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볼 브레이크] 신장제한·연봉 상한선…총재님, 이의 있습니다

입력 2018-01-3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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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이 2018∼2019시즌부터 시행하는 새로운 외국인선수 선발규정이 현장의 반응을 무시한 채 총재의 주도로 확정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크다. 201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KBL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선수의 키를 재고 있다. 사진제공 | KBL

외인 장신 200cm·단신 186cm 신장 제한
이사회 현장 목소리 무시, 총재 의견만 반영
“센터 경쟁력은 떨어지고 가드 위축 불보듯”
70만달러 ‘외인 샐러리 캡’ 말만 자유계약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시즌은 한창이지만 10구단은 다음 시즌 준비도 함께 한다. 새로운 외국인선수 선발을 위한 자원 검토가 주된 업무다. KBL은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선수 선발을 자유계약으로 변경한다. 2명을 보유하고 합계 6쿼터 출전규정은 유지된다. 2명의 합계 샐러리 캡은 70만 달러다. 신장제한도 뒀다. 장신은 200cm 미만, 단신은 186cm 미만으로 선수를 구분해 선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놓고 말들이 많다. 외국인선수 한 명의 연봉 상한선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신장측정 방법도 애매모호하다. 새 외국인선수 제도가 큰 틀만 잡혀있을 뿐 세부적인 사항은 결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게다가 외국인선수 선발제도 자체가 KBL 수뇌부의 일방적인 결정이어서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진제공|KBL



● 현장, 프런트의 의견이 배제된 이사회의 결정

새로운 외국인선수 제도는 지난해 9월 이사회에서 최종 의결됐다. 공식발표에서 신장제한 내용은 제외됐다. “2017∼2018시즌에 뛸 외국인 선수들이 재계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태업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관계자와 선수들이 새로운 규정을 알았지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정 과정을 되돌아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신장제한의 경우 이사회 멤버들이 지난해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미국프로농구(NBA) 연수를 갔을 때 김영기 총재 이하 현 집행부가 이사들에게 언급한 내용 그대로다.

그 이후 현역 감독들로 구성된 감독자회의와 현직 사무국장과 KBL 관계자들로 구성된 외국인선수 선발 TF팀에서 논의해 이사회에 제안한 방안도 있는데 이는 철저하게 무시됐다. 감독자회의와 외국인선수 선발 TF팀에서는 자유계약을 시행하되 1명 보유에 1명 30분(3쿼터) 출전, 2명 보유 1명씩 4쿼터 출전 등 몇 가지 안을 마련해 이사회로 넘겼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이 방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총재가 원하는 대로 이사회에서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사진제공|KBL



●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한 이사회

이사회의 결정 이후 몇몇 사무국장들과 TF팀에 들어갔던 관계자들이 불만을 표시했다. 몇몇 이사들은 KBL 이사회에서 재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결정돼 언론에 발표가 된 만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무국장 회의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얘기가 오갔지만 마찬가지였다. 한 번 결정됐고, 공표가 된 만큼 사무국장 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해 공론화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KBL의 고위 관계자는 “의견이 많이 갈렸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때로는 연맹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할 때도 있다. 구단의 이해관계가 걸리는 부분도 있어 특정 구단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리그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단신 외국인 선수를 도입했더니 경기가 아기자기해지고 활기차게 바뀐 것이 사실이다. 신장이 큰 외국인 선수보다 라틀리프, 헤인즈와 같은 선수들로 더 빠른 농구를 해보자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현장의 목소리가 제외됐다는 비판은 충분히 이해한다. 총재가 개인적인 욕심이나 그런 것으로 했겠나.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고, KBL의 흥행을 위해 잘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이사들을 설득했고, 받아들여졌다”면서 의사결정 과정도 설명했다.

사진제공|KBL



● 재논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다수의 KBL 구성원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KBL 수뇌부와는 정반대다. 이들은 단순히 외국인선수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리그의 흥행이 전처럼 성공할 것이라고는 판단하지 않는다. A감독은 “우리팀의 경우 외국인선수가 1명으로 줄면 불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명으로 가야한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면 국내선수가 더 죽는다. 신장 186cm 미만의 가드들이 몰려오면 국내 가드들이 고사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B감독도 “200cm 미만의 외국인선수가 오면 토종 센터가 살아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국내 장신선수들이 이제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국제경쟁력을 고려한다고 해도 리그에서 장신의 외국인선수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어야 국제대회에서도 도움이 된다. KBL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C감독은 “이번 결정은 말만 자유계약이지 않나. 샐러리 캡, 신장제한 등 사실상 자유가 없는 자유계약이다”고 비판했다.

KBL에서 오래 지도자 생활을 했던 D 전 감독은 “단신 외국인선수들의 퍼포먼스 자체가 좋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없다고 국내 선수들이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내 선수들의 설자리를 더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그런 뒤 1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외국인선수 제도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 지도자와 구단 관계자들은 “이미 정해졌으니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고민해야 한다”면서 기존 결정을 바탕으로 차선책을 찾아보자고 한다.

각자의 의견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논리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외국인선수 제도가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결정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과정의 공정성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포용해 모두가 함께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 이번의 결정이 문제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면 뒤집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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