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최태웅 감독에 기부한 것은 ‘신뢰’였다

입력 2018-02-09 09:4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과 선수들이 배구 발전을 위해 1억원을 기부한 할머니들을 ‘캐슬’에 초청하는 약속을 지켰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신지원 할머니는 1억원을 맡기고 싶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얼굴 하나만 믿고서 마음을 정했다. 전화로 뜻을 전한다고 선뜻 믿을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궁리 끝에 가장 확실한 방법을 떠올렸다. ‘직접 가서 보여주자.’

그렇게 경기도 가평에서 충남 천안 ‘캐슬’로 향했다. 딸에게 운전을 시켰다. 딸도 배구 팬이라 그 먼 길을 선뜻 동행할 수 있었다. 무작정 캐슬에 도착했다. 캐슬은 아무나 출입가능한 공간이 아니다. 제지하는 구단 직원에게 할머니는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1억원’이라고 찍힌 수표였다. “이것을 최태웅 감독님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왔어요.”

왜 할머니는 최 감독과 현대캐피탈에 1억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으려 했을까. 어느덧 같이 늙어가는 90대 할머니와 70대 딸은 수십 년 배구 팬이다. TV, 인터넷 등으로 배구에 관한 것이라면 빠짐없이 챙겨봤다. 그럼에도 배구장 직관은 발길이 쉽사리 안 떨어졌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최 감독의 이미지에 끌린 덕분이었다. 현대캐피탈의 배구에 매료됐고, 최 감독이 행하는 기부에 무언가 응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할머니가 ‘캐슬’에서 신영석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할머니는 문성민을 묵묵히 조력하는 신영석을 현대캐피탈에서 가장 좋아한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기부는 베푸는 삶이다. 보통 마음으로 될 일이 아니다. 하물며 그 액수가 1억이라면 더 생각이 복잡했을 터다. 게다가 할머니는 최 감독과 현대캐피탈을 사적으로 전혀 모른다. 밖에서 챙겨보는 기사가 정보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사람을 보면 알아요. 이 사람(최 감독), 이 팀(현대캐피탈)이라면 믿고 맡겨도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기부를 결정한 1월 17일 할머니들은 천안 유관순체육관을 난생 처음 찾았다. 마침 현대캐피탈 정태영 구단주도 예고 없이 직관을 왔다. 보고를 접한 정 구단주는 경기 직후 바로 할머니들을 따로 찾아 감사를 표시했다. 이 자리에서 현대캐피탈은 평생 고정좌석 제공과 캐슬 초청을 약속했다.

그리고 2월 4일 천안 OK저축은행전에 맞춰 그 약속을 지켰다. 할머니와 딸은 경기를 관람한 뒤, 캐슬에서 선수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할머니는 가평에 최 감독과 선수들을 초대했다.

할머니들의 1억 기부는 현대캐피탈에게 금액 이상의 의미와 가치로 다가온다. ‘이 팀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구단의 존재 이유는 팬이다. 구단을 향한 팬의 지지는 값을 매길 수 없다.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거의 언제나 관중으로 가득 차 있다.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팬이 팀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현대캐피탈이 ‘배구 잘하는 팀’ 이상의 가치로 향하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