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위기의 K리그, 유소년 육성에서 길을 찾다

입력 2018-05-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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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진국으로 가는 첫 단추는 유소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다. 최근 프로축구연맹은 유스 트러스트와 준프로계약 등 유소년 육성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경주에서 열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 왕중왕전 장면.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요즘 한국축구가 어렵다. 기분 좋은 얘기가 별로 없다. 여기저기 아픈 소리뿐이다.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은 기대에 못 미치고, 연령별 대표팀의 성적도 저조하다. K리그의 인기는 바닥이다. 오랫동안 축구 현장을 취재해 왔지만 이처럼 침울한 분위기는 처음이다. 속수무책이라며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모르겠다는 관계자들의 모습도 자주 본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 성적도, 인기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명예회복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우를 두 번 다시 범하지 말아야한다.

축구선진국이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유소년 정책이다. 뿌리가 튼튼하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은 축구발전에 큰 밑천이 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이 축구굴기를 외치지만 투자만큼 성과를 못 내는 이유가 바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유소년 정책 탓이다.

최근 K리그의 관심이 유소년 쪽으로 향하고 있는 건 다행스럽다.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이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자라나는 선수가 있어야 선수 공급이 되고, 제대로 배운 선수가 있어야 경쟁력이 커지는 건 상식이다.

수치를 보면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유스 출신 비율이 K리그1에는 27.8%(등록선수 442명 중 123명), K리그2도 23.3%다. 그들이 K리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이 수치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제공|전북현대


프로축구연맹은 유소년 육성을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에 힘을 쏟고 있다. 유소년클럽 시스템을 평가하는 인증 제도를 도입했고, 프로계약 가능 연령을 18세에서 17세로 하향 조정했으며, 유망주들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를 늘리고 있다.

우선 유스 트러스트가 눈에 띈다.

현재 K리그 22개 구단 산하에는 연령별로 66개의 유소년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구단별로 수준차가 많이 난다. 그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그 제도가 바로 유스 트러스트다. 이는 유소년 시스템을 포괄적으로 진단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7월 시작된 이 제도는 2년마다 각 구단의 시스템을 진단한다. 진단 결과는 영역별 현황과 함께 K리그 전체에서 해당 구단이 속한 상대적인 위치를 등급으로 매긴다. 누가 더 많이 투자하고, 잘 운영하고 있는 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뿌리를 튼튼하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준프로계약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동안 우리 구단들은 잘 키운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해외 이적으로 애를 태웠다. 투자를 하면 결과를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 때문에 유망주를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리스크를 줄이겠다고 도입된 게 준프로계약이다. 우리와 비슷한 제도는 일본 J리그의 프로 2종 계약과 EPL의 장학금 제도 등이 있다. 준프로계약은 K리그 유소년클럽 소속 선수 중 고교 2~3학년에 재학 중인 선수를 대상으로 한다. 구단은 매년 3명과 계약할 수 있으며, 최대 2년의 계약기간과 연간 1200만원의 기본급이 조건이다. 계약한 고교생은 연맹 주최 유소년대회는 물론이고 K리그 공식 경기에도 출전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구단이 고민했던 걸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데, 유망주를 해외로 이적시킬 때도 구단이 직접 협상할 수가 있다. 최근 준프로계약을 맺는 선수도 나왔다. 수원 삼성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매탄고 3학년 골키퍼 박지민과 계약해 주목을 받았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저학년이 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든 것도 의미가 있다.

지난해 출전 기회가 적은 저학년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저학년리그를 신설했던 연맹은 올해 출전 팀을 10팀에서 14팀으로 늘려 실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K리그 주니어(클럽 산하 유소년팀 연중리그)에‘EPTS 분석시스템’을 도입했다. 장비를 착용한 선수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 분석 및 매치리포트까지 작성하는 시스템인데, 경기력 평가 및 선수 육성 체계를 강화할 기술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연맹은 올해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유스지원팀을 만들었다. 지원팀의 영역은 제도 개선 및 규정 개정, 유소년 대회 개최, 선수지원 프로그램, 지도자 역량강화 등 광범위하다. 계획대로 다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실효성이다. 욕심내기보다는 한 가지를 하더라도 K리그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걸 원한다. 아울러 한국축구의 유소년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축구협회와의 공조도 필요하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긴 호흡으로 꾸려가야 하는 게 유소년 정책이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으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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