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69㎏ 금메달리스트 오강철(북한).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2008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63㎏ 금메달 리스트 북한 박현숙의 우승 소감이었다. 북한의 가장 든든한 우방인 중국 네티즌들에게조차 비웃음이 쏟아졌다.
과거 북한 선수들의 우승 소감은 듣고 있는 이들이 낯 뜨거울 정도였다. 불과 2년 전인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역도 75㎏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림정심도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릴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섰습니다. 일등이 확정됐을 때 원수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한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원수님께 달려가고 싶은 생각뿐입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 많은 선수들은 자신이 어떤 소감을 말했는지 기억조차 못한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건장한 선수도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한다. 그동안의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치열한 승부를 마친 직후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희열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북한 선수들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미리 훈련된 소감을 말하며 ‘장군님’을 찾았다.
그러나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은 많은 것이 다르다. 이전까지 코치복장을 입고 감시자의 눈빛을 번뜩이던 스태프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함께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는 진짜 지도자가 남측 기자들에게 먼저 선수를 데리고 온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팀 코리아’ 여자농구 정성심 코치-장미경(오른쪽·북측).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여자농구 단일팀 북측 정성심 코치는 싹싹한 성격으로 남측 취재진에게 인기가 높다. 20일 여자 A조 인도와 경기 직후. 이날 맹활약한 북측 선수 장미경은 수줍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남측 취재진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러자 정성심 코치가 직접 장미경을 다시 데려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장미경은 낭랑한 목소리로 “많은 인민의 응원을 들으니 힘이 났다”고 했다.
22일 남자역도 69㎏ 금메달을 딴 남측 오강철의 소감에선 ‘원수님’, ‘장군님’을 찾을 수 없었다. 남측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오강철은 ‘눈물의 의미를 들려 달라’는 질문을 받자 “5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금메달을 어머니께 드리고 싶습니다”며 오열했다. 곁에 있던 북측 코치들도 함께 울었다.
그동안 북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지만 자카르타에선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여유도 생겼다. 남북의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보는 관점에 따려 여전히 논란이 크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북측 선수들도 이제 우리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물한다는 점이다.
# 슬라맛(Selamat)은 인도네시아어로 안녕, 행복, 평안을 바라는 따뜻한 말입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