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p Of Life, 나의 월드컵] ⑪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입력 2018-06-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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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스포츠동아DB

스웨덴 2010년 남아공 대회 상대 그리스와 닮았다. 못 넘을 산 아냐
월드컵에 선수 트레이너 코치 감독으로 출전한 드문 기록의 주인공
남아공월드컵 때처럼 다양한 상황 가정한 준비 잘하면 승산 있어
성사되지 못한 2006년 마라도나와 허정무의 아르헨티나 토크쇼 뒷얘기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월드컵 역사에서 흔치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대표선수로 출전한 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 트레이너, 1994년 미국월드컵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10년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도 달성했다. 한국인 사령탑으로는 첫 번째 16강 진출이었다. 또 있다. 남아공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스스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자의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첫 번째 선례를 만들겠다는 뜻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제 월드컵 개막을 코앞으로 다가왔다. 4일 허정무 부총재를 축구회관에서 만났다. 우리 대표팀을 향한 덕담과 월드컵과 관련한 옛 이야기를 들었다.


- 우리 대표팀이 최종엔트리 결정을 앞두고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고 최근 2차례 국내 평가전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준비과정에서부터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신태용 감독이 잘 해왔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상이 생기면 팀 전력이 크게 떨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른 선수가 스타로 떠오르는 기회도 된다. 나도 1974년 처음 대표팀에 발탁됐을 때 그랬다. 당시 킹스컵을 앞두고 훈련하던 도중에 대표팀 이회택 선배가 다치는 바람에 내가 대표팀에 추가로 선발됐다. 그 대회 결승전 연장전에 내가 골을 넣으면서 스타가 됐고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했다. 일단 대표팀에 뽑힐 정도라면 몇몇 특별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기량이 비슷하다. 비주전들에게는 이번이 기회를 잡을 계기다. 그래서 이번에도 승산은 50%라고 본다. 다만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코칭스태프가 얼마나 사전에 잘 준비했느냐가 변수다.”


- 2010년 남아공 대회를 회상해보면 역대 대회와는 달리 편하게 우리 대표팀의 경기를 봤다. 그만큼 우리 대표팀의 본선 경기력이 탄탄했는데.


“모든 경기를 다 잘했다. 사전에 준비한 만큼 됐다. 경기 내용도 그렇고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해줬다.”


-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첫 경기 상대 그리스에게 2-0으로 이긴 것이 16강행의 중요한 요인이 됐는데.


“무조건 이겨야 할 상대라고 생각했고 그에 맞춰 준비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그리스와 이번 러시아대회 첫 상대 스웨덴은 비슷하다. 선수들의 피지컬은 강하지만 민첩성이나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예리함은 없다. 스웨덴이 유럽의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이겼지만 날카롭거나 위력적이지는 않다. 한마디로 지키는데 익숙한 팀이다. 이를 잘 이용한다면 승산이 높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이정수가 초반 세트피스에서 골을 뽑아줘 큰 힘이 됐고 후반에 박지성이 멋진 골을 추가해 유럽 팀을 상대로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완벽한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인스부르크에서의 마지막 전지훈련 때 그리스의 2경기를 직접 보고 준비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 2차전 아르헨티나 전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1986년 마크 상대였던 마라도나 감독과의 재대결이라 기억이 더 생생하다.


“비록 스코어는 4-1로 크게 졌지만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전반에 2-1로 뒤진 상황에서 후반에 내려서지 않고 계속 밀어붙였다. 그래서 후반에 대등하게 경기를 했다. 확실히 마라도나가 감독 경험은 많지 않아도 노련했다. 우리와의 경기를 앞두고 심리전을 펼쳤다. 1986년의 일을 끄집어내며 심판들에게 ‘한국축구가 거칠다’ ‘태권축구’ 등의 발언으로 계속 메시지를 주고 세뇌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라도나 같은 사람이 우리의 태클과 거친 경기를 언급하면 심판들도 선입견을 가지고 판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날도 아르헨티나가 더 거칠게 경기를 했다. 마라도나는 경기 도중 대기심판에게 다가가서 일부러 거칠게 항의도 했다. 모두 신경전이었다. ‘이놈 봐라’란 생각이 들어서 나도 “그만 하라”고 맞받아쳤다.”


