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美 연방대법원, 스포츠도박 허용 판결로 본 ‘블랙삭스 스캔들’ <중>

입력 2018-06-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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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내셔널리그 챔피언 신시내티 레즈와의 9전5선승제 월드시리즈에 나섰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 이 가운데 8명이 동료들을 배신하고 일부러 경기를 패하는 대가로 검은 돈을 받기로 했다. 스포츠동아DB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당시 메이저리그가 어떤 상황이었기에 월드시리즈에서 무려 8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했을까 하는 것이다. 윌리엄 프랜시스 폰테인은 ‘THE BETRAYAL(배신)’에서 당시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는 블랙삭스 스캔들의 시작부터 추적했다.


● 음모의 출발


2개의 버전이 있다. 첫 번째는 칙 갠딜이 월드시리즈 개막 열흘 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지막 보스턴 원정 때 펜웨이파크 인근 블랙민스터 호텔에서 오랜 친구였던 스포츠도박업자 조셉 스포츠 설리번을 만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승부조작을 공모했다고 갠딜은 1956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또 다른 버전은 이보다 일주일 앞선 9월 18일 뉴욕 원정에 나섰을 때다. 갠딜과 에디 시콧, 전 메이저리그 투수 슬리피 빌 번스가 브로드웨이의 앤소니아 호텔에서 만나 승부조작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뉴욕의 유명한 갱스터였던 아놀드 로스타인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승부조작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번스가 1921년 법정에서 증언했다.


스캔들의 주범 갠딜은 비밀리에 승부조작에 참가할 선수를 모았다. 평소 팀 내에서 외톨이였던 갠딜이지만, 8명이 가담할 정도로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은 흔했다. 그만큼 선수들은 구단의 야박한 대우에 불만이 많았다. 이들은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선수들은 월드시리즈 전날 밤 원정숙소에 모여 도박사들과 최종합의를 했다. 도박사들은 5000달러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1만달러가 아니면 가담하지 않겠다”고 레프티 윌리엄스가 우겼다. 결국 액수는 올라갔다. 선수들은 우선 원정 1·2차전을 진 뒤 4만달러를 성공보수로 달라고 했다.


승부조작의 키는 화이트삭스 에이스 시콧이 쥐고 있었다. 시리즈 개막전에서 신시내티 선두타자에게 던진 2구는 타자의 등을 향했다. 거대한 음모를 뒤에서 총지휘하는 로스타인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신시내티의 승리에 10만달러를 걸었다. 경기를 져준다는 선수들의 신호라고 확신했다.


● 1·2차전 져주기 경기의 진행


1919시즌 306이닝 동안 49명의 타자에게 포볼을 허용한 시콧은 1회 사구와 포볼을 내주며 흔들렸다. 포수의 도움으로 간신히 1실점으로 넘겼다. 2회를 잘 넘긴 시콧은 3회 또 포볼을 내주고 실점했다. 4회는 더 의심스러웠다. 1사 1루서 투수 앞 땅볼을 잡았으나 머뭇거리다 1루로 악송구했고, 연속 추가안타를 허용하며 6실점했다. 3.2이닝 동안 7안타에 포볼 2개, 사구 1개를 내주고 강판한 시콧은 그날 밤부터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공범들에게 하소연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뒤였다.


2차전 선발은 윌리엄스. 그해 297이닝을 던지며 23승11패를 기록했다. 체격은 작았지만 커브를 잘 던졌다.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한 윌리엄스는 4회 단 한 번 무너졌다. 한 이닝에 포볼 3개를 징검다리 식으로 내준 뒤 적시타를 2개 맞았다. 속사정을 모르는 포수 레이 샬크는 계속 커브를 요구했다. 그 사인을 무시한 윌리엄스의 8이닝 완투패.


그날 밤 화가 난 샬크는 감독 키드 글리손을 찾아갔다. “우리 투수 2명이 사인대로 던지지 않는다. 시즌 중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독에게 알렸다.

스포츠동아 DB


● 5차전 뒤 선수들이 변했다는 것을 확신한 화이트삭스 감독


3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은 도박사와 또 만났다. “배당을 위해 3차전은 이겨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화이트삭스의 3차전 선발은 그해 13승7패를 기록한 딕키 커였다. 3안타만을 내주는 눈부신 호투로 팀을 구해냈다. 공격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배신자들이 맹활약했다.


4차전. 다시 시콧이 등판했다. 시즌 때처럼 눈부시게 던졌다. 4개의 단타와 2루타 하나를 내줬다. 포볼은 없었다. 문제는 5회 수비였다. 1사 3루서 평범한 투수땅볼을 놓치고 1루에 악송구했다. 이어진 2루에서 좌전적시타를 허용한 뒤 조 잭슨의 홈송구 때 릴레이맨으로 참가해 송구를 놓쳤다. 5회 실점 외에는 완벽했지만 경기는 또 화이트삭스의 패배로 끝났다. 시콧은 5회에만 3개의 실책(2개는 범실·하나는 판단미스)을 했다.


그날 밤 갠딜은 윌리엄스에게 2개의 봉투를 건넸다. 각각 5000달러씩 담겨 있었다. 하나는 윌리엄스의 것, 하나는 잭슨의 것이라고 했다.


5차전 선발 윌리엄스는 여전히 잘 던졌다. 5회까지 단 1안타만 허용했다. 6회 불운이 찾아왔다.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내줬다. 평범한 외야타구였으나 잭슨과 해피 플레시가 서로 미룬 결과였다. 송구실책이 이어진 뒤 적시타가 터졌다. 윌리엄스가 포볼을 내주며 위기를 끊지 못했다. 이어 쉬운 외야플라이를 플레시가 판단을 제대로 못해 안타로 만들어주며 2실점. 결국 그 불운 탓에 승패가 갈렸다. 그 경기를 덕아웃에서 지켜보면서 화이트삭스 글리손 감독은 선수들이 시즌 때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확신했다<계속>.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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