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영화 ‘지만갑’ 감독과 제작자 촬영 뒷이야기

입력 2018-03-3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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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이장훈 감독(왼쪽)과 제작사인 영화사 무비락의 김재중 대표는 4년 전 인연이 닿아 작품을 완성했다. 준비하고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 하나로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독 이장훈 & 영화사 무비락 대표 김재중

이장훈 감독
공학도서 연출가의 길로
검증 안 된 내게 기회
영화 보고 운 아내
한 사람이라도
더 보는 영화 만들 것

김재중 대표
바른 시선을 가진 감독
꼭 돕고 싶었죠
상 받을 영화?
결국 사람 이야기
행복한 영화 만들 것

“촬영장에서 바보가 된 듯 즐거웠다”는 감독과 “마음 따뜻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제작자가 있다. 멜로영화의 흥행 기록을 새로 쓰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연출한 이장훈(45) 감독과 제작사인 영화사 무비락의 김재중(41) 대표다. 햇수로 5년간 서로를 향한 신뢰를 밑바탕에 두고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를 위해 한눈팔지 않은 덕에 거둔 열매가 값지다.

14일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지만갑)가 보름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갈수록 더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 만족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가 돌아와 남겨진 남편 그리고 어린 아들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눈물을 동반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영화를 탄생시킨 주역들의 사연도 드라마틱하다.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40대 중반의 감독, 지난해 여름 극장가를 달군 ‘청년경찰’에 이어 ‘지만갑’으로 또 흥행을 이룬 제작자를 만났다. 웃음이 많은 건 두 사람의 공통점 같았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이장훈 감독(오른쪽). 사진제공|영화사 무비락


● 극장 한 번 안 가던 공학도, 귀인을 만나다


-재미있는 멜로가 나왔는데, 그걸 만든 감독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이장훈(이하 이)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하하! 새 인생을 살아보려는 마음. 그렇다고 범죄자는 아니다.”


-영화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영화를 안 건 대학 졸업 무렵이다. 비디오가게도 대학생 때 처음 가봤다. 그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문인 대학 선배가 방송국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PD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다. 형을 보니까 멋있고, 폼 나 보였다. 영화는 나랑 전혀 다른 세계처럼 여겨졌는데 왠지 궁금했다. 그 형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됐고.”

이장훈 감독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제대로 극장 한 번 가지 않은 공학도에게 연출가의 세계를 알린 사람은 SBS 손정현 PD다. 현재 시청률 1위인 ‘키스 먼저 할까요?’의 연출자이다. 극장과 TV에 멜로 열풍을 만든 두 인물의 인연도 흥미롭다.

“형한테 나는 늘 마음의 짐 같은 존재였다. 자기 때문에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죄책감에, 나를 만날 때면 말없이 택시비를 쥐어 주고 그랬다.(웃음)”

이장훈 감독이 연출 준비를 본격 시작한 때는 김재중 대표를 만나면서다. 2014년의 일이다. 또 다른 공동제작자 김우재 대표가 시나리오 집필가인 이만희 작가와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의 제자인 이장훈 감독을 소개받았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만갑’의 출발이다.

김재중 대표는 “영화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결과물인데 그런 면에서 이장훈 감독님의 시선은 바른 쪽으로 가 있었다”며 “꼭 감독이 되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믿어주는 제작자의 존재가 감독에겐 행운이다.

“하늘이 보내준 귀인이다. 제작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데뷔하지 못했을 거다. 나였어도, 아무런 검증도 안 된 나에게 연출 기회를 주긴 힘들었을 거다. 어찌 보면 제작자에겐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난 잃을 게 없지만 다른 분들은 다르니까.”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 무비락


● ‘아재’들이 만든 멜로, 관객의 감성을 사로잡다

탄탄한 원작이 있지만 ‘지만갑’이 지금처럼 인기를 얻는 배경은 우리 정서로 재탄생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의 힘이다. 영화는 20∼30대를 넘어 중년 여성 관객까지 사로잡고 있다. 40대 감독과 제작자의 섬세함이 그들의 마음에 적중한 것이다. 남자들이 만드는 멜로,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만희 작가님이 언젠가 ‘너는 존재 자체가 멜로야’라면서 멜로를 써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쭉 스릴러만 파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황당했지. 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었는데 멜로라니.”

