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기자의 평창리포트] ‘트랜스포머’ 박승희의 고백과 회상, 그리고 다짐

입력 2018-02-0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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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박승희. 스포츠동아DB

‘트랜스포머’ 박승희(26·스포츠토토)는 한국 빙상의 대들보다. 2010밴쿠버~2014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3개를 따내며 실력을 입증했다. 이미 ‘올림피언’으로서 이룰 것은 다 이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쇼트트랙을 빼놓고 박승희의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박승희는 평창에서도 여전히 올림피언이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세 번째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됐다. 바뀐 것은 단 하나, 바로 종목이다. 그토록 익숙한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이다. 같은 빙상종목이지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쇼트트랙은 여럿이 출발해 순위를 가리는 ‘경주’라면, 맞대결이 아닌 기록 경쟁인 스피드스케이팅은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100분의1초를 가리는 종목 특성상 상대 선수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메달을 보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실격 등의 이유로 경쟁자 없이 홀로 레이스를 펼치게 되면 그만큼 불리하다.


● “힘들 때는 쇼트트랙 생각도 났다”

빙판을 사랑한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첫해인 2014년 곧바로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러나 2014~2015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그의 무대는 디비전B, 2부리그였다. 1차레이스 2위, 2차레이스 1위를 차지했지만, 실력자들이 즐비한 디비전A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2016~2017시즌 월드컵 1차대회 팀 스프린트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이 전향 이후 최고 성적이다. “힘들 때는 쇼트트랙 생각도 많이 났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싶었다. 쇼트트랙은 익숙한 만큼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박승희의 고백이다.

2014 소치올림픽에서 쇼트트랙대표로 출전했던 박승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전향의 고통, 박승희의 생각은….

종목 전향에 따른 고통을 모르는 이들은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였으니 스피드스케이팅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으로 박승희를 바라봤다. “쉽게 하는 줄 알더라. 힘들었고, 고생도 많이 했다.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세 번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는데, 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3~4년만에 기존의 선수들이랑 같은 위치에 있게 된 것 자체로 감사하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부담은 없지만, 쇼트트랙을 할 때보다 더 욕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힘든 만큼 오기가 생기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단 한 번의 레이스로 모든 것이 결정되니 더 그렇다.” 쇼트트랙과 달리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터라 한결 여유가 생겼지만, 최고의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없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박승희. 스포츠동아DB



● 후회도, 부담도 없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다. 쇼트트랙은 한국의 효자종목이다. 올림픽 시즌이 되면 엄청난 관심을 받는다. 이에 따라 선수들의 부담감도 가중한다. 엄청난 관심이 부담으로 작용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그 짐을 모두 내려놓았다. 웃음이 떠나지 않은 박승희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종목 선수로 올림픽에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쇼트트랙을 계속 했다면 그만큼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 지금은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모든 시선을 즐기고 싶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와 같은 설상 종목도 직접 가서 보고 싶다.”

한국여자쇼트트랙의 대들보였던 박승희가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4년 전 소치동계올림픽까지 쇼트트랙국가대표로 활약한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목표로 고독한 싸움을 견뎌왔다. 7일 대한민국 선수단의 강릉선수촌 입촌식 행사를 마친 박승희가 휴전벽에 기념 사인을 하고 있다. 강릉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박승희의 소박한 꿈 “미주에서 탔던 만큼만…”

박승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평창올림픽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가.’ 그는 주저 없이 기록 단축을 언급했다. 궁극적으로는 개인 최고 기록 경신이다. “미주지역에서 한 만큼만 기록이 나오면 더 없이 좋을텐데….” 2017~2018 ISU 월드컵 3~4차대회(캐나다 캘거리~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등 미주 지역에서 열린 대회 1000m에서 좋은 기록을 낸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실제 박승희는 월드컵 3차대회 디비전 B에서 3위(1분15초05)를 차지한 뒤 4차대회에선 디비전 A로 승격해 15위(1분14초64)의 기록을 작성했다. 2017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작성한 개인 최고 기록(1분16초83)을 2초 이상 앞당긴 것이다. 그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싶다. 빙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순위는 따라올 것으로 믿는다.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14일 오후 7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위대한 도전에 나서는 박승희를 만날 수 있다.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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