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와 덩크슛’에서 시작한 윤성빈 성장 풀스토리

입력 2018-01-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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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윤성빈(오른쪽)은 애초부터 스켈레톤 선수를 꿈꾼 게 아니다. 덩크슛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난 고교생이었던 그는 슬리퍼를 신고 달리기를 하기 위해 서울체고에 갔다가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의 눈에 들어 스켈레톤에 입문했고, 지금은 월드컵 3연속 우승을 차지한 세계 최강자로 성장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스켈레톤 신성’ 윤성빈(24·강원도청)의 탄생 비화는 흥미롭다.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이들이 “윤성빈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과 다름없다”고 입을 모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썰매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스타가 나왔다는 기본적인 팩트 이상의 특별한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작은 점 여러 개를 모아 큰 원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윤성빈은 서울 신림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처음 스켈레톤을 접했다. 그 당시에도 한국 ‘썰매판’은 황무지에 가까웠다. 스켈레톤은 물론이고 봅슬레이, 루지가 어떤 종목인지도 모르는 이가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열악했다. 선수를 수급할 때도 ‘썰매 잘 타는 사람’이 아닌 ‘달리기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이었을 정도다.

2006년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하 서울연맹)이 창설과 동시에 대회를 개최했는데, 참가할 선수조차 마땅치 않았다. 결국 서울연맹의 여인성 회장과 강광배 부회장(현 한국체대 교수)이 발 벗고 나섰다. 강 부회장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좋은 학생 없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을 정도다. 이때만 해도 윤성빈은 또래 학생들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정도였지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해 올림픽 메달을 노리고 있다.

윤성빈 이전에도 여러 차례 선수를 선발하려는 시도를 했다. 비단 스켈레톤뿐만 아니라 봅슬레이, 루지 등 썰매 종목의 활성화를 위해 강 부회장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진원지는 연세대학교였다. 연세대에는 야구와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럭비의 5개 운동부가 있는데 여기서 프로와 실업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부상으로 격렬한 운동을 하기 어려워진 선수를 주목했다. 이 역시 서울연맹이 창설과 동시에 진행한 일이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와 사회체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쳤다.

이때 홍보 포스터를 확인하자마자 “썰매를 타겠다”며 문을 두드린 이가 2006년 당시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이던 현 2인승 봅슬레이대표팀의 김동현(30·강원도청)이다. 훈련 환경은 열악했다. ‘1인 다(多)역’은 숙명이었다. 한 썰매 관계자는 “처음에는 주전자에 물을 떠서 라인을 그리며 훈련을 했을 정도”라고 돌아봤다. 윤성빈은 운이 좋게도 어느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됐을 때 썰매판에 뛰어든 케이스다.

남자 스켈레톤 대표 윤성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슬리퍼와 덩크슛, 윤성빈의 성장 키워드 둘

강 부회장에게 윤성빈을 추천한 인물은 2012년 당시 신림고 체육교사였던 김영태 서울연맹 이사다. 서울체고 운동장에서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과 함께 테스트를 통해 선수 발굴 작업 중이었다. 유망주를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해야 하는 연맹 입장에선 운동신경이 뛰어난 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김 이사는 강 부회장에게 “그 친구(윤성빈)가 이 근처에 살고 있다. 운동을 잘하는데, 점프력도 좋고 잘 뛴다. 덩크슛도 할 줄 안다”고 추천했다. 김 이사의 연락을 받은 윤성빈은 슬리퍼 차림으로 운동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달리기를 시켜보니 전체 10등 정도로 기록이 좋지 않았다. 기존에 테스트했던 학생들이 신통치 않아 윤성빈을 섭외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 부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운동신경이 있어 보이는데, 달리기를 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테스트가 끝난 뒤 윤성빈을 따로 불러 “잠시 남아있으라”고 전달했다. 미래 한국을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할 스켈레톤 스타 탄생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썰매와 처음 인연을 맺은 윤성빈의 성장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3개월만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한국체대 체육학과에는 전국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하거나 국가대표에 선발돼야 입학이 가능한데, 윤성빈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신림고 시절부터 한국체대 봅슬레이스켈레톤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기량을 갈고 닦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주말에는 강 교수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훈련에 매달렸을 정도다. 운동신경이 워낙 뛰어난 윤성빈이 무서운 속도로 스켈레톤에 적응한 비결이다. “윤성빈은 한국체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스켈레톤이 어떤 종목인지 배운 선수다. 그만큼 성장속도가 빨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천운을 타고났다. 기량이 영글었을 때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이세중 SBS스포츠해설위원의 회상이다.

윤성빈의 코스 이해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코스 이해도는 주행능력과 궤를 같이하는데, 그의 전담코치인 리처드 브롬리의 코스 분석도 큰 몫을 차지한다. SBS 이세중 해설위원은 “윤성빈이 지금의 기량을 갖춘 데는 브롬리 코치의 존재도 절대적”이라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국가대표 타이틀, 그것은 날개였다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에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1년도 지나지 않아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데뷔 후 첫 시즌인 2012~2013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아메리카컵에서 ‘톱5’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12년 11월 1차대회에서 23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고, 7차 대회에서 8위를 차지하며 ‘톱10’에 진입했다. 8~9차 대회에선 각각 5위, 4위에 오르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썰매의 불모지였던 한국 출신 스켈레톤 유망주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커져갔다.