김재중(이하 김) “원작의 판권 계약을 한 뒤 시나리오가 14고까지 나왔다. 보통 감독님들과 작업하면 처음 의도가 뒤에선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이장훈 감독님은 마치 노영심의 노래 ‘별걸다 기억하는 남자’ 같았다.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써가는 모든 과정을 전부 기억했다.”


-‘지만갑’이 멜로영화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선배들은 흔히 멜로와 공포는 멀리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웃음) 기획할 때 우리의 지향은 ‘겨울왕국’이었다.”


-1000만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하하! 맞다. 가족이 전부 와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으니까. 보면 행복한 영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영화. 그런 면에서 감독에겐 죄송하다. 신인이 데뷔할 땐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를 하고 싶지 않나.”

“예전엔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를 원했다. 감독들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보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혹여 ‘싼마이’(싸구려)라는 얘길 들어도 상관없다. 한 명이라도 더 보는 영화를 만들 거다.”

이장훈 감독(왼쪽)과 김재중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지만갑’이 쏘아올린 작은 공…다음 작품도 이미 ‘의기투합’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감독이 걸어온 과정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30대 초반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돌연 영화를 한다고 나서기까지 고민이 적지 않았고,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역할도 중요했다. 원한다고 누구나 갖지 못하는 감독의 기회를 바라면서 이장훈 감독은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돌아갈 곳이 없었다. 돌아갈 다리는 이미 불 질러 버렸으니까. 내가 영화하는 걸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영화를 못 하게 된다면 차라리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자존감이 굉장하다.


“아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존재 자체가 멜로’라는 말에는 동의하나.


“아내가 가장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결혼 16년 차다. 아내가 영화를 보고 철철 울었다.”


-가족의 응원이 없었다면 감독이 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아내에게, 부모님께 가장 고마운 부분이다. 한 번도 ‘영화 언제 들어가’라고 묻지 않았다. 그건 정말 힘든 질문이다. 그 질문 때문에 사람도 안 만나고, 그렇게 고립됐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정말 행복하다. 골방에서 글 쓰던 때보다 하루 종일 인터뷰하는 게 더 좋다.”

“감독님은 가끔 망언을 한다. 촬영장에서 다들 지쳐있는데 ‘나는 촬영이 영원히 안 끝났으면 좋겠다’고.”

이장훈 감독(왼쪽)과 김재중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지만갑’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신인감독의 등장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지난해 ‘청년경찰’을 통해 신인 김주한 감독을 발굴, 흥행과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낸 김재중 대표의 선구안이 또 통했다. 그가 준비하는 새 영화 ‘보통의 가족’ 역시 신인감독의 작품이다.

2003년 영화 ‘나비’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한 김재중 대표는 영화에 관심이 없던 이장훈 감독과 달리 고향인 강원도 시골에서 어릴 때부터 유명한 ‘영화광’으로 통했다. 동네 비디오가게 대여 순위 1위는 늘 그의 차지. 영화 ‘완득이’의 프로듀서 등을 거쳐 2014년 ‘우아한 거짓말’로 제작에 본격 뛰어들었다. 지금은 충무로가 가장 주목하는 제작자다.


“지금껏 참여한 영화 가운데 살인자가 나오는 작품은 없다. 사람 이야기다. 뭐, 상 받을 영화가 아닌 거다.(웃음) 보고나면 ‘따뜻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두 사람은 ‘지만갑’ 개봉 전 이미 다음 작품도 함께하기로 했다. 아직 어떤 영화를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계약서에는 영화 제목이 아닌 ‘다음 작품’이라고 명시했다. 김재중 대표는 “우스갯소리일 수 있지만 이장훈 감독님을 스타감독으로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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