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美 연방대법원 스포츠도박 허용판결로 본 ‘블랙삭스 스캔들’ <하>

입력 2018-06-07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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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내셔널리그 챔피언 신시내티 레즈와의 9전5선승제 월드시리즈에 나섰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 이 가운데 8명이 동료들을 배신하고 일부러 경기를 패하는 대가로 검은 돈을 받기로 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19년 월드시리즈 6,7,8차전의 숨겨진 스토리
도박사들 8차전 앞두고 선발 레프트 윌리엄스를 협박하다
8명 가담자들 서로를 배신하다. 배달사고가 난 돈은 누구에게
랜디스 커미셔너의 영구추방으로 서둘러 봉합한 MLB의 깊은 상처
1919년 블랙삭스 이전에도 월드시리즈 승부조작은 있었다?



1승4패로 벼랑 끝에 몰린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6차전 신시내티 원정에서 힘을 냈다. 3차전 승리투수 디키 커가 일찌감치 4실점했지만, 끝까지 잘 버텼다. 4회 이후로는 무실점이었다. 6회 화이트삭스의 배신자들이 안타를 몰아치며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10회 벅 위버와 조 잭슨의 연속안타에 이은 칙 갠딜의 결승타로 5-4 역전승을 거뒀다.


7차전. 에디 시콧이 10안타를 맞고 3볼넷을 내줬지만 4-1 완투승을 거뒀다. 시콧은 승부조작을 협의하던 운명의 1차전 전날 밤에도 “다음 시즌 계약을 위해서라도 한 경기는 이기겠다”고 했다. 공범들도 “너를 위해 한 경기는 이겨주겠다”고 약속했다. 화이트삭스는 1·3회 잭슨의 적시타로 먼저 2점을 얻고 5회 해피 플레시의 2타점 적시타로 달아났다.


● 약속과 살해협박, 위험을 느낀 윌리엄스의 선택


이제 도박사들이 다급해졌다. 8차전을 앞두고 레프티 윌리엄스가 원정기차에서 내려 시카고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한 뒤 “내일 경기를 반드시 져라. 안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생각해보라”고 협박했다. 이제 져주기로 약속했던 돈을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선수생활과 가족의 안전이 위태로워졌다. 밤새도록 고민한 레프티 윌리엄스는 마음을 정했다.


8차전 개시 후 딱 15분만이었다. 신시내티 레즈의 첫 타자를 유격수 플라이로 잡은 뒤 레프티 윌리엄스는 스스로 무너졌다. 감독은 그가 2연속안타를 맞자 즉시 불펜을 가동했다.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상황을 바꿔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레프티 윌리엄스는 2루타 2개를 더 내주며 강판당했다. 0.1이닝 동안 5명의 타자에게 공 16개를 던지고 끝났다. 시리즈 3패째였다.


1회말 화이트삭스는 반격했다. 연속 3안타로 1점을 따라붙고 무사 2·3루 기회가 이어졌다. 여기서 벅 위버, 조 잭슨, 해피 플레시가 맥없이 물러났다. 이날 화이트삭스의 유일한 기회를 놓친 결과는 4-10 패배. 신시내티가 시리즈 전적 5승3패로 1919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조 잭슨은 시리즈에서 양 팀 통틀어 최고타율(0.375)을 기록했다. 12안타(1홈런)는 시리즈 최다안타 신기록이었다. 벅 위버는 11안타, 타율 0.328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칙 갠딜은 0.233으로 시즌 타율보다 5푼 낮았지만 3차전 2타점 적시타를 쳤다. 6차전에선 연장 10회 결승타를 날렸다. 의문스러운 행동은 2차전 4회 1사 2·3루서 쉽게 잡을 수 있는 타구를 주물럭거려 실책을 한 것이었다. 시리즈 동안 화이트삭스는 12개의 실책을 범했다. 그 가운데 9개를 8명의 배신자들이 기록했다.


● 배신 또 배신, 누구도 믿지 못하다


시리즈는 끝났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돈의 분배였다. 전주(錢主) 아놀드 로스타인은 약속대로 선수들에게 8만달러를 건넸다. 져주기에 가담한 다른 도박사들도 1만달러를 줬다. 에디 시콧은 1차전 전날 밤 누군가가 침대에 놓고 간 1만달러를 선금으로 받았다. 그는 이 돈으로 목장을 구입하면서 생긴 빚을 갚고 주식에도 투자했다. 조 잭슨과 레프티 윌리엄스는 4차전 뒤 각각 5000달러를 받았다. 스웨드 리스버그도 1만달러를 받았다고 실토했다. 해피 플레시는 5000달러를 받았다. 벅 위버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5명에게 3만5000달러만 건네진 것이다. 나머지 4만5000달러는 주범 칙 갠딜과 프레드 맥뮬린이 차지했다. 배달사고였다.


월드시리즈 후 스스로 메이저리그 생활을 포기한 칙 갠딜은 고향으로 돌아가 세미프로선수로 활동했다. 그곳에 큰 집을 지었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나머지 선수들은 시리즈 내내 칙 갠딜에게 배신을 당한 것 아니냐며 의심했다.


