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빛낸 ‘황금세대’…92학번 박찬호, 82년생 이대호

입력 2018-01-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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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학번 박찬호-임선동 故 조성민(왼쪽부터). 사진|동아일보DB·스포츠코리아·현대 유니콘스

1998년 12월 16일 방콕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코리안 특급’으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박찬호는 이를 악물고 일구일구 혼신을 다했다. 상대는 숙적 일본. 박찬호가 7이닝 동안 27타자를 맞아 4안타 1홈런 2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한 덕에 한국은 13-1, 7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따냈다. 박찬호는 마지막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낸 뒤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프로와 아마를 망라한 한국야구 최초의 ‘드림팀’은 박찬호의 맹활약(2승1세이브·방어율 1.32) 속에 6전승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1973년생인 박찬호는 동갑내기 임선동, 조성민과 함께 당시 ‘황금의 92학번’으로 불렸다. 한양대 재학 도중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 고려대 졸업 후 일본프로야구 최고 명문 요미우리에 입단한 조성민, 연세대 졸업 후 일본프로야구 다이에(현 소프트뱅크)와 한국프로야구 LG 사이에서 국제스카우트분쟁을 일으킨 임선동은 모두 ‘제2의 선동열’로 한껏 기대를 모았던 대형투수들이다. 결과적으로는 박찬호가 훨씬 더 큰 족적을 남겼지만, 대학시절까지는 임선동과 조성민이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73년생 동기들 중에는 쟁쟁한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투수로는 손경수, 염종석, 정민철, 차명주를 빼놓을 수 없다. 김종국, 박재홍, 송지만, 홍원기 등의 타자들도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KBO리그와 국제무대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박재홍은 ‘리틀 쿠바’라는 애칭 속에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하는 한편 KBO리그에선 1996년부터 2012년까지 17시즌 동안 1797경기에 출장해 통산 타율 0.284(1732안타)에 300홈런, 1081타점, 1012득점, 267도루를 기록했다.

텍사스 추신수-롯데 이대호-한화 김태균-정근우(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황금의 92학번’과 더불어 한국야구의 황금세대를 얘기할 때 꼭 등장하는 세력은 1982년생들이다. 아직도 선수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이대호, 손승락(이상 롯데),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 오승환(전 세인트루이스), 추신수(텍사스) 등이 대표주자들이다. 특히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추신수는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합작한 뒤 프로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부산고 졸업 후 미국으로 직행한 추신수는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고초를 겪었지만, 시애틀~클리블랜드~신시내티~텍사스를 거치며 한국 타자들 중에선 가장 성공한 메이저리거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

1987년생인 강정호(피츠버그), 류현진(LA 다저스), 황재균(kt)과 ‘빠른 88년생’으로 이들의 동기인 김현수(LG)는 92학번 세대와 1982년생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2008베이징올림픽 이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주축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민병헌(롯데), 양의지(두산), 차우찬(LG)도 1987년생으로 KBO리그에서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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