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하러 들어온 강필석과 임강희는 서로를 보며 미소를 먼저 보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연인으로 연기호흡을 하고 있지만 함께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이에 서로에게 “오늘 멋지시네요”, “미용실 다녀왔어요~”라며 인사로 너스레를 떨었다.
<이하 강필석‧임강희 일문일답>
- 강필석은 초연부터 해왔고 임강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우와 태희로 연기하기에는 새로운 만남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강필석 : 이 어색함이 사실 무대 위에서는 큰 도움을 준다. 생각해보면 20대 커플은 막연히 편해지지 않지 않나.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고 설레기도 하고. 임강희는 ‘프라이드’때 부부로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관계여서 연기를 하면서도 다가가기 힘든 점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사랑하고 아껴주는 역할이라 좋다. 임강희는 감성이 풍부한 배우라서 연기호흡이 더 좋다.
임강희 : 강필석 오빠가 ‘번지 장인’이라는 별명이 있지 않나. 왜 그런지 알겠더라. 오빠와 연습을 하면 공기가 바뀐다. 이지훈 오빠와 연기 호흡을 하면서도 참 좋았지만 강필석 오빠와 연습하는 날이면 그 동안 오빠가 해왔던 감성들이 느껴진다. 첫 연습 때 그 감성이 참 좋았다.
강필석 : 임강희와 첫 무대에 설 때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인우와 태희가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우리 둘이 실제로 눈치를 봤다. 김지현과는 재연 때 이미 해봤기 때문에 서로 어떻게 할지 잘 알고 있는데 임강희와는 처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진짜 못 다가갔다.(웃음) 덕분에 그날 그 장면은 원래 시간보다 10분이나 더 걸려서 끝났다. 다음날 제작사 대표에게 “필석아, 시간 좀 줄여줘”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하. 그런데 첫 날 그 장면이 좋았던 건 우리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정말 ‘연기 호흡’을 했다는 것이다.
임강희 : 초·재연을 다 봤고 좋은 배우들이 해왔기 때문에 캐스팅이 됐을 때 부담이 된 건 사실이다. 연기생활 15년을 하며 가장 큰 부담이 된 작품이지 않을까. 그래서 원래 하려고 했던 작품도 결국 안 하기로 결정을 하고 ‘번지점프를 하다’에만 몰입을 했다. 이 작품만의 결을 살리지 않으면 망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개성을 살린 ‘태희’가 아닌 작품 속에 있는 ‘태희’가 돼야했다. 그래서 발성법을 바꾸며 연기하고 있다. 공연 있는 날 2시간 전부터 와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강필석 : 어쩐지, 공연장 오면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더라. 하지마, 무서워. 농담이야. (웃음) 강희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안다. 그런데 지금도 잘하고 있어서 애써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임강희 : 이 작품을 하면서 15년간 쌓아둔 안 좋은 습관이 까발려지는 것 같더라.(웃음) 그래서 매일 연습을 하면서 일지를 쓰고 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태희가 인우처럼 극을 이끄는 역할은 아니지만 보여줄 때 한 번에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라 잘하고 싶다. 지금은 부담보다는 재미가 더 있다. 한 뼘 더 성장하는 것 같다.
강필석 : 잘 알고 있는 게 ‘독’이 될 수 있을 수 있더라. 앞서도 말했지만, 김지현과 연기할 때 너무 편해서 설렘이 없다는 단점이 생기더라. 20대 커플이면 서로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근거림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또 초연부터 이 작품을 해왔고 대본의 대사도, 음악의 가사도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이 됐는지 알기 때문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게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예전 인터뷰를 보니, 재연 공연 당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한 적이 있더라.
강필석 : 그 때는 정말 그랬다. 재연 공연(2013) 당시에는 그만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마지막 커튼콜 때 엄청 울기도 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삼연이 올라가기까지 여러 장애물이 있었고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싶었고 생명력을 갖고 날아다녔으면 좋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아마도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나중에 ‘홈커밍데이’ 식으로 초청해주셔서 이전 배우들과 한 번씩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임강희 : 필석 오빠가 ‘번지점프를 하다’를 정말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원래 오빠는 뒤에서 응원해주는 스타일인데 이 작품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애정을 쏟는 게 보인다.
