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토티 같은 K리그 원클럽맨을 기다리며…

입력 2018-01-04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 팀에 몸담는 원클럽맨은 지구상을 통틀어도 그 수가 많지 않다. K리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희소성의 가치는 더 크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한 포항 황지수가 원클럽맨의 전형이다. 2013년 K리그 우승 당시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는 황지수. 스포츠동아DB

스포츠에서 이 구단 저 구단 옮겨 다니는 선수를 저니맨(Journey man)이라고 한다. 한 팀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이유는 다양하다. 실력이 출중해 서로 데려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실력이 부족해 여기저기서 떠밀리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의 경우를 원클럽맨(One-club man)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한 구단에 뼈를 묻는 선수다. 프로 입단부터 은퇴까지 줄곧 한 팀에서만 뛴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실력은 기본이다. 부상과 기복이 없는 꾸준함은 필수다. 동료(구단)와의 원만한 관계도 중요하다. 팬들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든 걸 충족해야만 비로소 원클럽맨이 될 자격을 갖춘다. 덧붙여 팀 성적도 변수다. 혹여 강등될 경우 뜻하지 않게 이적 또는 임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프란체스코 토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해 여름 현역에서 은퇴한 프란체스코 토티(42)는 대표적인 원클럽맨이다.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클럽 AS로마의 레전드다. 토티하면 AS로마, AS로마하면 토티가 연상될 정도로 상징성이 강하다. 1989년 AS로마 유스팀에 입단해 16세이던 1992~1993시즌 1군에 데뷔했고, 2016~2017시즌까지 25년간 통틀어 786경기 출전, 307골을 기록했다. 은퇴 이후에도 AS로마의 디렉터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라이언 긱스와 폴 스콜스(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파울로 말디니(AC밀란) 카를로스 푸욜(FC바르셀로나) 등도 이름 난 원클럽맨들이다. 이들 이외에도 각국의 명문 구단에는 전설적인 원클럽맨들이 존재한다.

파올로 말디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현역 선수 중에는 리오넬 메시(31·FC바르셀로나)가 첫손에 꼽힌다. 메시는 바르샤의 상징이다. 그는 지난해 말 바르샤와 계약기간을 2021년 6월30일까지 연장했다. 구단은 메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바이아웃 금액(선수를 데려가기 위해 지불해야 기본 금액)으로 무려 7억 유로(약 9030억 원)를 책정했다. 이로써 2004년 바르샤 1군에 데뷔한 메시는 최소 17년은 바르샤에서 뛸 가능성이 높다.

K리그로 눈을 돌려보자.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우리의 경우는 상무나 경찰청에서 뛴 경력을 뺀 나머지를 따져야한다.

임의적으로 300경기 이상 출전을 잣대로 잡아본다면 지난해 말 은퇴한 포항 황지수는 원클럽맨이라 부를 수 있다. 2004년 호남대 졸업 후 포항에 입단해 공익요원 복무기간(2009년 말~2011년)을 제외하면 오직 포항에서만 320경기를 뛰었다. 이는 팀 통산 최다 출전 기록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로 사랑을 받았다. 팀 동료인 김광석도 2003년 포항에서 데뷔해 지난 시즌까지 303경기를 기록 중이다.

선수 시절 신태용. 스포츠동아DB


K리그 통산 기록을 살펴보면, 신태용(현 대표팀 감독)이 가장 인상적이다. 1992~2004년까지 13시즌 동안 일화축구단(현 성남FC)에서만 401경기를 기록했다. 한 팀에서 뛰며 신인상, 득점상, MVP 등 최고의 자리에 오른데 이어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시민구단으로 넘어가기 전에 기업구단이 제대로 운영됐다면 신태용이 가진 원클럽맨의 가치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울산 현대 김현석(371경기), 전북 현대 최진철(312경기), 수원 삼성 김진우(310경기), FC서울 윤상철(300경기) 등도 한 팀 유니폼만 입고 300경기 이상의 족적을 남긴 레전드들이다.

통산 532경기를 뛴 최은성은 대전에서 무려 464경기를 뛰었지만 이후 전북으로 이적한 뒤 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이장관은 부산에서, 이운재는 수원에서 각각 300경기 이상 출전했지만 타 구단으로 옮긴 뒤 현역 유니폼을 벗은 케이스다.

대전 선수 시절 최은성. 사진제공|대전 시티즌


저니맨과 원클럽맨, 정답은 없다. 선수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클럽맨이 돋보이는 이유는 희소성에 있다. 위에서 살펴봤듯 출범 35년이 지난 K리그에서 입단부터 은퇴까지 한 곳에서 헌신한 선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아울러 원클럽맨의 출전 기록은 곧 구단의 역사다. 그들은 역사를 쓰는 기록 보유자이자 파괴자다. 원클럽맨은 상품성 높은 프랜차이즈 스타다. 이는 홈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는 중요한 요소다.

역사에 영원히 남는 건 기록이다. 그 속에 팬들의 추억도 함께 한다. 원클럽맨은 기록과 추억의 한 가운데 자리한다. 그들을 전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