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BO 유감, 스피드업은 절대선인가?

입력 2018-03-02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KBO 정운찬 총재. 스포츠동아DB

KBO는 지난달 21일 ‘독특한’ 보도자료를 냈다. ‘KBO 정운찬 총재, 애리조나캠프에서 경기 스피드업 점검’이라는 제목이었다. 어떻게 점검했는지, 궁금해 읽어보니 ‘LG 류중일 감독과 의견을 나누고 청백전을 관람했다’가 전부였다. KBO는 2월 23일까지 진행된 미국 순방기간, 이틀에 한 번꼴로 정 총재 동정에 관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야구계에서는 “총재가 대통령인줄 아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이 타이밍에 공교롭게도 KBO리그에서 자동 고의4구 도입이 의제로 떠올랐다. KBO는 1일 “확정된 것이 아니다. 곧 규칙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KBO는 “메이저리그, 일본야구,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에서도 순차적으로 실시되는 것에 맞춘 것”이라고 이유를 댔다. 그러나 “국제룰 변화에 적응하려는 것도 있지만 스피드업 목적도 있다”고 인정했다.

자동 고의4구 자체는 장·단점이 있을 터다.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스피드업=절대선(善)’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나머지, 정작 KBO 구단들은 소외되고 있다.

미국 방문 기간, 정 총재가 스피드업을 상의한 사람 중 한 명은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다. 정 총재는 조만간 일본에 가서 일본, 대만, 호주 야구 커미셔너와 만난다. 이들과도 스피드업을 ‘논의’할 것이다.

스포츠동아DB


물론 총재가 외국 야구의 스피드업 방향성을 학습하려는 과정일 수 있다. 실행위원회, 규칙위원회에서 내부 토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재의 의중은 KBO 정책에 암묵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이 조직의 생리다. 정 총재의 코드가 뻔히 읽히는데, ‘자동 고의4구를 도입한들 얼마나 스피드업에 도움이 되겠나’라는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KBO 안에 있을까.

A구단 마케팅 종사자의 지적이다. “정 총재는 KBO 야구팬과 메이저리그 야구팬의 니즈(needs)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 같다.” 같은 야구라도 한국야구, 미국야구가 다르듯,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목적도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야구장을 찾는 행위는 그날의 가족행사다. 이런 팬들은 야구만 보지 않는다. 구장 인프라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즐기는 측면이 크다. 3시간 이상 놀고 싶은 팬들한테 ‘3시간 안에 문 닫으니 집에 가라’고 하면 좋아하겠나?”

쓸 데 없이 새는 시간은 줄이는 것이 맞겠지만 ‘1초라도 줄일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된다’는 관점도 현실 괴리라는 주장이다. 자동 고의4구를 도입하면, 1회당 20초 가량이 줄어들 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총재가 은연중 ‘메이저리그(2017년 자동 고의4구 도입)가 하니까 KBO도 따라가야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일종의 사대주의로 비쳐져 불편하다”고 비판했다.

야구는 글로벌 스포츠를 지향하지만 본질적으로 KBO리그는 내수시장이다. KBO 10개 구단 실무자들의 체험부터 들어야 정 총재가 추진하는 산업화도 구체화된다. 외국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총재가 경청할 우선순위가 어긋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