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득점권은 안타 하나로 득점할 수 있는, 주자가 2루나 3루에 있는 상황을 일컫는다. 타자에게는 클러치 본능, 투수에게는 위기관리 능력을 뽐낼 기회다.
특히 최근에는 장타율과 출루율을 더한 OPS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공격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손꼽힌다. 반대로 투수 입장에선 피OPS가 낮으면 낮을수록 상대 타자를 효과적으로 봉쇄했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즉 ‘득점권 피OPS’는 투수의 위기관리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지표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SK 문승원의 압도적 위기관리 능력
올 시즌 득점권 피OPS 최저 1위는 SK 문승원(29)이다. 피안타율이 아닌, 피OPS가 0.145로 2할도 채 되지 않는다. 피장타율(0.050)과 피출루율(0.095) 모두 1할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득점권에서 총 21차례 상대 타자와 마주했는데, 안타와 볼넷 하나씩을 허용한 것이 전부다. 득점권 피안타율도 0.050(20타수 1안타)에 불과하다. 득점권에서 6개의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낸 점도 돋보인다. 주자의 진루마저 최소화했다는 의미다. 1루 포함 ‘주자 있는 상황’으로 범위를 넓혀도, 문승원의 피OPS는 0.487로 리그 최저 2위다.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만큼 올 시즌 성적도 준수하다. 4경기에 선발등판해 1승(2패)만 거뒀지만, 최근 두 차례 등판에서 모두 7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퀄리티스타트(QS·선발투수 6이닝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한 경기 최다실점도 3점에 불과하다. 문승원의 선전은 SK가리그 1위의 선발투수 방어율(3.68)을 기록 중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표본으로 살펴본 NC 왕웨이중의 안정감
NC 왕웨이중은 45차례(리그 최다 2위) 득점권에서 타자를 상대했다. 위기관리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표본이 확실하다. 그의 득점권 피OPS는 0.539로 이 부문 최저 8위인데, 피출루율(0.289)과 피장타율(0.250), 피안타율(0.225)이 모두 2할대였다. 최고구속 150㎞대 초중반의 빠른 공과 예리하게 꺾이는 슬라이더의 조합이 일품이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47차례 득점권 상황을 맞이한 펠릭스 듀브론트(롯데)의 득점권 피OPS는 0.716이다. 특히 0.413에 달하는 피출루율은 듀브론트가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상대 타자의 출루를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다. 득점권에서 볼넷(10개)이 삼진(9개)보다 많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방어율 1위 소사, 위기관리 능력도 굿!
LG 헨리 소사는 방어율 부문 1위(1.06)에 올라있다. 34이닝을 소화하며 자책점이 단 4점뿐이다. 이는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의 산물이다. 득점권 피OPS가 0.438로 최저 3위인데, 피출루율(0.179)과 피장타율(0.250), 피안타율(0.148) 모두 에이스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