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한석봉 스토리와 달라진 한화야구

입력 2018-06-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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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VS NC 다이노스 경기 중 한화의 8회말 공격 모습. 스포츠동아DB

노력하면 떠오르는 것이 조선시대 유명한 서예가 한호에 관한 에피소드다.


한석봉으로 더 알려진 그는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제대로 글을 배울 수 없자 혼자 항아리나 돌에 물을 찍어서 글씨 연습을 했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일찍부터 누구의 서체도 다 따라할 수 있는 천재 소리를 들었다. 떡을 팔면서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절에 보내 글공부를 시켰다. 아들은 4년간 공부한 뒤 어머니가 그리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그동안 배운 글 솜씨를 자랑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두컴컴한 밤에 방 안의 불을 끈 뒤 자신은 떡을 썰 테니 아들에게는 글을 써보라고 했다. 나중에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자른 떡은 크기가 일정했다. 한석봉의 글은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다시 절로 돌려보냈다. 어머니가 고르게 자른 떡을 보며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던 한석봉은 이후 10년 간 더 노력을 하며 글 솜씨를 연마한 뒤 결국 성공했다는 얘기다.


한화 김성근 감독. 스포츠동아DB


● 한석봉의 얘기에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교훈들


누구는 이 스토리를 보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누구는 어머니의 교육열정이 아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신하지 않는 땀과 반복훈련의 위대한 성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두컴컴한 밤에도 떡을 고르게 자를 정도의 경지가 되려면 사실 반복 외에는 방법이 없다. 몸으로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의 기본은 몸 근육의 기억이다. 그래서 운동이 힘든 것이다.


선수가 제 아무리 빼어난 재능을 타고났어도 자기관리에 게으르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어릴 때 천재라는 소리를 듣지만 막상 성인이 된 뒤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진 선수들이 많다.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대다수는 결국 재능만 믿고 발전에 게을렀던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성공한 많은 사령탑들은 땀의 가치를 강조한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땀의 가치를 믿었던 사람은 김성근 감독일 것이다. 야구를 향한 무한열정과 노력, 단 한순간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승리와 완벽한 야구를 추구하는 그의 지도방법을 놓고 극단으로 반응이 나뉜다.


사람들은 SK 시절 성공사례를 거론하며 노력과 땀의 승리를 믿는다. 반대로 김성근식 야구에 거부감이 많은 이들은 한화 시절의 실패를 거론한다.


한화 이글스. 스포츠동아DB


● 2018시즌 한화는 왜 지난해의 한화의 전혀 다른 팀일까


요즘 한화가 심상치 않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뚜렷한 선수보강이 된 것도 아니다. 외국인선수에 엄청난 돈을 쓴 것도 아닌데 꾸준히 상위권에 있다.


지난해의 한화와 올해의 한화의 차이라고는 선수를 이끄는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면면이 달라진 것과 3명 외국인선수의 얼굴이지만 전혀 다른 팀처럼 느껴진다. 1년 만에 환골탈태(換骨奪胎)한 한화를 놓고 해석은 다양하다.


누구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말한다. 누구는 외국인선수가 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는 현장과 프런트의 적절한 역할분담이 만든 올바른 결과를 먼저 떠올린다. 기자는 야구의 특성상 승패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선수 스스로의 자각이 이처럼 놀라운 대반전을 이뤄냈을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야구를 노동으로만 알았던 한화 선수들이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서 야구의 재미를 알고 즐겁게 경기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승리가 따라온다고 믿는다. 선수들을 승리를 위한 부속품이 아닌 함께 팀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존중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해보자는 의욕을 불러일으켜주는 코칭스태프가 있기에 선수들은 야구가 즐겁고 가진 실력 이상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화 이글스. 스포츠동아DB


● 한석봉의 인생 결말과 한화 야구의 결말은


야구는 묘해서 팀이 잘 나갈 때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스토리로 변한다. 반대로 연패에 빠지고 꼴찌를 하면 모든 것이 다 문제가 된다. 지금의 한화는 전자의 경우다. 물론 아직 한화의 스토리는 완성되지 않았다. 시즌은 길고 끝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긴 호흡으로 달라진 한화야구를 지켜봐야 한다.


참고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한석봉의 인생 스토리는 이렇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명필이 됐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당시 신분상승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과거에 계속 떨어졌다. 결국 그가 맡은 공직은 사자관(寫字官), 정부의 문서를 대필하고 정리하는 하급관리였다. 아쉽게도 글은 예쁘게 잘 쓰지만 품행이 바르지 못했던 그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자로 좌천됐다. 여기서도 제대로 일을 못해 쫓겨났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성이고 생각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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