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토크] 전북 홍정남 “네가 뚫리면 뒤엔 형이 있잖아”…홍정호 “내가 앞에서 잘 막아줄게”

입력 2018-02-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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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홍정남(왼쪽)-홍정호 형제가 전북 완주군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형제애는 두텁지만 함께 사진을 찍는 게 멋쩍은 듯 애매한 포즈를 취했다. 완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 GK 홍정남 & DF 홍정호 전북서 한솥밥 먹게 된 형제들의 수다

▶정남이 정호에게

네가 온다니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
전북은 자율의 팀, 때론 그게 더 어렵지
함께 트로피 들어올리면 얼마나 좋을까

▶정호가 정남에게

동국이형 등 형님들이 반겨줘 편안해
닥공스타일 수비때 떠 짜릿할 것 같아
형이랑 우승할 기회 생겨 더 욕심나네


K리그에는 많은 형제 선수들이 존재했다. 한 팀에서 함께 땀 흘리며 동시에 그라운드를 누빈 사례도 종종 있었다. 다가올 2018시즌도 그렇다. K리그1(클래식)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에도 형제가 있다. 수문장 홍정남(30)과 중앙수비수 홍정호(29)다. 이번에 프로에서 처음 한솥밥을 먹게 됐다.

‘언젠가 한 번은 함께 하겠지’라며 막연히 품었던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일본 오키나와∼전남 목포에서 몸을 만들고 실전감각을 다진 선수단의 막바지 동계훈련이 진행 중인 완주군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형제는 “‘같이 뛰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종종 했는데, 정말 이뤄질진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을 낳은 부모님도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임대 신분으로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을 떠나 전북 유니폼을 입은 동생과 형이 서로 보듬어주며 함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형제에게 전했다. 이들 부모의 소원은 오직 하나. 아들둘이 다치지 않고 전북이 골을 먹지 않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닥공(닥치고 공격)’을 외치는 전북의 뒷문을 책임져야 할 형제의 수다를 들어봤다.

전북 홍정남(오른쪽)-홍정호(왼쪽)형제. 사진제공|전북현대



● 형이 동생의 결정을 이끌다


형(정남)=네가 전북 임대를 확정하고 나자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시더라.


동생(정호)=많이 상의했지. ‘어디든 마음 편히 뛸 수 있는 팀으로 가면 좋지만 기왕이면 형하고 함께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종종 하셨어.

형=서로에게 정말 잘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걱정도 그만큼 늘어나셨어. ‘올 시즌에도 우승해야 할 텐데’라고. 혹여 서로가 서로에게 머쓱한 상황이 발생할까봐 그러신 것 같네.

동생=아마 나도 형이 있어서 (이번 전북행) 결정이 아주 어렵지 않았어.

형=야, 말도 마라. 네가 우리 팀과 접촉한다는 정보를 들은 동료들이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대단했다. 사인하기 하루 전날까지도 ‘정말 정호가 오기는 오냐’고 물어오더라. 난 최대한 함구하려 했지. 사실 계약이라는 게 당일까지도 알 수 없는 일이잖아.

동생=결정하고나자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어. 그 때부터는 형한테 이것저것 전북의 모든 걸 물어보려 했지. 규율부터 숙소생활 노하우까지. 아, 봉동(전북 클럽하우스 위치)에서는 여가시간에 뭘 해야 하냐고도.

사실 형은 동생에게 딱히 해줄 조언은 많지 않았다. 10여년이란 오랜 기다림 끝에 전북의 주전 골키퍼로 도약한 형은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또 유럽 도전에 성공한 동생이 부럽다고 지난해 초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동생에게는 형이 언제나 최고였고, 지금도 그렇다. 형의 묵묵함과 성실함이 동생은 많이 부러웠다. 전북의 수문장은 대단한 위험만큼 부담이 큰 자리다.

전북 홍정남(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홍정호(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전북현대



● 형제의 비상, 준비는 끝났다!