- 16강을 확정한 3차전 나이지리아전 2-2 무승부는.


“1차전에서 우리에게 진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잡아주는 바람에 모든 것이 유리했다. 먼저 골을 먹고도 잘 버텨줬다. 그 덕분에 우리가 역전했다. (결국 후반 24분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비김.) 역대 월드컵에서 우리가 먼저 골을 먹고 나면 대부분 허물어졌는데 그 경기는 우리가 뒤집었다.”


- 남아공월드컵을 되돌아볼 때 정말 아쉬운 것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이다.


“첫 골을 실책성으로 내줬지만 만회하고 후반에는 우리가 압도적인 경기를 했다. 수아레스는 우루과이의 후반 유일한 찬스에서 골을 넣었다. 우리도 몇 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것을 놓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 경기 끝까지 교체카드 하나를 남겨둔 것은 승부차기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


“그렇다. 우리가 계속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던 터라 굳이 바꿀 이유도 없었다. 감독이라면 만에 하나의 경우까지 준비해야 하기에 승부차기도 염두에 두고 GK 이운재를 아껴뒀다. 하지만 수아레스의 슛으로 모든 것이 어긋났다.”


기자와 인터뷰하는 허정무. 스포츠동아DB


- 성공한 대회였던 남아공월드컵을 평가하면서 고마운 선수들을 꼽는다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김정우가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다. 기성용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는데 기성용이 마음 놓고 공격에 가담하도록 뒤에서 궂은일을 다 했다. 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감독으로서는 정말 고마운 역할이었다. 안정환 이동국 이운재도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베테랑이 뒤에서 불평을 하면 팀이 깨지는데 헌신적으로 후배들을 이끌어줬다. 특히 이운재는 정성용에게 골문을 내줬지만 GK코치처럼 열심히 도와주고 경험을 알려줬다. 그 마음이 고맙다. 물론 주장 박지성과 이영표와 가운데에서 선수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해줬기에 무사히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 남아공 대회를 돌이켜보면 가장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팀의 목표를 유쾌한 도전으로 정했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했다. 무엇보다 충분한 사전준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적응력을 높인 것이 자신감을 높여줬다. 본선을 앞두고 일본과의 부담스런 원정 평가전에서도 2-0으로 이겼고 당시 세계최강이던 스페인과도 마지막 원정 평가전에서 박지성이 빠졌지만 1-0으로 지면서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가전도 우리가 유럽에 가서 했던 것이 좋았다. 제아무리 강팀이라도 우리나라에 오면 시차와 현지적응 등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대로 우리가 유럽에서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경험을 해본 것이 본선 때 큰 도움이 됐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남아공대회에서 6골을 뽑았는데 이 가운데 4골이 세트피스에서 나왔다. 역대 어느 대회보다 세트피스에서 골을 많이 넣었다.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 세트피스는 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을 먹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다. 세트피스로 골을 먹으면 선수들이 정말 힘이 빠진다. 당시 해외 팀의 많은 세트피스 영상을 보면서 몸싸움 과정 등을 열심히 보고 공부했다. 그 대회에서 우리는 세트피스로 자책골 하나 밖에 주지 않았다.”


- 이제 훨씬 과거로 돌아가서 아무래도 허정무 하면 1986년 멕시코대회의 그 장면이다. 마라도나와의 몸싸움. 태권축구라고 말도 많았다.


