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p Of Life, 나의 월드컵] ⑦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우물 안 개구리”

입력 2018-05-1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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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한국축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묘사했다. 스포츠동아DB

아시아 최종예선에선 3승2무…세계 16강 기대
벨기에·스페인·우루과이에 3전패, 1득점·6실점
“아시아 최강의 자부심 무너져…상대가 안돼”
“남자가 좋은 성적 내야”…러월드컵 선전 당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은 일대 파란 속에 시작됐다. 지금까지도 역대 월드컵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언급되는 카메룬-아르헨티나의 개막전. 월드컵 통산 성적이 3무에 불과했던 ‘불굴의 사자군단’은 지난 대회 우승국을 1-0으로 제압하며 세계축구계를 술렁이게 했다. 격변의 기운은 한국축구를 들뜨게 했다. 4년 전 멕시코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를 상대로 선전한 기억도 생생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16강으로의 도약. 한국축구는 자신만만했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첫 상대 벨기에에 0-2로 완패한 데 이어 스페인에는 1-3, 우루과이에는 0-1로 무너졌다. 8강까지 오른 카메룬이 전 세계의 찬사를 받는 동안 한국축구는 초라한 현실과 막연한 기대가 빚어낸 처참한 결말에 몸서리를 쳤다. 지금은 여자축구의 선구자로 각광받고 있는 윤덕여(57)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은 이탈리아월드컵을 떠올리며 안일했던 자신과 한국축구를 ‘우물 안 개구리’로 묘사했다.


-이탈리아월드컵에선 3패를 당하고 말았다. 역대 최악의 결과를 낸 대회 중 하나다.

“아시아 최종예선 때는 한 번도 안 지고, 실점도 한 골밖에 없어서 멕시코월드컵보다 좋은 성과를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대회를 마치고 나니 우물 안 개구리였다. 모두 대회에 들어가서야 처음 상대해보는 강팀들이었다. 그 전까지는 유럽이든 남미든 (A매치를 치르는 대신) 기껏해야 클럽 팀들이랑 경기를 해본 게 전부였다. 유럽과 남미의 국가대표팀 수준은 (아시아권 국제대회 또는 친선경기에서 맞붙은 클럽들보다) 확실히 높았다.”


-벨기에전에는 결장했다. 그 뒤 스페인전, 우루과이전에는 모두 출전했다. 벨기에전에 나서지 못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나?

“벨기에전을 앞두고 주전과 비주전으로 나눠 연습경기를 치렀는데, 그 때는 A팀(주전)이었다. 그 경기에서 부진했다. 월드컵 데뷔무대를 앞두고 부담감이 커서였는지 컨디션이 별로였다. 감독님(이회택)이 안 되겠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지만, 기용 여부는 결국 감독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 경기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벨기에가 그렇게 강했나? 변변한 공격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완패했다.

“벤치에서 지켜보는데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겠더라. 지금은 과학적으로 상대를 분석하는 게 기본이지만, 그 때 우리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시아에선 최강이라고 자부했는데, 막상 유럽의 강호와 맞부딪혀보니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첫 경기부터 무기력하게 패했으니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서는 분위기가 무척 무거웠을 것 같다.

“스페인전을 앞두고는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이 있다. 벨기에한테 지고 나서는 당연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회복훈련을 겸해 호텔 수영장에서 잠깐 쉬었는데, 방송을 통해 ‘축구대표팀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갔다. 내 기억으로는 수영장 장면 자체도 방송사의 요청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모두가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래도 스페인을 상대로는 선전하지 않았나? 황보관의 프리킥 동점골은 그림 같았다.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갔고, 전반에는 대등하게 싸워 1-1로 마쳤다. (벨기에전 패배와 수영장 사건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 분발하자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자 스페인의 개인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해트트릭을 달성한 미첼은 움직임이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수비수를 등진 채) 돌아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더라. 그 전까지 우리가 한 번도 상대해본 적이 없는 세계 정상급 공격수였다.”