강필석 :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다 그렇지 않을까? 같은 역할인 지훈이의 첫 공연을 보러 갔는데 내게 ‘형, 이 작품 원래 이래? 되게 벅찬다’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는 데 굉장히 고마웠다. 사실 이번 연습 상황이 새로운 배우들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는데 너무 훌륭하게 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 ‘번지점프를 하다’는 노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임강희 : 듣기는 편한데 부르기엔 정말 까다롭다. 다른 작품과 달리, 가창력을 뽐내는 넘버들도 아니고 반대로 감정을 아껴서 불러야 한다. ‘혹시 들은 적 있니’를 부를 때 저희가 위로 올라가지 않나. 그 때는 모든 관객의 표정이 다 보여서 마음을 가다듬고 부른다. 지금은 넘버를 부를 때마다 정말 행복하다. 노래 한 곡이 백 마디의 말보다 힘이 있다는 걸 강하게 느낀다. 이 작품으로 음악의 힘을 느끼고 있다.
강필석 : ‘번지점프를 하다’는 노래를 부른다는 생각이 안 든다. 정말 말 하듯이 하면 되는 것 같다. 다른 작품은 강약을 조절하고 소리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보다 정서를 잘 따라오면서 부르기만 하면 가장 좋은 것 같다. 윌 애런슨이 작곡을 맡았을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트로트’ 같은 음악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을 쓰고 나서는 모든 곡을 ‘확’ 써내려갔다고 하더라.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음악인 것은 분명하다. 음악 덕분에 원작 팬들이 실망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예전에 지인이 실제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찍었던 스태프의 리뷰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뮤지컬을 보면서 당시 촬영 현장과 느낌이 고스란히 생각이 났다고 하며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썼더라. 그 글을 보고 굉장히 벅찼다. 이 작품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너무 다가가려는 애쓰기보다 관객들이 우리 공연에 다가갈 수 있는 법을 배우게 해 준 작품이었다.

- 이 작품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초연을 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고 원작은 더 오래됐다. 관객들의 세대와는 점점 멀어지면서 공감대가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나.
강필석 : 음…. 시간이 더 지나면 ‘시대’에 대해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가 2001년에 나왔지만 영화마저도 1983년을 다루고 있다. 사실 나도 83년 감성을 잘 모른다. 단지 TV를 통해서 봤을 뿐이지. 그런데 20대 관객들이 무대에서 보는 현재도 2018년은 아니니까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계속 공연이 된다면,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임강희 :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해서 ‘번지점프를 하다’가 안고 가는 감성이 참 좋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마음이 깊어서 좋다. 요즘 TV나 영화를 보면 연인들의 사랑하는 과정이 참 빠르지 않나. 반대로 이 작품은 어렸을 적 우리가 두근거리던 그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 유지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강필석 : 소통 방식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다. ‘삐삐’ 세대만 해도 공중전화에서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나. 옛 어르신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우리 때는 손 글씨로 편지를 쓰고 전보를 부쳤다’는 말을 하셨다.(웃음) 휴대폰이 생기기 전에는 어디서 만나기로 했으면 거기서 기다리지 않았나. 난 단성사 앞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소통 방식은 변했지만 사랑에 깊게 빠지는 과정은 누구나 다 똑같을 것 같다. “요즘 사람들 너무 빨라”라고 하지만 사랑을 갈망하고 힘든 건 과거에도 현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의 깊이도 여전할 것이고. ‘번지점프를 하다’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랑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독일 여행 중이었을 때 함께 경기를 관람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파티에 간다며 두 손을 잡고 가는 그 부부의 사랑이 정말 위대해 보였다. 우리 작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 시간이 다 가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만날 걸 그랬다.(웃음)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필석 : 참 잘 만든 창작뮤지컬이다. 두근거리고 설레고 가슴 아픈 작품이다. 드라마는 현실적이지만 이 작품이 표현하는 것은 판타지이다. 누구나 꿈꾸는 사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우의 대사처럼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것은 엄청난 확률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며 우리에게 맞닿아 있는 인연들을 생각하고 지나갔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운명이다.
임강희 : 묵직하고 깊고 천천히 하는 사랑을 느끼시고 싶다면 보러 오시길 바란다. 가슴에 번지는, 사랑이 아스라이 번지는 작품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8월 2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