형=네가 어릴 적부터 워낙 실력이 좋았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꾸준히 경기를 뛰었잖아. 아마 여기서도 적응을 잘할 것이라 봤어. 그냥 운동할 때 주의사항 몇 가지 알려준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

동생=느낌이 정말 대단하더라. 특히 형님들이 전부 반갑게 날 맞이해 줬어. (이)동국 형님부터 먼저 오셔서 말도 많이 건네고. 2013년에 제주 유나이티드를 떠나 한참 외국에만 머물러서 걱정도 좀 했는데 어색하지 않았어. 물론 형이 있어서 더 편했을 수 있었지.

형=여기 전북에서는 시간만 철저히 지키면 된다. 아무래도 코칭스태프부터 간섭하지 않으니 생활이 편안하긴 해. 그래도 그게 더욱 어려워. 자율만큼 철저히 책임이 주어지니까.

동생=난 이제야 제대로 우승할 기회가 생겼다 싶어. 임대 신분이니까 더더욱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뭔가 많은 걸 이루고픈 욕심도 생겼고. 많은 생각도 했고, 다짐도 스스로에게 했어.

형=몸은 괜찮은 것 같네. 그래도 좋지?

동생=확실히 훈련 프로그램이 독특해. 독일과 중국에서는 세부 프로그램이 많은데 전북에선 자체경기 위주로 풀 트레이닝이 진행되니까 전술을 자연스레 몸에 익히고 경기력도 최대한 빨리 끌어올릴 수 있으니 시간낭비도 적어.

형은 동생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큰 스트레스였다. 어느 순간 동생은 돈만 보며 성장을 포기한 선수로 낙인 찍혔다. 내막을 모르는 이들이 하는 비난을 위한 비난을 보면서 반박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았다. 오히려 부모님이 ‘축구 게시판을 보지 말라’고 달랠 정도였다.

동생=억울하지는 않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을 내가 한 거니까. 그래도 신경을 크게 안 썼어. 그저 가능한 내 위치에서 내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마음을 잡았지.

형=내게 쏟아지는 비판은 괜찮은데 너한테 향하는 화살은 참기가 정말 어렵더라.

동생=내가 보기에 형은 참 배울 점이 많아. 난 경기를 많이 뛰면서도 불평불만을 털어놓곤 했는데, 형은 묵묵하게 어려움을 이겨냈잖아. 친형에게 귀감을 받는 동생. 바로 형제가 함께 뛰는 근본적인 이유로 생각해.

전북 홍정호. 사진제공|전북현대



● 형제의 시선은 트로피로

형=언제까지 함께 뛸 수 있을지 몰라도 소중한 추억이 될 거야. 트로피를 들어올리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려움과 고통의 과정을 나눴다는 혜택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잖아.

동생=그렇지. 잘하면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고, 긍정의 에너지를 나눌 수 있고. 안 풀리면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아, 또 있다. 함께 못해버리면 비난도 더블이 되겠네.

형=일단 주전으로 뛰어야겠지. 지난해는 만족스럽지 않았어. 아쉬움도 있었고. 이젠 여유를 갖고 경기를 하려고.

동생=형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잘 막아내야겠지. 물론 최대한 많은 경기를 뛰어야하지만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

전북 홍정남. 스포츠동아DB


형=네 경기는 거의 챙겨봤어. 해외든, 국내든 전부 모니터링을 했지. 네 움직임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남아 있어. 움직임 대부분을 기억해. 네 스타일도 훤히 꿰뚫고 있고. 이제야 그 노력에 대한 도움 좀 받겠네.

동생=음, 그 위험 장면은 꽤 있겠지? 워낙 공격적이다 보니 역습도 많이 당하잖아. 수비수 입장에서는 이럴 때가 더 짜릿해. 독일에서도 역습을 내줄 때가 정말 많았는데, 잘 차단한 뒤에는 희열로 바뀌더라고.

형=정말 그럴까? 그래도 위험 장면은 줄었으면 하는데. 하지만 네가 뚫리면 내가 퇴장을 감수하고서라도 막아낼 거니 걱정마라.

동생=형이랑 함께 시즌이 끝난 뒤에 활짝 웃고 싶어. 흔치 않은 장면이니 더 욕심이 커.

완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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