-우루과이전은 더 아쉬웠을 듯하다. 종료 직전 오프사이드 논란을 낳은 골을 내주고 패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퇴장까지 당해 더 낙담했을 것 같다. 퇴장 판정이 편파적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승골(후반 45분)을 넣은 폰세카는 과거 대통령배대회 때 클럽 소속으로 우리나라에 왔던 선수라 (플레이 스타일을) 약간은 알고 있었다. 당시 꽤 유명한 선수였고, 기량이 좋았다. 롱패스로 넘어온 볼을 폰세카가 헤딩으로 슛했는데, 오프사이드였다. 이탈리아 심판으로 기억하는데, 우루과이한테 계속 유리한 판정을 했다. 후반 25분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다. 선수생활을 통틀어 경기 도중 퇴장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에는 백패스 금지 규정이 없었는데, 비기기 위해 골키퍼(최인영)와 내가 볼을 주고받으며 지연행위를 했다며 옐로카드를 내밀었다.(지연작전을 펼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억울할 법한 상황이었다)”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86년 멕시코에선 36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고도 1무2패로 선전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월드컵을 앞두고는 팬들은 물론 언론의 기대도 컸다.

“우리 스스로도 조별리그 통과를 목표로 삼았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고, 한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으니 자신감이 있었다. 멕시코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도 여럿(정용환·박경훈·노수진·김주성·조민국·정종수·최순호·변병주·이태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막연한 기대였다. 세계적 수준과 격차가 컸다.”


-아시아 최종예선 때(1989년 10월)는 언제가 고비였나?

“1차 예선은 전승(6승무패)으로 통과했고, 최종예선은 6개국이 싱가포르에 모여서 치렀다. 첫 경기가 어려웠다. 비교적 약체로 봤던 카타르한테 (0-0으로) 비겼다. 언론에서도 비판을 가했고, 우리 스스로도 좀 당황했다. 그래도 다음 3경기(북한·중국·사우디아라비아)를 모두 이기면서 UAE(아랍에미리트)와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전에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UAE전에는 나를 비롯해 주전들이 많이 빠졌는데도 (1-1로) 비겼다.”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나라인데,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겠다.

“2003년에 U-17 대표팀을 이끌고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우승까지 차지했다. 경기장도, 주변의 항구도 익숙한 기분이어서 주민들한테 물어보니 이탈리아월드컵 때 우리가 스페인전과 우루과이전을 치른 곳(우디네 델프리울리 스타디움)이었다. 13년 만에 다시 감독으로 같은 장소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선수들과 함께 그 지역팀(우디네세)의 세리에A 경기도 관전했다.”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대기만성형이었나?

“1989년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한일전(동대문·1-0 승)을 통해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프로로 가지 않고 한일은행에서 2년간(1984~1985년) 뛰었다. 그러다보니 국가대표로 데뷔할 기회가 좀 늦어졌던 것 같다. 김호 감독님이 한일은행을 맡고 계셨는데, 그 때만 해도 프로가 초창기라 한일은행에서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택했다. 나중에 울산현대(1986~1991년)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서 활약했는데, 인연이 있어서인지 다시 김호 감독님을 만났다. 김호 감독님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는데, 애정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호 감독님은 선수시절 김정남 감독님과 함께 명 수비수였다.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그 가르침 덕분에 특히 수비수로서 갖춰야 할 시야가 넓어졌다.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여자대표팀은 이제 내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올랐고, 남자대표팀은 당장 6월이면 러시아월드컵 본선이다. 남녀대표팀이 나란히 좋은 성과를 거뒀으면 한다.

“남자가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남자가 (축구 인기의 부활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여자)는 1년 동안 잘 준비하면 된다.”


● 윤덕여 감독은?


▲생년월일=1961년 3월 25일

▲출신교=경신중~경신고~성균관대

▲프로선수 경력=울산현대(1986~1991년), 포항 스틸러스(1992년)

▲지도자 경력=포항제철중 감독(1993~1995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1996~1999년), 17세 이하(U-17) 대표팀 감독(2001~2003년), 울산현대 코치(2004~2005년), 경남FC 수석코치(2006~2009년), 대전 시티즌 수석코치(2010년), 전남 드래곤즈 수석코치(2011~2012년), 여자국가대표팀 감독(2013년~현재)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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