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감동 시나리오 김학범호, 이제 남은 건 ‘해피엔딩’

입력 2018-08-3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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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9월 1일 일본과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결승전을 치른다. ‘반둥 참사’에도 굴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이란,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난적들을 차례로 제압한 결과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4년 주기의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은 같은 해에 열린다. 시기는 월드컵이 조금 앞선다. 그런 탓에 아시안게임 남자축구는 늘 찬밥 신세였다. 월드컵을 통해 세계 최고 스타의 플레이를 보고, 그들과 경쟁하는 태극전사를 응원했다면 아시안게임은 시시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4년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은 양상이 다르다. 관심이 폭발적이다. 마치 축구 단일대회가 열리는 것처럼 아시안게임 전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김학범호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하다.

‘인맥축구’는 그 서막이다. 와일드카드 선발 과정에서 황의조를 뽑은 게 논란이 됐다. 프로축구 성남 시절 김학범 감독과 사제지간이었다는 점이 비난의 꼬투리였다. 감독은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불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출발부터 덜컹거린 이유다. 그 와중에 조 편성이 3차례나 바뀌면서 준비과정은 엉망이 됐다. 해외파들의 합류날짜가 들쭉날쭉해 손발 맞출 시간도 부족했다.

첫 경기 바레인전 승리로 한숨 돌리는 듯 했지만 말레이시아에 지는 바람에 다시 비난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반둥 참사’로 감독의 지도력은 난타 당했다. 돌이켜보면 그 충격적인 패배는 오히려 약이었다. 선수들의 눈빛부터 달라졌다. 두 번 다시 실패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황의조의 활약이 눈부셨다. 골 퍼레이드를 보면 거의 신드롬 수준이다. 바레인전 해트트릭에 이어 말레이시아전 만회골, 이란전(16강) 결승골, 우즈베키스탄전(8강) 해트트릭으로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베트남과 4강전에서 한골을 추가해 9호 골로 사실상 득점왕을 예약했다.

그 사이 인맥축구 논란은 온데 간 데 없어졌다. 이젠 ‘갓’의조가 됐다.

물론 황의조 옆에는 항상 손흥민이 있었다. 주장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는 해결사가 아니라 도우미를 자처했다. ‘손흥민 패스-황의조 골’이라는 승리 공식도 만들었다. 이들 와일드카드의 활약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결승까지 남은 마지막 고비에서 마주한 베트남전은 또 다른 화제였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 이겨야할 상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수장은 전남과 경남 사령탑을 지낸 박항서 감독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때 대표팀 수석코치였다가 이젠 베트남의 국민영웅이 된 지도자다. 한국축구에도 의미가 큰 인물이다. 베트남은 조직력이 탄탄한 황금세대로 구성됐다. 반면 우리는 고갈된 체력이 걱정이었다. 쉽지 않은 4강전이었지만, 우리는 상대의 추격을 뿌리쳤다.

이번 대회 결과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은 것도 특이하다. 손흥민의 군 문제 때문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가 계약기간(2023년까지) 중에 국방의 의무 때문에 리그를 쉴 수도 있는, 보기 드문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 언론들이 한국의 병역특례제도와 함께 경기 결과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처럼 병역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은 없었다.

태극전사들이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올림픽은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은 금메달). 결승 상대는 숙적 일본이다. 일본과는 단 한번도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마주친 적이 없다. 객관적인 전력을 떠나 라이벌전은 변수가 많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분위기를 타는 팀이 유리하다. 와일드카드 황의조와 손흥민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번 대회의 감동 스토리는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시나리오다. 그런 시나리오의 끝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결승전은 9월 1일 오후 8시30분 열린다. 두 손 모아 승리를 염원한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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