● 월드시리즈는 끝났지만 파문은 커지다


화이트삭스 선수들의 승부조작 의혹은 월드시리즈가 시작하면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몇몇 기자들은 객원 칼럼리스트인 유명 선수들의 눈을 통해 시리즈 내내 의심이 가는 대목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세간의 소문대로 화이트삭스가 패하자 문제점을 보도했다. 그 기자는 누군가로부터 살해위협도 받았다. 심증은 있어도 증거가 없다보니 승부조작 의혹은 차츰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유야무야되는 듯했던 스캔들은 1920년 9월 대법원이 도박사들과 야구선수들의 접촉 의혹을 조사하면서 다시 이슈가 됐다.


결국 에디 시콧, 레프티 윌리엄스, 조 잭슨, 해피 플레시는 1920년 9월 28일 대법원에서 승부조작을 인정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화이트삭스 찰스 코미스키 구단주는 7명(칙 갠딜은 구단과 연봉문제로 이미 출장하지 않던 상태)의 출전금지를 결정했다. 선수들은 반발해 1921년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이 사건을 조사하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승부조작과 관련한 대법원의 서류가 사라졌다. 많은 증거와 선수들의 최초 증언 등의 서류가 도둑을 맞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불편한 진실을 숨겨버린 것이다.


결국 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8월 3일 선수들의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과 관련해 몇몇 도박사들은 재판에서 증언했다. 누구도 벌을 받지 않았다. 다만 아놀드 로스타인은 청문회에서 뇌물제공의 주인공이라고만 언급됐다.


그러나 새롭게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된 커니소 마운틴 랜디스 판사는 선수들의 기대를 깨버렸다. 8월 4일 8명의 야구계 영구추방을 선언하면서 블랙삭스 스캔들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도박과의 기나긴 전쟁에 들어갔다.


● 블랙삭스 이전에도 월드시리즈 승부조작은 있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다. 당초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도박사들에게 요구했던 대가가 1만 달러다. 왜 선수들은 그 액수를 언급했을까.


숨겨진 스토리가 있다. 이미 선수들 사이에서는 1918년 보스턴 레드삭스-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때 컵스 선수들이 경기를 져주고 1인당 1만 달러를 받았다는 소문이 넓게 퍼진 상태였다. 알게 모르게 선수들 사이에서 월드시리즈 승부조작의 대가는 1만 달러라는 공정가격이 정해진 것이다.


물론 컵스 선수들의 음모는 발각되지도 않았다. 화이트삭스 선수들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용감하게 실행에 옮겼지만 방법이 매우 서툴렀다.


블랙삭스 스캔들이 터지기 2년 전인 1917년 화이트삭스와 뉴욕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가 열렸다. 화이트삭스는 4승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시리즈가 끝난 뒤 화이트삭스와 자이언츠 선수들은 양 리그를 대표하는 내셔널커미션(현 커미셔너 사무국)에게 월드시리즈 입장수입금 전부를 달라는 청원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구단주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1917년 화이트삭스 선수들의 우승 배당금은 3669달러였다. 1918년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들은 고작 1102달러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져주는 대가로 주겠다는 1만 달러는 엄청난 유혹이었다. 승부조작에 참가한 시즌 23승 투수 레프티 윌리엄스의 1919년 연봉은 고작 2400달러였고 1920년에도 연봉은 변하지 않았다.


● 왜 화이트삭스 선수들은 승부조작의 유혹에 넘어갔나


1903년 죽기 살기로 경쟁하던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는 휴전을 선언했다. 전쟁보다는 평화 속에서 서로 살 길을 찾자고 결정했다. 양대 리그가 선수영입 경쟁을 포기하고 서로의 계약을 존중하기로 약속했다. 이와 함께 구단들은 선수를 묶어둘 편리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바로 보류선수 제도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선수들의 연봉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칼자루를 쥔 구단들은 “이 액수에 계약하던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라”는 자세로 선수들을 윽박질렀다. 쥐꼬리처럼 줄어든 연봉에 기분이 상한 선수들은 월드시리즈 입장수입이 보너스나 마찬가지였다. 구단은 그 돈에도 빨대를 꽂아대며 선수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목돈을 만질 기회가 박탈당한 선수들의 좌절감은 컸다. 야구기술로 생계를 꾸려가던 선수들은 호시절을 그리워했다. 푼돈이라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려고 눈에 불을 켰다.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경기가 벌어지지 않는 일요일에는 소속팀 몰래 근처의 다른 마이너리그 팀의 선수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구단주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 줬다.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인색한 구단주와 도박과 가까운 환경이 승부조작의 텃밭이 되다


야구기술자인 선수들은 경기의 승패가 내 연봉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새 알아버렸다. 당시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 어느 선수는 “이기는 것 보다 지는 것이 돈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대중의 관심이 큰 메이저리그가 아닌 비공식 경기라면 언제든지 누군가에 의해 승부조작이 가능한 것이 당시의 환경이었다. 선수들의 부담도 없었다. 차츰 선수들은 그런 환경에서 승부조작의 노하우를 배웠다.


주위환경도 선수들의 일탈을 도왔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정부는 전쟁기간을 감안해 대표적인 도박 산업인 경마를 금지했다. 가장 많은 도박자금이 모이던 게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돈을 대던 수많은 전주들과 도박사들 도박 중독자들에게는 경마를 대체할 무엇이 필요했다. 매일 경기가 열리는 메이저리그는 이들에게 좋은 시장이었다. 검은손은 옛 동료와 도박사들을 앞세워 선수들에게 접근했다. <끝>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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