“당초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내가 마라도나를 마크하기로 돼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는데 경기 당일 김정남 감독이 나 대신 김평석에게 마라도나를 마크하라고 지시했다. 김평석이 빠르고 힘이 있으니까 잘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전반 20분이 지나자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김정남 감독이 마크맨으로 나를 바꿨다. 그때부터 내가 수비했다. 사실 내가 공격수 출신이지만 수비도 잘했다. 대표팀에서도 GK를 제외하고 모든 포지션을 다 해본 유일한 선수다. 네덜란드에서 뛸 때 요한 크루이프, 베켄바워, 루메니게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내가 전담해서 마크했다. 특히 크루이프는 전성기가 지나기는 했지만 첫 번째 대결에서 잘 수비하자 우리 팀 감독이 계속해서 전담마크를 시킬 정도로 믿음을 줬다. 그래서 마라도나 마크도 자신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기자는 허정무 부총재가 전남 드래곤스 사령탑 시절 함께 아르헨티나 전지훈련을 간 적이 있다. 2006년 초였다. 당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허정무 감독을 보자 1986년의 그 태클을 떠올렸다. 마침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한 방송국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허 감독이 전지훈련을 온 것을 알자 프로그램에 출연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허정무 감독은 “사진에 찍힌 각도에서는 그렇게 보였지만 실제로 마라도나를 차지도 않았다. 그랬더라면 경기 때 주심의 경고를 받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일을 제대로 밝힐 기회”라면서 기꺼이 출연하겠다고 했다. 방송을 위한 사전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방송을 앞두고 마라도나가 집안 문제로 급히 외국에 가는 바람에 방송은 무산됐다. 만일 그때 두 사람의 토크쇼가 성사됐다면 훨씬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 처음 출전했던 1986년 멕시코월드컵 무대는 어땠나?


“솔직히 참가에 의의를 뒀다. 32년 만에 나가보는 월드컵 본선인데 경험은 전무했고 세계 강호들과 연습경기도 해보지 않은 채 갔다. 당시 멤버 가운데 해외무대 경험자는 나와 차범근 조영증 등 3명 뿐이었다. 그래서 상대의 벽을 너무 높게 봤다. 세계축구의 정보에 무지했고 정보도 전혀 없었다. 상대팀 경기영상은 보지도 못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도 상대할 스페인 팀의 비디오를 못 구했을 정도로 당시 우리는 해외 팀의 정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해 볼만 했다.”


- 1990년 트레이너로 출전한 이탈리아 대회는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준비부족과 컨디션 조절 실패를 기억하는데.


“그런 점도 있었고 당시의 세계축구 흐름이 전술적으로 3-5-2로 바뀔 때였는데 우리는 그 것을 몰랐다. 1986년 때 아르헨티나는 3-6-1 시스템으로 우승을 했다. 그만큼 상대는 공격수를 적게 두고 미드필드 중심의 축구를 했는데 우리는 5백 중심의 축구를 했다. 그 바람에 미드필드에서 상대전술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994년 미국 대회 때는 시차와 현지적응 훈련을 잘 해서 우리가 자신감도 찾고 어느 정도 대등한 경기도 했다.”


- 1986년부터 꾸준히 월드컵 무대를 경험하면서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을 확인했을 것 같은데.


“역대 대회를 보면 기복이 있다. 잘한 대회도 있고 그렇지 못한 대회도 있다. 2002년 4강에 오르기는 했지만 우리는 완전히 자리 잡은 팀은 아니고 여전히 도전자다. 우리의 축구환경과 프로리그가 축구 선진국과는 아직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눈높이는 너무 높다. 물론 9번 연속 월드컵 본선에 가면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경기경험이 쌓이고 해외리그에 진출한 선수도 많아졌지만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발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유소년축구 투자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뿌리가 튼튼해야 앞으로 한국축구는 더 발전할 수 있다.”

● 허정무는?

▲ 생년월일=1955년 1월 13일(전남 진도)
▲ 출신교=영등포공고~연세대
▲ 선수 경력=한국전력~해병대~PSV에인트호벤~울산
▲ 대표선수 경력=1974~1986년 103경기 출전·30골, 1986년 멕시코월드컵,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금메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금메달)
▲ 프로 지도자 경력=포항 감독(1993~1995년), 전남 감독(2005~2007년), 인천 감독(2010~2012년)
▲ 대표팀 지도자 경력=트레이너(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코치(1994년 미국월드컵), 감독(2000년 시드니올림픽·2010년 남아공월드컵)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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