가능성을 확인한 윤성빈은 더욱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닦았다. 강 부회장은 윤성빈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윤성빈이 한국 스켈레톤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그 결과 2013~2014시즌 아메리카컵 3~4차대회 동메달, 5차대회 은메달을 획득하며 메달권에 진입했고, 2013~2014시즌 대륙간컵 6차대회에선 금메달을 거머쥐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2014~2015시즌 월드컵 2차대회에서 따낸 동메달은 윤성빈이 월드 클래스로 진화했다는 증거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월드컵에서 메달을 따낸 것 자체가 한국 썰매의 경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성빈이 세계 최고로 올라설 것으로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윤성빈보다 열살 많은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 등 강자들의 입지가 워낙 굳건해서였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이 깨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2015~2016시즌 월드컵 7차대회에서 1~2차시기 합계 2분18초2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 사상 최초의 스켈레톤 월드컵 금메달이라 의미가 컸다. 매 시즌마다 한계를 스스로 넘어서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16~2017시즌 첫 월드컵(1차대회·캐나다 휘슬러)에서 따낸 금메달은 윤성빈의 활약이 1회성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것이었다.

주력을 앞세운 힘찬 스타트와 주행능력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덕분이다. 2017~2018시즌 2~4차 월드컵 3연속 금메달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윤성빈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스켈레톤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리처드 브롬리 코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브롬리 코치를 주목하라

한국이 2018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썰매 종목에 대한 지원금은 무려 30배나 뛰었다. 2010밴쿠버올림픽 당시 2억원에 불과했던 지원금이 지금은 무려 60억원에 달한다. 그 덕분에 최고의 메카닉(기술자)과 장비를 얻었고, ‘어벤저스급’ 지도자와 함께 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전담코치는 세계 3대 썰매 제조사 중 하나인 영국의 브롬리 사를 운영하고 있는 리처드 브롬리(41) 코치다. 브롬리 코치는 썰매를 직접 제작하고, 날을 다듬으며 코스 분석까지 돕는다. 윤성빈이 최고의 경기력을 뽐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다. 이세중 SBS스포츠해설위원은 “브롬리 코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윤성빈이 뛰어난 주행능력을 갖추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브롬리 코치의 동생인 크리스티안은 메카닉 출신인데, 본인의 장비를 테스트하기 위해 선수가 된 케이스다. 이들은 ‘닥터 아이스’라 불릴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브롬리 코치가 주행능력 향상을 도왔다면, 스타트는 윤성빈 본인의 노력이 동반된 결과다. 이 위원에 따르면, 스켈레톤의 스타트는 육상 단거리 종목 스타트를 기반으로 한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썰매에 올라타야 하는데, 이론적으로 0.1초의 스타트 차이가 최대 0.3초의 기록 차이로 이어질 수 있는 터라 그 중요성은 몇 번을 설명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위원은 “기본적으로 민첩성과 순발력은 타고나는 부분이 크다. 윤성빈 뿐만 아니라 한국 스켈레톤 유망주들도 이 부분에 강점을 보인다는 점이 반갑다. 앞으로 미래가 밝은 이유”라고 밝혔다. 덧붙여 “상위권 진입을 위해선 좋은 스타트가 필수다. 스타트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주행을 통해 이를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러시아)처럼 스타트가 좋다고 해도 주행 능력을 개선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스켈레톤 대표 윤성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나는 만족을 모르는 사나이”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멘탈(정신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본적으로 만족을 모르는 성격이다. 2016~2017시즌 월드컵 7차대회를 마친 뒤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16~2017시즌 월드컵 1차대회(휘슬러) 금메달, 2차(미국 레이크플래시드)·7차대회(오스트리아 이글스) 동메달, 5차(생모리츠)·6차대회(독일 쾨닉세) 은메달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2017년 2월 귀국했을 때 윤성빈은 “전체적인 경기 내용에서 스스로 화가 났다”고 밝혔다. “선수들이 2016~2017시즌 월드컵에서 올림픽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서로 숨기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이다.

2017~2018시즌 월드컵 5차대회(이글스)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와 견줘 다른 선수들과 격차가 줄었지만 방심할 수 없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을 반드시 찾겠다”고 했다. 이는 윤성빈의 승부욕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포기하고 귀국한 것도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트랙에 완벽하게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올림픽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남았음에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명확했다. 이 위원은 “윤성빈의 최대 라이벌은 두쿠르스다. 두쿠르스는 부친이 만든 썰매를 받아 본인이 직접 날을 다듬는다. 메카닉 역할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차례 주행훈련을 거쳐 최적의 썰매를 완성한다. 관록이 대단하다.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은 두쿠르스가 한 수 위다. 윤성빈은 주행능력을 통해 이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트랙 적응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무게중심을 이동하며 주행하는 스켈레톤의 특성상 ‘홈 트랙’에서 최대한 많은 훈련을 하며 회전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윤성빈은 올림픽 개최 1년 전부터 이미 이 작업에 돌입했다.

남자 스켈레톤 대표 윤성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기적? 차근차근 준비한 결과물

지금의 윤성빈을 보며 ‘기적’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썰매종목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언젠가는 선수가 나온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차근차근 준비한 결과물이 평창올림픽에 맞춰 나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례로 휘문고등학교가 봅슬레이스켈레톤팀을 창단했지만, 3년도 버티지 못하고 뜻을 접은 바 있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타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까지 수급해서 팀을 운영하려 했다는 점이 이를 설명하는 단적인 예다. 그만한 자원조차 사라지는 바람에 롱런하진 못했지만, 시도 자체로 대단히 의미가 컸다. 그만큼 자원을 수급하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윤성빈과 같은 선수를 발굴할 수 있었다. 이 위원은 “윤성빈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성실함이다. 정말 성실하게 훈련했다.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면 올림픽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슬리퍼 차림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달리기’를 하러 나갔던 고등학생의 빙판 위 레이스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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