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4위 안에 들까봐’ 설레던 롯데 팬들

입력 2018-07-24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올해 롯데의 가을야구 희망이 가물가물하다. 이대로라면 지난 겨울의 대대적 투자도 헛일이 되고 만다. 롯데는 지난해 후반기와 같은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야생야사’ 부산사람들의 열화와도 같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롯데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10년도 훨씬 더 지난 얘기다. 롯데가 2000년대 초중반의 기나긴 암흑기 속에 한창 몸서리를 치던 때다. 취재차 부산을 찾아 사직구장까지 택시를 탔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던 택시기사로 기억된다. 2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화제가 오갔고, 구도(球都) 부산의 거리 곳곳을 누비는 이답게 야구, 그 중에서도 롯데 얘기를 빼먹지 않았다. 퍽이나 오래 전 일이라 어렴풋이 대화의 요지만 떠오른다.

“부산사람들은 우승도 바라지 않는다. 4위 안에만 들어도 사직구장은 미어터질 거다. 아니 4위도 필요 없다. 좀만 잘해도 ‘혹시 4위 안에 들까봐’ 목이 터져라 롯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부산사람들이다.”

롯데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꼴찌를 도맡았다. 2008년 페넌트레이스 3위로 가을잔치에 나서기 전까지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위권을 맴돌았다. 사직구장에서 ‘부산갈매기’를 부르던 사람들도 급격히 줄어 시즌 총 관중이 2002년에는 12만7995명, 2003년에는 15만722명에 그쳤다(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취임하고 8년 만에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08년에는 전년도보다 무려 62만222명이 늘어난 137만9735명이 사직구장을 찾았다).

올봄 롯데의 간판타자 이대호는 봉변을 당했다. 개막 7연패에 빠진 날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사직구장을 빠져나가다가 성난 팬이 던진 치킨상자에 등을 정통으로 맞았다. 이대호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더 큰 불상사로는 번지지 않았지만, 그릇된 팬심에 대해선 한동안 비난여론이 들끓었다(그 다음날인 4월 1일 롯데가 NC를 상대로 8회말 역전극을 펼치며 연패에서 탈출하자 사직 관중은 이대호를 위로하듯 그의 이름을 힘차게 외쳤다).

올해 롯데의 처지가 딱하다. 지난겨울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적잖은 지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외야수 손아섭을 눌러 앉힌 데 이어 두산 소속이던 또 다른 국가대표급 외야수 민병헌을 붙잡아 삼성으로 떠난 주전 안방마님 강민호의 공백을 아쉬운 대로 메웠다. 페넌트레이스 3위를 차지하고도 준플레이오프에서 좌절한 지난해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롯데 프런트의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롯데 자이언츠. 스포츠동아DB


그러나 올 시즌 승률 5할이 머나먼 고지처럼 보인다. 5월 중순 한 차례 짧게 5할을 찍은 뒤로는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한때 5위까지 치솟았던 순위 역시 지금은 8위로 다시 내려앉았다. 23일 현재 39승2무51패, 승률 0.433이다. 5위 넥센(48승50패)과는 5게임차다. 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격차다. 승패 마진이 -12인 롯데가 다시 5할에 근접하고 넥센을 따라잡으려면 별 수 없다. 지난해 후반기의 반전 드라마를 재연해야 한다(2017년 롯데는 전반기를 41승1무44패, 7위로 마친 뒤 후반기 39승2무18패로 약진했다).

실낱같은 희망일 수 있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KBO리그는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문에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보름 넘게 쉰다. 상위권 팀들도 적잖이 경계하는 최대 변수가 바로 ‘아시안게임 방학’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어떻게든 8월 17일 전까지 승패 마진을 최대한 줄여놓는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처럼 지난해처럼 또 한 번 롯데에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십수 년 전에도, 지금도 ‘야생야사’인 부산사람들에게 롯데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들의 바람은 하나다. 한국시리즈 우승까지는 지나친 바람일 테고, 지금 당장은 남은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는 롯데 선수들의 모습을 간절히 원할 듯하다. ‘혹시 5위 안에 들까봐’ 사직구장에서 롯데를 목청껏 외칠 부산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열과 성을 다하는 롯데 선수들의 투지를 기대해본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