에서 조 추첨을 지켜보던 한국축구 레전드 차범근과 박지성도 당황한 듯 허탈하게 웃었다. 우리 모두의 기도 내용은 똑 같았던 모양이다.

드라마틱한 조 추첨이 끝난 뒤 외신에서 나온 전망은 예상대로 우울했다. 미국 ESPN은 F조에서 독일 1위, 스웨덴 2위, 멕시코 3위를 전망했다. 물론 한국은 최하위다. 16강 진출 가능성도 독일 82.5%, 멕시코 51%, 스웨덴 48.2%였다. 한국은 18.3%에 불과했다.

FIFA랭킹 등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나름대로 일리 있는 분석이었다. 솔직히 16강 진출을 확신하는 우리 국민은 많지 않다. 어쩌면 창피만 당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월드컵은 예전에도 그랬다. 우리가 1승 제물을 지목하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지목을 당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까닭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또 축구는 이변이 많은 종목이다. 축구 강호 이탈리아, 네덜란드, 칠레가 이번 대회 지역예선에서 떨어졌다.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게 1-7 대패를 당한 브라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홈 팀 브라질이 독일에 1-7로 무참히 깨졌다.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연거푸 무찔렀다. 이 모든 일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다.

객관적 데이터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은 게 축구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남은 6개월을 어떻게 준비하느냐다.

우리는 4년 전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브라질월드컵 실패의 원인은 디테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든 신경은 1차전 러시아전에 집중됐다. 러시아만 잡으면 다 될 것처럼 흥분했다. 하지만 1차전을 비기고, 2차전 알제리에 처참히 무너졌다. 당초 알제리는 약체로 분류됐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제리의 사냥감이었다. 4골이나 먹은 걸 보면 알제리에 대한 전력분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에 2-4로 패한 대한민국.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차전이 중요한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하지만 1차전은 1차전대로, 그리고 나머지 팀도 똑같은 비중의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알짜배기 정보를 구하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를 총가동해야 할 시점이다.

또 강조하고 싶은 건 내년 일정을 꼼꼼히 짜야 한다는 점이다. 1~2월의 전지훈련은 물론이고 3월의 평가전도 본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야한다. 5월 소집 때의 일정이나 전지훈련 장소, 평가전 상대도 치밀해야한다.

6월 이후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급한 건 베이스캠프를 정하는 일이다. 4년 전 황열병 예방주사의 시기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캠프 위치도 논란이 됐다. 이구아수에 차린 캠프가 잘못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기온차, 습도, 강우 등 컨디션에 미치는 환경 요소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반성이 뒤따랐다.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미숙한 캠프 선정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두 번 실패는 없어야한다. 러시아 현지의 기후, 시설, 치안, 교통 등을 충분히 수집한 뒤에 신중하게 결정해야한다. 최상의 여건에서 선수들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브라질월드컵 우승팀 독일의 4년 전 행보는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독일은 자기들이 찾던 이상적인 장소와 건물 형태가 없자 캄푸 바이아데에 맞춤형 베이스캠프를 아예 새로 지었다. 배로만 접근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며, 이동거리와 기후의 유사성을 고려한 장소였다. 아울러 친환경적으로 건립해 선수들의 빠른 회복을 도왔다. 그만큼 캠프 선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 감독은 조 추첨 후 “치밀하게 준비하면 16강 진출이 불가능은 아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지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아마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일 수도 있다. 잘만 준비하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월드컵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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