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탈락’ 고영표 “충격? 내게 야구는 여전히 즐겁다”

입력 2018-07-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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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고영표. 스포츠동아DB

고영표(27·KT)는 풀타임 선발 첫해였던 지난해 141.2이닝을 던졌다. 규정이닝에 단 2.1이닝 부족했다. 그 2.1이닝 탓에 대기록을 여럿 놓쳤다. 고영표의 지난해 볼넷 비율 2.6%는 KBO리그 역대 최저였다. 거기에 삼진/볼넷 비율도 7.8로 1983년 선동열(당시 해태·8.4)에 이어 역대 2위였다. 구위가 좋은 날에는 상대 타자들이 힘을 못 썼다.


활약은 이어졌다. 고영표는 16경기에서 삼진 90개를 빼앗았다. 전체 8위이자 양현종(KIA)에 이어 국내 투수 2위다. 시즌 초 주춤했지만 자신감을 되찾았고,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후보로 손꼽혔다. 하지만 6월11일 발표된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 ‘내 탓이오’로 마음을 비우다


KT는 비통함에 잠겼다. 고영표는 지난해 호투에도 최하위에 그친 팀 탓에 10승 고지에 못 올랐고, 구단 안팎에서는 ‘그 때문에 대표팀에서 탈락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김진욱 감독은 명단 발표 직후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화난다.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든다. (고)영표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거듭 되뇌었다. 임종택 단장 역시 “충격적인 결과였다. KT 팬들과 당사자인 고영표 본인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구단 안팎에서 아쉬운 목소리를 아무리 내더라도 당사자인 고영표의 심경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터. 고영표는 명단 발표 직후 2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점 7.15로 고전했다. 여러 모로 고영표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고영표는 6월30일 수원 NC전에서 5.2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갑작스레 내린 호우에 KT의 강우콜드승으로 마침표가 찍혔고, 고영표는 생애 두 번째 완봉승을 거뒀다.


KT 고영표. 스포츠동아DB


그 후 만난 고영표는 “(명단 발표 직후 두 경기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답답하진 않았다. 때문에 홀가분한 것도 없다”고 덤덤히 운을 뗐다. 그는 “마음을 많이 비웠다. 아시안게임이 목표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어떤 목표라도, 이루지 못했다고 주저앉아 주위 환경을 탓할 수 없다. 내 욕심이 너무 많았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의연한 그에게도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고영표는 명단 발표 후 ‘구속이 느린 탓일까? 구위가 약했던 탓일까?’를 자문하며 마운드 위에서 여러 변화를 꾀했다. 투구 폼과 패턴에 크고 작은 변화를 줬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려놓기’에 성공한 고영표다. “타자들은 ‘칠 만한 공’이면 친다. 의욕이 과해서 명단 발표 직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제 추슬렀고, (NC전에서) 승리도 챙겼다. 생각을 버렸다.” 고영표의 이야기다.


● “야구는 여전히 즐겁다”


그는 평소 엄상백, 주권, 신병률 등 또래 후배 투수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후배들이 마운드 안팎에서 힘겨워 할 때면 고영표는 늘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던지는 걸 즐겨보는 게 어떨까?”라고 조언했다. 그런 고영표가 일련의 일들로 초조함을 느끼자 후배들이 그를 찾았다. “생각을 버리라던 형이 지금 정작 복잡해 보인다”고 얘기했다고. 고영표를 아차 싶게 만든 장면이었다. 그동안 뿌려둔 씨앗들이 고영표가 힘든 시기에 열매로 다가온 것이다.


낮지 않은 문턱에 걸린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다. “야구 자체를 좋아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프로 선수로 야구한다는 자체가 재밌다. 야구 외적인 요소로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을 보면서 ‘즐기자’고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고영표는 7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등판한다. ‘즐기겠다’는 다짐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는 결과와 상관없이 마운드 위에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직|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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